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차가운 겨울비가 차창을 때리고 있었다. 안개가 낀 탓도 있었지만 눈물로 범벅이 된 시야는 종내 뿌옇기만 했다. 차창 밖으로 지나는 풍경들 역시 하나같이 흐릿해 보였다.
뉴욕에서 북쪽으로 올라가는 길. 도심을 벗어나서 시골에 들어서니 도로 양 옆으로 붉은 빛깔의 건물들이 드문드문 시야에 들어왔다. 적벽돌 색깔의 페인트가 칠해진 대부분의 건물들은 ‘ㅅ’ 형태로 단순하게 지어져 있는데 여기서는 그런 건물을 일러 두리뭉실하게 ‘반(Barn)’이라고 부른다.
우리말로 풀이하면 외양간, 헛간, 곳간, 마굿간 등의 용도로 쓰이고 있으며 주로 건초더미들을 쟁여놓거나 동물들을 키우는 축사(畜舍)로 사용하는 편이다. 예전과 달리 농장이 많이 사라진 지금은 멋스러운 작업장으로 탈바꿈 되기도 하고 창고로 쓰이기도 한다. 쉽게 표현하면 어마어마한 크기의 광이라고 할 수 있다.
세월의 풍상(風霜)이 앉은 덕분에 지어진지 백년이 넘는 건물을 보면 고색창연(古色蒼然)하기가 이를데 없으며 멋스럽기 까지 하다. 허름하게 얼기설기 목부가 대충 지은 것부터 장인(匠人)의 섬세한 솜씨가 돋보이는 것 까지 그 규모며 차이가 다양한데 용도가 용도인지라 농장의 본체와는 건물과는 웬만큼 거리를 두고 있으며 얼추 3, 4층 정도의 높이로 지어져 있고 예외없이 목재로만 되어 있다.
시골에서 반과 어우러진 목가적(牧歌的)인 풍경을 보면 어김없이 ' 그림좋다'라는 탄성이 나오곤 했지만 그날은 그렇지 못했다. 급작스럽고 황망한 비보(悲報)를 접하고 가는 길 그 멋스럽던 반이 그날은 왜 그렇게 원망의 눈빛으로만 보게 되던지...... 그로부터 두달이 지나고 다시 같은 길을 따라 간 곳은 경매장이었다. 경매를 시작하기 앞서 단상에 오른 돌로레스가 조심스럽게 그간의 경위를 설명하는 자리를 가졌다.
“자정무렵, 갑자기 말들 울음소리가 났어요. 웬일인가 싶어 자다말고 맨발에 파자마 바람으로 황급히 밖으로 뛰쳐 나갔습니다. 마굿간 쪽에서 불길이 번지고 있었어요. ‘말! 말! 말!’ 우리는 미친듯이 달려가 줄을 묶인 말들을 풀기 시작했지만 불길은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커졌고 연기로 자욱해 왔습니다. 숨 쉴 수가 없을 정도로 연기가 차고 백년도 넘은 목재 건물이라는 생각에 미치자 남편에게 소리질렀죠. ‘빨리 나가야 해. 어서 그만 나가요!’ ‘안돼, 아직 자정이를 못 풀어줬어’ 라며 놀라서 거칠게 뛰어대는 말 세마리를 안간힘을 써서 밖으로 밀쳐냈습니다. 그리곤 다시 안쪽으로 뛰어 들어가는 것을 ‘안돼~위험해!’ 외마디 지르는 찰나 마굿간의 천정은 삽시간에 힘없이 폭삭 주저 앉고 말았습니다.“
어깨가 들썩거릴 정도로 비통함에 흐느끼고 있어서 말이 끊어졌지만 최대한 침착하게 150여 명이 모인 자리에서 말을 계속 이어나갔다.
