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sroh=김지영 칼럼니스트
벌써 김수환 추기경님의 9주기, 지난 14일이었다.
이번 기일(忌日)은 설날 연휴로 이어졌기 때문인지, 유독 김 추기경님이 간절하게 그리워지고 생전에 하신 말씀과 일들이 많이 떠올랐다. 생각할수록 김추기경님은 ‘미디어’와 ‘커뮤니케이션(소통-공감)’에서도 선구자였다.
그 분이 얼마나 ‘미디어-소통-공감’을 중시하고 열정을 바쳤는지는 생전의 말씀에서도 잘 드러난다. 지난 1964년 6월부터 2년간 가톨릭시보사(현 가톨릭신문) 사장으로 일하던 시절을 회상한 말씀이다. “···평생 사제생활중 가장 투철한 사명감과 기쁨으로 투신한 시기였습니다···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열정을 다해 일했습니다···정말 하루 24시간중 밥먹는 시간이 너무 아까워 비타민 타블렛 같은 것으로 대신할 수 없을까 고민할 정도였습니다”
이처럼 뜨거운 열정과 헌신은 바로 2차 바티칸 공의회 정신을 이 땅에 구현하려는 의지에서 비롯한 것이다. 공의회가 교회의 창문을 활짝 열어 시대의 징표(徵標)들을 식별하고 쇄신을 이루자고 한 뒤 ‘미디어와 커뮤니케이션’은 사회매체 교령을 통해 그 핵심적 요소로 제시됐다. 교황청에 ‘사회 커뮤니케이션 위원회’가 설립되고 우리나라에서도 ‘한국저널리스트클럽’(현 한국가톨릭언론인협의회)과 주교회의 매스컴위원회가 잇따라 신설된다.(1967년 6월)
이때 매스컴위원회 총재에 신설 마산교구 초대 교구장인 김수환 주교가 선임된다. 김 추기경님은 저널리스트 클럽을 전폭적으로 지원하면서 주교회의 매스컴위원회에 평신도인 클럽 회원들을 대거 참여시켰다. 그 뒤 신부님들과 평신도인 언론인들은 미디어와 커뮤니케이션이라는 공동 명제를 안고 반세기동안 호흡을 함께 해왔다.
김 추기경님이 교회의 논의구조에 평신도를 대거 참여시킨 것도 평신도의 사도직을 특히 강조한 2차 공의회 정신을 따랐기 때문이었다. 2차 공의회 이전에는 성직중심주의를 강조한 트리엔트 공의회(1545~1563)의 영향으로 교회활동 일체가 성직자에게 맡겨졌으며 평신도들은 성직자들이 시키는 대로 따르도록 했던 것이다.
그런데 이상하다.
아직도 2차 공의회 정신을 무시하고 중세의 트리엔트 공의회를 지향하는 현상들이 보인다. 필자는 지난달 이 칼럼 란에서 주교회의 매스컴위원회가 그 명칭을 ‘사회홍보위원회’로 바꾼데 대해, 구시대 회귀적 표현으로서 일방적 소통을 뜻하는 ‘홍보’라는 오역(誤譯)에 집착한다고 지적한 바 있다. 또 미디어와 커뮤니케이션의 눈부신 변화라는 시대적 징표를 알지도, 알려고 하지도 않는다고 했다. 한편 지난해 말 매스컴위원회는 그 명칭이 변경되기 전, 기존 조직이 해체됐다. 평신도는 모두 배제하고 전국 각 교구의 홍보담당 신부님들로 재구성한다는 설명도 들었다.
가톨릭매스컴상의 경우. 매스컴위원회가 주최하고 언론인협의회가 지원해온 이 상은 매년 연말에 주로 서울 시내 프레스센터에서 시상식을 열었다. 바쁜 언론인들이 편하게 올 수 있게 하려는 배려 때문이다. 또 식장에는 라운드 테이블에 간단한 뷔페식 음식을 준비해 참석자들이 격의 없이 소통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했다. 하지만 신부님들의 강경한 주문으로 시상 장소를 멀리 주교회의가 있는 서울 군자동의 천주교중앙협의회 건물로 바꾸었다.
지난해 6월 바꾼 장소의 첫 시상식, 나는 말문이 닫혔다. 강의실 같은 식장에 정면 한 방향을 향한 긴 탁자의 줄. 제1열은 신부님들과 수상자, 2열은 심사위원, 3열은 또 누구하는 식으로 자리가 지정돼 있었는데 신부님들이 모두 제1열에 앉느라 1열은 미어터지는 듯 했다. 사회자는 내빈으로 신부님들만 소개했다. 축사, 격려사도 모두 신부님들의 몫이었다.
시상식 후 1층 로비에는 서서 먹도록 된 뷔페 식 점심이 마련돼 있었다. 작은 VIP실이 따로 있었지만 수상자 일행과 신부님들로 인해 들어갈 여지가 없었다. 수십 년간 한국 천주교를 위해 애 쓴 원로 언론인이나 현역 가톨릭언론단체장 등 평신도들은 존재의미가 없었다. 머리가 허연 언론인들도 마당 구석 등 여기저기 앉거나 서서 식사를 하고 있었다.
나는 매스컴위원회에서 일어난 일련의 일들이 성직주의의 영광을 탈환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보였다. 김 추기경님으로부터 반세기동안 맥을 이어왔던 공의회 정신은 퇴색하고 있고···. 프란치스꼬 교황의 말씀을 다시 들어보자. “성직자는 우월하고 백성들과는 다르다고 여기는게 성직주의에 들어있는 정신이며 이야말로 교회의 악이다”
미디어와 커뮤니케이션에 대한 무지에 ‘악’이라는 성직주의가 가세한다면 ‘최악’이 아닐까.
* 이 칼럼은 가톨릭신문 3월 4일자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