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챦아 엄마. 정말 괜챦다니까! 때 안밀어도 돼!” “야가 말하는것 좀 봐, 언제 미국서 목욕탕 가서 등 밀 일이 있겄냐. 미국은 목욕탕도 없다면서! 엄마가 밀어준다고 헐(할)때 가만 잠자코 있으래도!”
정말이지 나는 때를 밀 생각이 조금도 없었다. 숙소 아랫층에 사우나가 딸려 있길래 가볍게 샤워나 하고 뜨거운 욕조에 몸을 좀 좀 담그면 너댓 시간 탄 기차여행의 피로가 풀릴 것 같아 들어간 목욕탕이었다.
근래들어 엄마는 대중탕은 숨이 막혀 답답해서도 그렇고, 자칫 미끄러질까봐 불안해서 혼자는 간적이 없다고 했다. 숙소의 투숙객들을 상대로 만든 사우나여서 일반 대중탕과 달리 습도가 느껴지지 않아 숨도 막히지 않고 자연채광(自然採光)이 되는 곳이어서 좋았다. 무엇보다도 사람들이 거의 없어서 모처럼 엄마와 함께 쾌적한 목욕을 즐길 수 있었다.
늘 하던대로 엄마는 들어가자마자 앉은뱅이 플라스틱 의자부터 찾아 앉더니 목욕을 시작했다. 반면에 나는 샤워만 끝내고 뜨뜻한 탕에 몸을 깊숙히 담그고 멀찍이서 엄마를 바라보았다. 허리가 둥그래미가 되어진지 오래인 엄마는 새우등 같기도 하고 어찌보면 영어 알파벳 C 처럼 등이 완전히 굽어져 있었다. 저만치 앉아 열심히 목욕을 시작하는 엄마를 물끄러미 바라보노라니 옛 생각이 주마등(走馬燈)처럼 떠올랐다.
“아가(아직도 엄마는 나를 아가로 부른다^^), 그만 나와라. 더운물에 오래 앉아 있으면 지치는 법이여.” 엄마는 서둘러 나를 불러내더니 의자에 앉혔다. 그러더니 의기양양(意氣揚揚)한 기색으로 오른손에 분홍빛에 줄이 쳐진 이태리 타올을 끼우셨다. “어서, 이리 대” 뜻밖의 돌연한 행동에 난 어리둥절했다.
“아이 참, 정말 난 괜챦다니까.” “목욕하러와서 등을 안밀고 가면 개운하겄냐?” “남들이 보면 엄마한테 등 밀어달라고 앉아있는 날 뭘로 보겠어?” “야, 여기 목간통(목욕탕)에 있긴 누가 있냐? 그리고 또 좀 보면 어뗘? 아, 엄마가 딸 등 밀어주는게 뭐가 흉이 된다고?”
정말이지 극구 사양했지만 팔순의 노모는 막무가내였다. 어쩔수 없이 태평양 만한 내 등짝을 엄마의 코 앞에 들이대야만 했다.
불현듯 어렸을적 엄마가 내 사정 봐주지 않고서 사정없이 씻기던 생각이 나서 “대신, 살살 밀어. 알았지?”라는 당부를 잊지 않았다.
▲ 제목 Woman Figure/2005/graphite on paper
우리가 살던 교동에는 걸어서 5분 거리에 목욕탕이 하나 있었다. 멀리서도 유난히 잘 보였던 그 건물과 이웃해서 검은 그을음 자국이 선명한 높은 붉은 굴뚝이 있었다. 그 위에는 흰 페인트로 위에서 아래로 쓰여진 ‘무궁화탕’이란 궁서체의 상호가 써 있었는데 동네 오래된 성당을 제외하곤 가장 높았던 건물로 멀리서도 누구나 쉽게 볼 수 있었다.
겨울철이 되면 목욕탕 가는 것이 일이었던 시절이 있었다. 그 시절 대개 그랬듯이 욕조가 있고 온수가 콸콸 쏟아지는 집은 거의 찾기가 쉽지 않았기에 누구나 할 것 없이 대중탕을 찾았다. 한달에 두세번씩 정기적으로 할머니나 엄마 고모를 따라 다녔다. 대부분 내 의지와는 무관하게 반 강제로 끌려가다시피해서 가곤 했다.
한마디로, 목욕탕 가는 것은 정말 내키지 않았던 일로 괴로웠던 기억들로 가득하다. 뿌옇게 김이 서린 목욕탕 안에서는 숨이 늘 막힐 것 같았고 천정에서 뚝뚝 떨어지던 차가운 물방울들은 어린 나를 소스라치게 놀라게 했다.
