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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훈의 ‘세상사는 이야기’
세상과 적당히 타협하고 살다가 지하철 공짜로 타는 나이가 됐다. 더 늦기 전에 젊은 날의 로망이었던 세계일주를 해야겠다고 결심하고 출가하듯 비장한 각오로 한국을 떠났다. 무대뽀 정신으로 좌충우돌하며 627일간 5대양 6대주를 달팽이처럼 느리게 누비고 돌아왔다. 지금도 꿈을 꾸며 설레이며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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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홀로 여행의 이유

안정훈의 혼자서 지구한바퀴 (36)
글쓴이 : 안정훈 날짜 : 2019-09-09 (월) 14:21:14

절망을 버리고 희망을 보듬기 위한 여행

    

 

나이 들어서 청승 맞게 혼자 배낭 여행을 하는 진짜 이유가 뭐야? 젊은 사람들은 이런 질문을 하지 않는다. 혼밥, 혼술에 익숙한 세대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이 든 사람들은 의심스런 눈빛으로 거침없이 묻는다. 설명하기 곤란할 때가 많다. 그냥 웃어 넘기거나 역마살 때문이라고 대답한다. 다행히 애매한 답변이 그런대로 잘 먹힌다. 참 고생하는 사주를 타고 났구만! 하면서 혀를 끌끌 차거나 고개를 끄덕끄덕 한다. 특별하거나 심오한 철학이 없고 그저 팔자소관 이라는 말을 듣고 안도하며 긴장감과 의심을 푼다.

 

 

만약 진정한 영혼의 자유를 얻고 싶어서다. 일생의 로망을 실현하기 위해서다. 내 영혼의 안식처인 아쉬람을 찾기 위해서다. 힐링하기 위해서다 라고 말 한다면 반응은 뻔하다. 아주 시를 쓰는구나, 아직 철이 덜 났구나, 먹고 살만한가 보구나, 고생을 덜 했구나 라는 부정적인 반박이 되돌아 올 것이다. 나는 관광에 익숙하고 여행에 무지한 어르신들과 논쟁하며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다.

 

 

한국의 기성세대들은 자기의 경험이나 지식과 다른 건 모두 틀리고 나쁜 것이라는 편견을 가지고 있다. 다름에 대해 호기심을 갖거나 공감하기는 커녕 이해 자체를 거부한다. 호숫물이 짭짤했다. 슬프게 아름다웠다 라고 말하면 절대 믿지 않는다. 그들에게 찍히면 바보가 되거나 왕따가 되기도 한다. 애매모호하고 두리뭉실하게 잘 넘기는 처세나 표현의 기술을 써야한다. 가식적이라도 그들과 똑같거나 비슷하다는 걸 보여 주어야만 한다.

 

 

 

 

1손주가 두 명의 여친에게 볼 키스를 받고 어벙벙한 표정을 짓고 있다..jpg

손주가 두 명의 여친에게 볼 키스를 받고 어벙벙한 표정을 짓고 있다. 말이 필요 없다.
애매한 표정으로 족하다. 말로 표현하기에는 너무 벅차다.

 

 

 

가끔 직설적으로 펀치를 날리는 사람도 있다. 혹시 관종(관심종자) 아니야 ? 신 들린 세치 혀로 자랑질 할 꺼리 만들고 싶은거 아니야? 개나 소나 쓴다는 여행 에세이 한 권 남기고 싶은거 아니야? 대한민국에 심하게 멀미 하는 거 아니야? 심지어는 마누라하고 문제 있는거 아니야? 라고 묻기도 한다. 나이 든 사람들 일수록 뻔뻔하고 아픈 말들을 아주 쉽게 내뱉는다.