“솔직히 반의 화재를 떠올리는 것조차 너무도 고통스럽네요. 믿어지지도 않구요. 하지만 물으시는 분들이 많아서 경위를 설명해드리려고 합니다. 그날 밤 화재로 농장에서 키우던 말 네 마리를 잃었어요. 남편이 3마리를 구했고 저는 겨우 한마리를 밖으로 끌어 냈습니다.평상시가 아닌 위급한 상황이다보니 말 줄을 풀어내기가 여간 어렵지 않았습니다. 숨조차 쉴 수 없는 위험한 상황이었던 만큼 다만 1초라도 빨리 현장을 벗어나야 했지만....... 어떤 분들은 그런 위급한 상황에 911에 전화부터 하지 않았냐고 하셨지만 당시엔 그럴 촌각의 여유도 상황도 아니었습니다. 너무 다급했어요. 모든 일이 불과 몇 분 사이에 일어났기 때문이지요. 나중에 소방차가 오긴 왔지만 소방도로가 아닌 농로를 따라 들어오기란 쉽지도 않았고 길도 표시되어 있지 않아서 그들이 도착했을땐 화마(火魔)가 모든것을 삼켜버린 뒤였습니다.”
이야기를 듣는 이들 모두가 모두가 침통했다. 사람들의 깊고 긴 장탄식(長歎息)이 여기저기서 들렸다.
“‘미드나잇을 구해야 해!’ 이 말이 남편의 유언이 되었네요. 아마 똑같은 상황이 다시 벌어진다해도 그는 말들을 불구덩이에 두고 혼자 도망치지 않았을 것입니다. 한마리라도 더 살리기 위해 정작 자신의 위험은 뒤로 한 채 뛰어 들었을 겁니다. 매일 아침 말 8마리를 일일이 챙겨주고 닦아주는 일로 시작했을 정도로 말들을 좋아했어요. 그중에서도 ‘Midnight(자정이란 이름의 말)’은 자식과 다름 없었다고도 할 수 있어요.”
이야기를 듣는 이들 모두가 모두가 침통했으며 숙연했다. 미국의 골동품이라는 것에 대해 아무런 지식도 경험도 없었던 1998년 무렵 매사추세츠 지역을 여행하다 우연히 재미삼아 들렀던 한 경매장에서 그들을 만났으니까 햇수로는 16년을 알고 지내고 있는 셈이고 적어도 두어달에 한번꼴로 봐왔으니까 따지고보니 가족보다도 자주 얼굴을 보던 사람들이었다.
“그이는 올해로 60세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같은 고향에서 만났어요. 16살이던 청년을 본 엄마는 욕심나서 놓치고 싶지 않다며 적극적으로 딸인 저와의 만남을 주선하셨고 스무살 되던 해에 결혼했으니 제 첫사랑이었지요. 이제 결혼한지 40주년이 되어갑니다. 책임감 있고 성실해서 엄마의 눈에 들었지만 유머감각 넘치는 남자를 놓치면 평생 후회한다면서 결혼을 적극적으로 서두르셨지요. 1988년 당시 오빠가 경매사업을 했는데 잠시 도와주러 왔던것이 그이의 탁월한 식견으로 해서 결국 이 일에 본격적으로 발을 들여놓게 되었으니 지금껏 이 자리에서만 26년을 해 온 셈입니다.
일에 중독된 사람처럼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일을 했습니다. 그러다보니 사업기반도 빨리 잡혔고 그가 꿈꾸던 농장도 가지게 되었습니다. 경매 일 외에 그가 가장 애착을 보인 일은 말이었습니다. 어찌나 좋아했는지 눈 뜨자마자 달려가서 챙기고, 닦아주고, 갈기를 빗질해주곤 했지요. 해를 거듭하면서 8마리로 불어나면서 일도 많아져서 조금씩 기반이 잘 다져진 경매일에서 손을 떼고 말 돌보는 일로 여생을 보내고 싶다고 했습니다. 자정에 태어났다고 해서 이름도 ‘자정’이라고 붙여준 녀석은 생긴 무늬가 마치 얼룩소를 닮아 한눈에 사랑에 빠졌습니다. 그 녀석을 타고 농장을 한바퀴 둘러보는 시간이 그가 가장 행복해 할 때 였습니다.
