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누난다 방글라’ 2편
'눈누난나 방글라데시 2편'을 이어가기 전에 먼저 마음 독하게 먹고 딴 소리 부터 한마디 해야겠다.
방글라데시는 불편함이 많은 나라다.
그런데도 나는 눈누난나^^를 흥얼 거리며 다녔다.
눈누난나는 기분이 좋을 때 자기도 모르게 입에서 흥얼흥얼 나오는 소리다.
기분이 좋고 신나는 분위기를 표현하는 단어다.
그런데 어떤 페친이 1편의 댓글에다 의문을 표시했다.
"설사에다 삥 뜯기고도 룰루랄라~~??"
다른 페친은 "사서 고생하지 말고 이젠 가깝고 편하고 역사 답사를 하는 곳으로 가는게 좋다 "고 조언을 해준다.
또 어떤 페친은 "왜 한국 사람은 외국 나가서도 한식만 찾는지 모르겠다. 현지 음식을 먹어야지"라고 했다.
한번도 아니고 반복해서 달았다.
일 이년씩 긴 해외 여행 해보고 나서 말하라고 답하고 싶었지만 소심한 나는 그냥 참고 말았다.
심지어는 인도에서 이발하러 갔다가 얼굴에 허옇게 팩한 사진에다가는 '조의금 각~'이라고 댓글 단 사람도 있었다.
이게 말이야 소야?
조의금의 의미를 잘 알텐데 무슨 생각으로 썼는지 기가 막혔다.
그러나 나무라는 답변 글 대신 좋아요!를 꾸욱 눌러 주었다.
아마 나를 한참 모지리로 생각 할것 같다.
돌아가신 우리 아부지가 말씀 하셨다.
싸울만한 사람하고만 싸우라고~
아부지 말씀 따라 내가 바보가 되어 주었다.
그런데 말이지다.
내 남은 인생에서 오늘이 가장 청춘이다.
지금 오지(奧地) 여행을 하지 못하면 아마도 영영 가보지 못할 것이다.
내 여행은 편안함을 추구하지 않는다.
과거의 유물을 흘깃 보고 사진 찍고 바쁘게 떠나는 패키지 관광을 하는게 아니다.
난 여행을 하며 매일 닥치는 어려운 문제들을 풀면서 재미와 보람을 느낀다.
성취감과 존재감을 확인한다.
과거의 유물이나 유적 앞에서 인증사진 찍는 여행이 아니다.
만나고 소통하며 현재의 삶을 체험하는 생활형 여행이다.
나는 시니어 여행 작가 안정훈이다.
여행 써퍼다.
써핑은 거친 파도와 바람을 헤치고 바다를 가르고 나가는 난이도 높은 스포츠다.
물놀이와는 전혀 다르다.
내가 하고싶은 말은 물놀이하는 기준으로 써핑을 보고 평하지 말아 달라는거다.
난 맘이 약해서 친삭을 잘 못한다.
어떤 때는 페절하고 싶은 맘이 굴뚝 같이 일기도 했다.
몰이해에 페북을 떠나고 싶은 맘이 들기도 했었다.
제발 "고생 많았다. 욕봤다. 왜 사서 개고생 하느냐?"
이런 말은 하지 말아 줬으면 좋겠다.
It's my pleasure 니까.
누군가에게는 고생으로 느껴지는 것이 누군가에게는 기쁨이고 행복이다.
젊은 사람이 혼자서 세계일주하면 멋지다고 말 하더라.
그런데 나이 든 사람이 혼자서 세계 여행하면 왜 사서 고생하느냐고 한다.
선입견과 편견을 가지고 자꾸 태클거는 건 싫다.
이해나 공감을 하지 못하겠으면 스스로 떠나면 좋겠다.
라떼 근성을 발휘해서 누군가를 가르치려고 하지 말아라.
난 지금 그런 말을 들어줄 시간이 없다.
하고 싶은 것 다하고 재미있게 신나게 놀아줄 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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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누난나^^ 방글라데시 2>
코로나보다 무서운 방글라데시 매연