 

 

대개는 참고 넘기지만 속이 부글 거리고 답답하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다 라고 외치고 싶다. 혼자 배낭 여행을 떠난 건 호기심이 넘치고 자신감과 용기 있어서가 아니다. 도전과 모험을 좋아 때문은 더더욱 아니다. 솔직히 고백 하자면 진짜 이유는 은퇴하고 한동안 우울한 시간을 보내면서 느꼈던 상실감, 무력감, 허무감, 외로움, 절망감 따위에서 벗어나고 싶었기 때문이다. 저질 체력이라서 달팽이처럼 느리게 700일 동안 지구별 유랑을 했다. 외롭고 힘들었지만 은퇴 후의 방황과 소외감 보다는 훨씬 힘들지 않았다. 만약 잘 나가는 인싸 였다면 합숙소 같은 싸구려 게하(게스트 하우스)에서 자고 정크 푸드로 식사를 떼우고 차비 아끼느라 터덜터덜 걷고 또 걸으면서 다닐수 있었을까? 결과론이긴 하지만 길냥이처럼 떠돌아 다녔음에도 나는 행복했다. 존재감이 되살아 났다. 체력도 좋아졌다. 긍정의 힘을 믿게 됐다. 절망감을 안고 시작해서 희망을 보듬고 돌아왔다. 이런 심오한 스토리를 말로 주저리 주저리 설명 할 수가 없었다.

 

 

 

 

2아해야! 넌 지금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에 있는 걸 알기나 하니.jpg

아해야! 넌 지금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에 있는 걸 알기나 하니?
할배는 버거웠던 700일간의 유랑이 인생에서 가장 빛나는 시간이고 행복했던 시간이었단다.

 

 

 

관광은 돈과 시간만 있으면 가이드 따라 다니며 유명한 곳 보고 찍고 즐기는 것이다. 남들이 느끼는 것과 똑같은 만족을 누리는 것이다. 나홀로 여행은 나만의 선택을 할 수 있다. 유명하지도 않은 낯선 풍경을 가슴에 담고 남들과 다른 감동을 느낀다. 현지인들과 소통하고 공감 하면서 배우고 성장하는 것이다. 다른 사람 눈치 볼 필요도 없다. 경비도 아낄 수 있다. 시간도 여유있게 쓸 수 있다.

 

 

내 경우에는 찾아 가기도 했지만 대부분 흘러가는대로 따라 갔다. 새롭고 놀랍고 신기한 것들에 적응했다. 성장하지는 못했지만 제법 많은 추억과 경험 그리고 여행의 기술을 축적했다. 나만을 생각하고 위하는 에고이스트가 되어 떠돈 2년 간의 세계일주가 내 평생에 가장 잘 한 일이라고 자부한다. 나는 관종이 아니라 별종으로 살고 싶다.

 

 

가장 힘든 질문은 "2년 동안 혼자 여행 하는데 가족들이 반대하지 않고 보내 주었어? "라는 것이었다. 황당하기도 하고 짜증이 나기도 했지만 나는 제대로 된 답변을 하지 못했다. 내가 솔직하게 대답하면 말 꼬리 잡고 나를 비난할 게 뻔하기 때문이다.

 

 

 

 

3아내는 이 세상에서 나를 가장 잘 이해하고 성원 해주는 베이스 캠프 주인장 이다. - Copy.jpg

아내는 이 세상에서 나를 가장 잘 이해하고 성원 해주는 베이스 캠프 주인장이다.

 

 

"가족들은 열렬한 후원자들이다. 반대 같은 건 시작 때부터 없었다. 오히려 힘들고 외롭다고 징징 거리면 등짝 후려치며 앞으로 달려 나가라고 격려해 주었다. 양념처럼 사랑해요, 할 수 있어요, 힘 내세요 라고 말 해주기도 했다. 매일 통화하고 카톡으로 일기처럼 여행한 일상 이야기와 사진을 보내면 함께 여행하는 듯 하다면서 좋아하고 대리 만족을 느낀다고 했다. 그러니 어찌 멈출 수 있겠어 ? 이건 실화다. 에구구 좀 믿어 달라고 !! "

 

 

아내와 딸들은 내가 평생 열심히 일 했는데 은퇴해서 자기 하고 싶은거 하는게 당연 하다고 용기를 주었다. 내 남편은, 우리 아빠는 그럴 자격이 있다고 박수를 보내 주었다. 감사 할 뿐이다. 난 복도 많이 받았구나 라고 감사한다.

