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저..또...저로 말씀드릴 것같으면...”
뉴욕에 그렇게 오래 살면서도 한번도 만난 적이 없는 고위직 관리나 소위 ‘뉴욕의 귀족(貴族)’으로 자처하는 굵직한 단체장들이 비서의 연결 없이 직접 내게 거는 전화가 줄을 이었다. 황우석, 그가 세계적인 과학자가 된 것이다. 정말 내게는 뜻밖의 소식이었고, 그의 명성(名聲)을 한 눈에 가늠을 할 수 있을만큼 사회적으로 높은 자리에 오른 별별 사람들이 내게 전화를 했다.
“황우석 박사의 스케쥴을 알려 주시면 저희 단체도 한번 모셔서...”, 또는 “예, 여기는 필라델피아입니다. 뉴욕하고 필라가 그리 멀지 않으니...헤헤..연결만 되게 해주신다면...”, 그런가하면 “황우석 박사가 뉴욕에 오면 저희 신문사가 제일 먼저 인터뷰하게 해주셔야 돼요. 아시죠?”등등 참 다채롭고 화려한 전화에 어리둥절할 뿐이었다.
하루 24시간 연구실에 박혀 인간의 복제(複製)된 배아(胚芽)에서 줄기세포를 추출하는데 전념하는 황우석 교수가 짜잔~하고 ‘타임’지가 선정한 <전 세계에 영향력 있는 100인> 과학/사상분야의 한 사람이 되자 한국이 발칵 뒤집어지고, 저마다 ‘황우석’을 찾기 시작했다.
황우석 박사 이전에 유명한 분들을 연사로 초청했던 ‘한국여성포럼’은 행사마다 곁다리로 슬쩍 끼어 연사를 교묘하게 빼돌리는 ‘얌체’ 그룹이나 단체들에 질린 터였다. ‘정말 귀감이 되는 분이라면 무명도 좋다’는 배짱으로 초대한 황우석 교수가 갑자기 언론을 타자 슬슬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유명해져서 행사에 못오는거 아니야?’ 또는 ‘갑자기 세계적인 분이라 행사준비가 달라져야 되나?” 등등 정리되지 않은 생각들이 마구 날뛰었다. 와중에 “황우석 박사님이 뉴욕에 오시면…” 하면서 은근슬쩍 맨 입으로 끼어 보려는 으리으리한 단체들의 속셈에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그랬다. 초대할 무렵엔 농장에서 소들의 자궁에 손을 넣었다 뺐다하며 연구하던 황우석 교수가 뉴욕에 올 무렵에 ‘세계적인 스타 과학자’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 한국여성포럼 행사이후 참석한 분들과 함께
제 6회 한국여성포럼-남자는 무엇으로 사는가?
이 행사를 치루면서 나는 나의 삶을 바꾼 세 남자를 만났다. 황우석 박사가 한 사람이요, 패널리스트로 나선 김기수 신부가 또 한 사람, 오늘날 ‘뉴스로’ 대표 노창현 씨가 그 셋 중에 한사람이다.
김기수 신부에 대해 얘기할 때면 언제나 나는, ‘살면서 만날 수 있는 드문 행운’으로 꼽고 있다.
앞서 얘기했지만 패널리스트 부탁을 하는 ‘사회의 귀감(龜鑑)’들에게 거절당했던 나는 문득 꽤 오래 전에 얼핏 들었던 한 신부가 생각났다. 맨하탄에 있는 성 프란치스코 성당의 한인공동체의 주임신부라던 김기수 프란치스코 신부의 사연은 이랬다.
충청도 깡촌에서 자란 어느 소년은 가난으로 일찍 공장을 전전하다가 목돈을 벌기 위해 월남전에 자원한다. 뼈빠지게 일해도, 목숨을 걸고 돈을 벌어도 벗어날 수 없던 가난. 월남에서 돌아온 뒤 직장을 구하려고 뛰어 다니던 어느 날, 월남에서 배운 지프차 운전을 빌미로 이란에 가서 트럭운전수로 일하게 된다.
이란 혁명 후 미국의 어느 회사가 인수하게 된 이란의 회사의 트럭운전수였던 그는 인수된 직원들에 끼어 미국의 보스턴에 정착하게 된다. 그는 참 열심히 일했다. 이제는 식구들에게 돈을 보내는 것에 장가 갈 밑천도 마련해야 했다.
충청도 산골에서 사는 어머니는 친척들을 모두 수소문해 미국에 사는 먼 사촌 아주머니에게 이제 나이가 든 아들에게 색시감을 구해달라고 연락을 한다. 맞선 장소에 나온 아리따운 여성은 보스턴에서 샌프란시스코에 날아 온 남자에게 호텔에서 심심하면 읽어 보라고 책을 건넨다.
천주교? 이게 무슨 말이야? 뜻이 뭐지? 서른이 넘도록 천주교라는 말을 들어 본적이 없는 그는 처자가 건넨 천주교의 성인 ‘성 프란치스코’의 전기에 매료된 뒤, 모든 것을 버리고 프란치스코 수도회에 입소한다. 중등교육을 제대로 마치지도 못했던 서른의 이 한국 남자는 미국 프란치스코수도회의 신부가 되어 맨하탄에 부임했고, 그로인해 맨하탄 성당에 한인공동체가 시작된다.
샌프란시스코에서 프란치스코 성자를 만난 김기수 신부는 중국 연변과 북한을 오가며 탈북자를 돕고 있었다. 여성포럼 초빙의 뜻을 전했을 때 “우리 신부님은 그런 자리엔 안가셔요”하던 수녀의 말에 기운이 쭉 빠졌지만 그래도 과거의 행사자료를 놓아두고 연변에서 김기수 신부가 돌아오기를 눈빠지게 기다렸다.
“저...김기수 신부님이세요? 신부님, 저는 한동신이라고 합니다. 수녀님께 여성 행사에 대해 자료를 두고 간...”
“활달한 사람같은데 뭘 그렇게 뜸을 들여요? 그래 합시다. 재밌겠는데 뭘…”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김기수 신부의 대답은 마치 나를 보고 있는 듯했다.
* ‘뉴스로 승선기’ 4편에서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