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정훈의 '세상사는 이야기'

“I'll kill you”
나를 죽여버리겠단다.
여긴 한국이 아니라 필리핀이다.
힌국에서야 말다툼을 하다가 죽여버리겠다고 해도 별로 겁내지 않는다.
말뻥일 뿐인까.
그런데 필리피노들은 다르다.
죽인다고 하면 진짜로 죽이는 또라이들이다.
바짝 쫄을 수 밖에 없다.
새벽 1시가 넘었다.
공항에서 택시를 타고 막탄섬에 예약한 호텔로 가는 길이었다.
문득 밖을 보니 차가 뉴 브릿지를 건너 만다우에 시내 쪽으로 가고 있다.
칠흑 같이 어두운데 인적도없다.
드라이버가 미친척을 하고 있는거다.
공항에서 거리가 먼 세부 시티로 가는 손님이 타면 2만원 짜리다.
나는 5천원 짜리다.
드라이버가 행선지(行先地)를 말했을 때부터 짜증을 부렸다.
잘못 들은 척하고 뺑뺑이를 돌리려고 하는거다.
나도 화를 내며 유턴을 하라고했다.
안된단다.
정식 유턴을 하는 자리는 아니지만 늦은 시간이라 돌려도 괜찮은 곳이다.
말다툼이 벌어지고 서로 언성이 높아졌다.
이 넘이 제대로 열을 받았다.
I'll kill you 라고 소리를 지르더니 차를 세우고 내리라고한다.
내가 미쳤냐.
내리란다고 내릴거 같으냐? ㅋ
얼러줘야 할 시간이다.
톤 다운~
화를 가라앉히고
목소리를 부드럽게 깔고 달랬다.
어쨌든 다시 타고 차를 돌린다.

설레발의 시간이다.
나 여기 오래 살았다.
뚜물락, 맵사, 부쏙, 마볼로, 과달루페 등 여러 곳에서 살았다 etc.
안정의 시간이다.
핸드폰으로 통화를 하는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지인 두 명 연결 실패.
늦게 자는 큰 딸과 연결됐다.
상황 설명을 하고 계속 통화를 했다.
일부러 간간히 웃고 농담도 하면서.
드라이버가 뭔 생각을 했는지 잘못간 거리 만큼 요금을 마이너스 하겠단다.
난 괜찮다고 하면서 어깨를 두드려주고 악수까지 했다.
녀석이 쏘리! 쏘리!한다.
어랍쇼.
필리피노들은 절대로 자기가 잘못했다 또는 미안하다라는 말을 하지 않는데 신기하다.
그래 됐다 오케이다.
나도 쏘리 쏘리 해줬다.

이 자는 호텔이 가까워 오자 겁이 난거다.
필리핀에서는 죽이겠다는 말 만으로도 범죄행위다.
호텔에 도착해서 경찰을 부르면 그는 바로 체포된다.
내가 거의 로컬이란걸 알아챈거다.
호텔 앞에서 드라이버가 따라 내리면서 요금을 마이너스하고 달랜다.
팁까지 주고 허그도 해주었다.
난 한국인이다.
필리피노는 화를 잘 표출하지 않지만 절대 잊지 않고 뒷끝 작열(灼熱)하지.
맞지?
하지만 코리아노는 화도 잘 내지만 잊는것도 빠르다.
남자들은 싸우고 나면 좋은 친구가 되는거야.
맞지?

어르고 달래서 마무리 했다.
마닐라에서는 조심하고 주의했는데
세부에 와서는 잘 안다고 방심한게 탈이었다.
잘 모르시는 세부 여행자라면 특히 늦은 시간이라면 하얀 택시 말고 비싸더라도 노랑 택시 타라고 권하고 싶다.
낮이라면 50페소 - 1250원 짜리 에어컨 공항 버스 타면 좋다. 세부 에스엠 시티 몰까지 쾌적하게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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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이트 비치.
푸에르토 갈렐라.
민도로 아일랜드.
필리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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