5.매연 마스크.
나는 일년이 넘게 여행을 하고 있지만 한번도 PCR검사를 받지 않았다.
코로나 대환장 국가였던 아프리카나 인도도 PCR 검사 결과 제출이나 마스크 착용을 요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가 인도를 떠난 직후에 중국, 한국, 일본, 대만 4개 나라의 입국자들을 콕 찝어서 새해 1월 부터 다시 엄격한 PCR조치를 취한다고 발표했다. 중국이야 그렇다 치자. 초기에는 방역 모범국이었던 한국이 지금은 하루에 수 만명의 확진자가 나오는 방역 문제국가로 추락했다. 체념 방역, 각자 도생 방역의 결과인거 같아 안타깝다. 외국에 나가면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자긍심. 자부심이 저절로 생긴다.
특히 인도 같은 개발도상국. 사람들은 한국을 부러워하며 선망의 눈으로 본다. 그런데 인도가 우리나라를 코로나 특별 관리 국가로 지정했다니 속이 좀 상한다)
아무튼 한국에서는 엄격하게 마스크 착용을 의무화하던 시기에도 나는 거의 쓸 일이 없었다.
그런데 방글라데시에 와서는 아무도 요구하지 않는 마스크를 착실히 쓰고 다녔다.
코로나가 무서워서가 아니라 매연이 무서워서였다.
방글라의 수도인 다카 시내에 나가면 눈과 목이 따갑고 아프다.
매연 악취 때문 기침이 나온다.
코로나 보다 더 무서운게 방글라데시의 매연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일 싸돌다니며 눈누난나^^
6. 도착 첫날 모기떼 한테 격한 환영을 받다.
기온이 24도 정도였다.
이런 정도의 날씨에 모기가 기승을 부릴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방심했다가 도착 첫날 하루 동안에만 내 손과 발에는 셀수도 없을만큼 많은 모기빵이 생겼다.
너무 놀라서 다음날 부터 전기 모기채, 뿌리는 모기약, 바르는 모기 기피제, 모기장 등을 총동원해서 겁을 상실한 모기떼와 전면전을 치루었다.
모기도 피맛을 아는가보다.
다른 사람들은 괜찮은데 내 피만 집중적으로 흡입했다.
내 피가 따끈따끈 맛있다는거지 ㅎㅎ
다행히 다음날 부터는 더 이상 물리진 않았다.
하지만 아직도 손과 발등에는 따발총에 맞은 것처럼 무수하게 피 빨린 자국이 남았다.
난 초등학교 1학년 때 뇌염에 걸려서 죽다가 살아났다.
10여년 전에는 필리핀에서 댕기열에 걸려 반 죽도록 아팠었다.
질긴 악연이다.
고로 모기는 나의 주적이다.
이 넘들의 만행을 결코 좌시 할 수가 없다.
나는 떠나는 날 까지 격렬하게 모기 사냥을 했다.
매일 사냥질을 하다보니 이게 은근 재미나다. ㅎㅎ
전기 모기채를 휘두르면 따닥~ 따다다닥~ 소리가 난다.
요거 은근 중독성이 있다.
모기 한테 당해도
난 눈누난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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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누난나 방그라데시 3>
무늬만 도착 비자
방글라를 떠나 태국에서 와서 단꿀을 빨면서 이 글을 쓴다.
환경이 너무 달라져서 현장감이 떨어질까 염려가 된다.
그래서 하고 싶은 얘기는 제법 많지만
깊고 많은 이야기를 쓰기 보다는 빨리 서둘러서 방글라 포스팅을 마무리하려고 한다.
우즈베키스탄에서 방글라로 갈 마음을 먹었다. 인터넷으로 외교부 공지와 여행싸이트 등을 검색해 보았다.
방글라는 도착비자 가능 국가로 나온다.
바로 인도에 일주일 정도 머물다가 방글라로 가는 뱅기표를 예매했다.
요렇게 가는게 뱅기표 가격이 제일 쌌기 때문이다.
출국 티켓이 있어야 한단다. 방글라에서 태국으로 가는 뱅기표는 알아만 봤다.
실제 예매는 시간적인 여유가 있으니 인도에 가서 하기로 했다.
준비 끝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4년 만에 인도에 다시 가는거다.
거기서 일주일 정도 있다가 방글라로 가기로 했다.
인도는 늘 그립다.
뉴델리의 여행자 거리인 파하르 간지에서 혼잡의 카오스를 즐기며 지내기로 했다.