훈김이 가득한 그곳에서 사람들은 늘 만원이었으며 복잡하기 그지없었다. 바가지로 물을 퍼 쓰는 소리, 동네 아낙들의 쉴 줄 모르는 수다와 아이들의 뛰어다니면서 치는 장난과 어른들의 고함소리 등이 묘하게 섞여 한 편의 ‘목욕 교향곡(沐浴交響曲)’을 방불케 했다.
무엇보다 괴로웠던 것은 아이들의 자지러지는 울음소리였는데 머리 감기면서 들어간 비눗물 때문에, 사정없이 때를 미는 엄마들의 손놀림이, 한번이라도 더 뜨거운 욕조에 아이들을 데리고 들어가려는 어른들의 극성이 소란스럽다 못해 아수라장(阿修羅場) 같이 만들었던 것 같다.
그 극성스런 엄마들 중에 한 분이 내 엄마였는데 나의 가느다란 긴 팔을 마치 김장 무를 씻기라도 하듯이 사정없이 비틀어 씻기곤 했다. 그뿐이 아니다. 뜨거운 물을 머리부터 들이 붓던 기억과 더불어 거의 안다시피 해서 탕 속으로 나를 집어넣기도 했다.
무엇보다 싫었던 것은 때밀기였는데 그때마다 “이거 봐라 이거좀 봐. 때가 국수가닥처럼 밀리는데도 목욕을 안해?.” 라며 어렸지만 나의 수치스러움을 볼모로 잡곤 했다.
또한, 목욕탕에선 더러 동네 친구나 같은 반 아이를 만나기도 하고 운이 나쁘면 담임선생님을 정면으로 마주치기도 했는데 그럴 때마다 창피해서 쥐구멍이라도 찾아 숨고 싶은 심정뿐이어서 목욕탕 가기가 죽기만큼 싫었던 기억이 새롭다.
그 때문일까? 지금도 목욕탕에 갈 일이 생기면 사람 많은 곳을 피하고 때 미는 일을 하지 않는다. 그런 딸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우리 엄마는 아랑곳하지 않고 수십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도 내 때 밀기를 고집하고 있다. 엄마는 팔십을 넘어 호호 할머니가 되었고 목욕하기 싫어 투정하던 그 어린 딸도 이제 오십을 넘었는데….
이왕 내친김이라 엄마의 소원대로(!) 등을 통째로 내맡겼다. 부지런히 위로 아래로, 좌로 우로 손을 쉴 새 없이 움직이고 있었지만 힘은 조금도 실려 있지 않았다. “아이고, 우리 엄마, 지금도 때미는 솜씨는 여전히 맵네.” 라며 추임새를 사정없이 넣었지만 오래전 나를 씻기던 예의 그 매운 손때는 간 곳 없없다.
한 술 더 떠서 “엄마, 가운데 좀 팍팍 밀어줘봐봐. 그렇지. 거기 거기. 아, 시원하네. 역시 엄마 때미는 솜씨는 조금도 녹슬지 않은것 같아” 라며 호들갑을 떨었지만 예전처럼 아프기는 커녕 엄마의 손놀림은 나비처럼, 바람처럼, 간지럼처럼 느껴졌다.
▲목욕탕서 때를 밀 때 맵기만 했던 엄마의 손. 지금은 팔순을 넘긴 당신의 손이 곱기만 하다. 며칠전 친구분(왼쪽)과 함께 어여쁜 두분의 손을 모아 봤다.
당신 몸 하나 씻고 감당하기도 버거운 이 마당에 곱절이나 커진 딸의 큰 등을 왜 그렇게 밀어주고 싶어 했을까. 모르긴 몰라도 등을 밀어주는 순간만큼은 당신 나이를 잊고 타임머신을 타고 젊은 시절의 엄마로 돌아가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목욕을 하고나면 개운해서도 좋지만 마치 포토샵으로 사진을 꾸민것처럼 화사해지는 그런 느낌이 든다. 목욕을 막 마치고 나오는 엄마의 얼굴이 한층 뽀샤시해진듯 싶다.
엊그제 팔순 노모의 손을 꼬옥 붙잡고 멀리 전라남도 고흥 반도까지 기차와 버스로 강행군 하다시피 다닌 일주일 여의 결코 만만치 않았던 여정(旅程)을 통해서 그리고 엄마와의 목욕을 통해서 ‘비록 노쇠했지만 결코 늙지않은’ 꼬부랑 젊은 엄마를 다시 만날 수 있었음은 큰 보람이었다.
출국하기 전 엄마에게 등이나 한번 더 ‘빡빡’ 밀어 달라고 해야겠다.
▲제목 Woman Figure/ 2007/watercolor on paper. 엄마가 등을 밀어주던 내내 여러 생각이 참 많이도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