6살박이 손주가 그러대요. ‘할아버지는 PEGASUSU(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날개를 가진 말 페가수수)처럼 말 4마리와 함께 하늘 높이높이 날아갔다'고. 아마도 그런것 같습니다. 친절한 남편으로, 손주들에게는 따뜻한 할아버지로, 투철한 직업의식을 가진 경매사로 바쁘게 살았던 그가 이젠 좀 쉬겠지요. 30년 가까이 그가 일궈온 이 일을 앞으로 제가 어떻게 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습니다. 하지만 열심히 최선을 다해 보겠습니다. 그가 살아있었을 때처럼 자주 와주십시요. 오늘 그간 떠난 후 처음으로 용기있게 경매장을 열고 이 자리에 그를 대신해서 서고보니 그의 자리가 이렇게 큰 줄 미처 몰랐던 것 같습니다......”
우리는 경매장을 더욱 자주 찾았다. 딱히 구할 물건이 있는것도 아니고 살 요량도 아니었지만 일주일이 멀다하고 드나든것은 1인 5역을 하던 그가 떠나고 없는 자리를 힘겹게 약한 모습 보이지 않으려고 애쓰는 부인에게 우리 두사람이라도 빈자리를 메움으로서 힘을 실어주기 위해서였다.
그 동네에서는 아저씨의 끊임없는 유머와 재미난 경매진행 방식으로 소문이 자자해서 경매보다는 주말이면 그의 입담을 즐기려는 주민들로 항상 북적거리곤 했지만 그가 떠나고 없는 자리엔 어쩔 수 없이 조금씩 이가 빠지듯 객석에는 빈자리들이 늘고 있었다.
예전같으면 치열한 경쟁을 물리치고 마음에 드는 물건을 구입하기라도 하면 돌아오는 길 신이 나고 즐거웠는데 언제부턴가 그런 모습은 사라지고 멀리 드문드문 풀을 뜯고 있는 말들이 보이거나 그림좋은 곳에 Barn을 볼라치면 그 아저씨와 말 생각이 나서 애써 외면하게 되었다.
뉴욕에는 지난 주 부터서야 막 꽃망울이 터지면서 화사한 봄이 찾아 왔는데 무채색의 세상에 아주 깊이 떨어진 느낌이다. 형언할 수 없는 자괴감과 무력감에 시달리고 있으며 상실감과 허탈함 투성이다.
지난 16일 한국에서 들린 사고 이후 하루하루가 먹먹하기만 하다. 참담하고 비통한 심정을 뭐라 설명할 길도 없고 울분과 분노를 다스릴 길도 삭힐 길도 없어 보인다.
사람이 살면서 겪게 되는 뜻밖의 사고는 어디서나 날 수 있고 누구라도 겪을 수 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퍼즐 맞추기 식으로 당시의 정황들을 모아보니 어쩔 수 없었던 불가항력(不可抗力)의 사고가 아닌 뭇 사람들의 황금 만능주의와 구조적으로 뼛속 깊숙히 박힌 해당 공무원과 관청의 안전불감증과 무리하게 수익만을 쫒은 생명경시 풍조가 빚어낸 총체적 인재였음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백년 전 있었던 타이타닉호의 침몰에서 승객들의 목숨을 살린 다음 배와 함께 선장도 운명을 같이 했다는 그런 영화속 이야기 같은 선장을 바라는 것은 절대 아니다. 하지만 아무리 거듭 당시의 긴박했던 상황을 이해하려고 해도 정말 용서가 안되는 것이 하나 있다.
수백여의 목숨들이 수장되어가는 찰나에 구조된 선장이란 작자가 젖은 지폐뭉치를 펴서 말리고 있었다는 소식을 접하고 보니 그 분노(憤怒)를 감당할 수 없는 한계 수위에 다다른 느낌이었다.