그 곳에서 우연히 한 달 간의 긴 방글라 여행을 막 마치고 귀국하기 위해 인도로 온 오지 전문 여행자를 만났다.
정보 중에는 최신의 HI(human intelligence)가 최고다.
귀중한 대면 정보 획득의 챤스를 놓칠 수가 없다.
맥주 한잔 하자고 바람을 잡았다.
점심 먹고 시작한 낮술이 해가 질 때 까지 이어졌다.
밤 뱅기를 타야하기에 자리를 파해야하는게 너무 아쉬웠다.
선수 끼리 만나니 하고픈 말들이 너무 많았다.
좋은 정보는 보너스다.
이 때 비로소 방글라 도착 비자는 허울 뿐이라는 결정적인 함정을 알게 됐다.
원래 도착 비자는 공항에서 비자피를 내면 발행 해주는 제도다.
그런데 방글라는 달랐다.
일단 초청장과 체류시 묵을 곳의 거주확인증 그리고 아웃 바운드 뱅기 티켓을 첨부 해야한다.
내가 만난 여행자는 육로로 방글라로 가려다가 거부 당했다.
육로는 닫혀 있고 항공편만 열려있다.
캘커타의 대사관에서는 발급 불가였다.
다시 뉴델리로 돌아와서 한국과 방글라 대사관을 쫒아다녔다.
겨우 서류를 만들어 접수하고 열흘 만에 사전 비자를 받았단다.
보통 보름 이상 걸리는데 다행히 열흘만에 받았다는거다.
많은 시간과 비용과 수고를 들인 1급 정보를 맥주 몇 병에 넘긴거다 ㅎㅎㅎㅎㅎ
난 다른건 몰라도 여행복은 확실히 있는것 같다니깐 ~
지금도 카톡으로 연락을 주고 받는 은인님에게 다시 거듭 진짜 감사한다.
언젠가 우연히 어느 오지 나라의 길 위에서 다시 만날꺼란 예감이 든다.
어떤 유투버는 도착비자를 믿고 태국에서 방글라로 입국했다.
공항에서 거부 당해 10시간 이상을 허비했단다.
그리고 구체적인 방법은 밝히지 않은채 어찌어찌해서 통과 했다고 멘트 치는걸 보았다.
나는 이런 식으로 찌질하게 구는 나라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귀찮고 짜증이 나서 그냥 패스 해버릴까 생각도 했다.
하지만 이미 끊어 놓은 뱅기표를 날리는게 아까웠다.
문제는 풀라고 있는거다.
풀면 되는거지 뭐.
생각해낸게 현지 한국 교민이나 숙밥업을 하는 분을 찾아서 도움을 받는거였다.
인터넷을 찾아보니 다카에서 제일 큰 궁 한인 게스트 하우스가 눈에 띄었다.
내 사정을 설명하고 도움을 청하는 멜을 보냈다.
답장이 왔는데 장기 손님으로 방이 다 차 있다는거다.
게다가 자기는 지금 영국에 있는 작은 아들과 여행 중이라 도움을 주지 못해 미안하다는 거다.
에구궁~ 방글라는 나랑 인연이 아닌가 보다.
망설이다가 밑져야 본전이라는 심정으로 다시 멜을 보냈다.
눈물 없인 읽어 내려갈수 없을 정도로 절절한 나의 소개와 사연을 적었다.
답장이 왔다.
자기와 절친인 CK하우스의 정사장에게 연결을 해주겠다는 고마운 내용이다.
바로 여권을 복사해 보냈다.
하루만에 초청장과 거주지 증명을 받았다.
그리고 태국으로 가는 뱅기표를 예매했다.
일정은 5박 6일로 대폭 줄였다.
이틀 만에 상황이 끝났다.
인터넷 정보만 너무 믿으면 안된다는걸 다시금 실감했다.
특히 코로나 때문에 거의 2년의 여행 빙하기가 있었기에 정확한 최신 정보가 별로 없다.
가장 좋은 방법은 최근에 다녀온 사람의 얘기를 들어보는거다.
진짜 여행은 배움이다.
경청(傾聽)이다.
만남과 소통이다.
홀로 여행의 찐재미는 어려운 문제들을 눈누난나^^ 풀어가는 과정이다.

방글라 국적기인 Biman Air 타고 갔다.
비만 항공이라서 그런지 남자고 여자고 비만인 사람이 많았다.
비행기 좌석이 좁다고 느낀건 처음이다. (아재개그 해본거니 이해 바람요)

이슬람 국가는 금요일이 빨간색 공휴일이다.
달력에서 문화와 관습의 차이를 단적으로 알수가 있었다.

서민들의 고달픈 삶이 짙게 배인 자전거 인력거인 릭샤.

한인 하우스에서 묵었다.
뱃살 튀어 나올 정도로 잘 묵었다.
여행자가 아닌 현지 주재하는 회사 임직원 전용 하숙집이다.
삼시 세끼 맛난 한식을 제공한다. 픽업 드롭과 여행 정보제공 그리고 입국 서류 준비 등 등 토탈 서비스를 제공한다.
하루 90불이면 배낭 여행자에게는 비싼 가격이지만 충분한 값어치를 한다.
만족하고 오히려 많은 도움과 친절에 감사한다.
글로벌웹진 NEWSROH 칼럼 ‘안정훈의 세상사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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