 

 

    

4두 딸과 함께한 제주도 여행에서도 내 다음 여행 계획을 상의 했었다.jpg

두 딸과 함께한 제주도 여행에서도 내 다음 여행 계획을 상의했었다.

 

 

 

딸들은 출가 했음에도 정신적 성원과 함께 남편 모르게 모아 놓은 초과 근무 수당을 털어 물질적으로도 도움을 주었다. 사위도 눈치 슬슬 보다가 十匙一飯(십시일반) 했다. 아내 하고는 매일 두번 이상 통화를 했다. 한국에 같이 있을 때 보다 더 많은 대화를 했다. 아내는 돈은 걱정 말고 편하게 다니라고 했지만 나는 스스로 최대한 아끼고 줄여서 다녔다.

 

 

진정한 여행은 가족의 소중함과 진정한 사랑 , 감사와 겸손 , 반성과 성찰이 함께해야 가능 한 것이다. 가족들은 내가 관광을 간게 아니라 나를 찾는 여행을 떠난 거라는 걸 잘 알고 있다. 여행하는 동안 통화하면 늘 언제 올 꺼냐 ? 가 아니라 다음 행선지는 어디냐 ?고 묻곤 했었다. 지금은 " 다음 여행은 언제 어디로 갈꺼냐 ?" 라고 궁금해 하며 묻는다. 그러면 " 나도 좀 쉬자 . 실크로드나 아프리카 갈 생각 이지만 우선은 쉬어야 하니 등 떠밀지 말라 " 고 농담을 한다.

 

 

자식들은 혼자 여행 가도 괜찮은데 가장은 혼자 여행 가는게 왜 이상할까? 죽기 전에 하고 싶은 거 한번 해 보겠다는데 절대 안된다고 난리 칠 까닭이 있을까? 이유가 뭘까? 남편과 아내는 일심동체라서 반드시 함께 가야 한다 ? 남편을 너무 사랑해서 한시라도 떨어질 수 없다? 남편이 혼자 가서 무슨 사고 칠지 믿지 못하겠다? 남편이 자식들에게 물려 줄 돈 축내는 거 용납 할 수 없다? 혼자서 신나게 사는 꼴 봐줄 수 없다? 아니면 두렵다? 용기가 없다? 믿을수 없다? 도전 보다는 편한게 낫다? 난 당신들이 나를 수상하게 보는게 어이가 없다.

 

 

        

       

5세계일주 중에 아내의 생일에 맞추어 말레시아 쿠알라룸푸르에서 견우와 직녀가 되었다.jpg

세계일주 중에 아내의 생일에 맞추어 말레시아 쿠알라룸푸르에서 견우와 직녀가 되었다.
아내가 한국에서 날아와 열흘간 럭셔리하게 리허니문을 즐겼다.
아내는 한국으로 돌아가고 나는 미얀마로 떠났다.

 

 

 

은퇴해서 어깨가 축 쳐지고 허리가 굽어 키도 줄어들어 볼 품 없는 할배가 됐지만 평생 가족을 위해 열심히 살았다는 걸 인정 한다면 죽기 전에 버킷 리스트를 따라 떠나 보라고 등 떠밀어 보내는 주는게 진짜 사랑이고 효도가 아닐까? 물론 부부나 가족이 함께 가는게 최고의 여행이다. 그러나 사정이 그렇지 못해서 혼자 떠날 경우를 말 한 것이다. 남이 나와 다르다고 해서 나쁜 건 절대 아니다. 단지 같지 않은 것 뿐 이다. 이해는 못해도 이상하게 보지는 말았으면 좋겠다.

 

 

 

글로벌웹진 NEWSROH 칼럼 안정훈의 혼자서 지구한바퀴

 

http://www.newsroh.com/bbs/board.php?bo_table=anj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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