선장을 비롯, 선원 누구라도 최소한의 직업윤리 의식과 책임감이 조금이라도 있었더라면 아니, 누구하나 비상벨이라도 누를줄 알았더라면 그래서 ‘빠져나오라’는 외마디라도 소리쳤더라면 수백명을 일순 수장(水葬)시키는 그런 끔찍하고도 참혹한 참사는 면할 수 있었을 것을......벗을 수 없는 죄책감에 몸둘 바를 모르겠다. 미안하고 죄스럽기 그지없을뿐더러 너무 아프다. 누구 할 것 없이 우리 모두가 아프다.
사고에서 구조에 이르기까지 살릴 수 있었던 목숨들을 수장시킨 그 모든 과정에 있었던 일들을 규명해내고 책임을 통렬하게 서슬 퍼렇게 물어야만 한다. 위에서 아래까지 지도력 부재, 책임부재가 만연한 사회에서 지휘체계가 잘못되었다면 지위고하(地位高下)를 막론하고 엄벌해야 한다. 세월호 참사는 숱한 여객선 사고의 하나가 아니다. 세월호에 단 하나에만 그치지 않아 보인다.
남탓은 하기 쉽다. 하지만 이제라도 스스로를 돌아보아야 할 때 이다. 하나에서 부터 열까지 속속들이 낱낱이 거짓없이 밝혀져서 책임을 묻고 반면교사(反面敎師)로 삼지 않으면 안된다. 그렇지 않으면 세월호는 과거가 되지 못하고 현재 또는 언제 닥칠지 모르는 미래진행형이 되어 어디서 어떻게 덮칠지 모르기 때문이다.
만에 하나, 이제껏 해왔던 식으로 쉬쉬하거나 책임소재 떠넘기기 식으로 대충 국민을 우롱하고 기만하려는 작태가 보인다면 성난 민심은 결코 용서하지 않고 세월호가 그랬던 것처럼 그런 무리들을 모두 싸안고 침몰시킬 것이 자명하다.
미국과 한국 아무리 지역적으로 멀고 문화와 역사가 달라도 사람목숨은 누구에게나 하나 뿐인 소중하고도 귀중한 것인데 달라도 어떻게 이렇게 다른 상황이 연출될 수 있을까? 수백명의 목숨을 주검에 이르도록 아무것도 한 것이 없는 한국의 선장과 비록 동물일지언정 살리겠다고 불 속으로 뛰어들어서 네 마리의 생명을 살려놓고 미처 빠져나오지 못한 말들과 먼길을 떠난 한 미국 경매사가 오늘처럼 이렇게 심한 대비가 되어 보일 수가 없다.
자정에 미드나잇과 세마리의 말을 데리고 떠난 경매사 아저씨. 손주인 소피아의 말마따나 날개를 단 페가수수(Pegasusu)가 되어 사랑하는 가족의 머리 위 하늘 어디쯤 날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 자정에 태어났다고 해서 이름도 ‘Midnight’ 이라고 붙여졌다. 말임에도 특이하게 젖소 무늬를 가져서 많은 사람들에게 특별히 기억되던 자정은 Keith 아저씨가 말 8마리 중에서 가장 아끼던 말이었다. 미드나잇 등에 올라타서 쉬엄쉬엄 농장을 한바퀴 돌아보는 시간이 그에겐 가장 행복한 때 였다고......
Rest In Peace......
엎드려 사죄하는 마음으로 세월호 사고로 돌아가신 분들의 명복을 빌어마지 않는다.
▲ 제목/ Human Sorrow Figures. 종이에 잉크. 2009년. 설명/ 차마 말로는 설명조차 없는 슬픔과 헤아릴 수 없는 아픔만이 있을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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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4-12-02 09:53:15 뉴스로.com에서 이동 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