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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산(島山)의 독립운동과 힘기르기 전략 <上>

글쓴이 : 김경락 날짜 : 2015-07-11 (토) 09:02:19


1910년대 로스앤젤레스 도산.jpg

청일전쟁(1894-1895)이 일어난 갑오년에 안창호(安昌浩) 선생은 17세였다. 일본과 청국이 어찌하여 우리나라에 군대를 끌고 들어와서 전쟁하는가에 대한 의문을 가지게 도산은외국 군대가 우리나라에 들어와 그들이 마음대로 하는 것은 우리나라가 힘이 없는 까닭이다.” 라고 깨달았다.

 

당시 청나라와 일본은 우리 조선을 두고 宗主權 다툼을 하였다. 드디어 청국이 일본에게 패하여 2백 수십년간 청국이 조선에 대하여 행사한 종주권을 포기하게 되었다. 이리하여 조선은 국호를 고쳐 大韓이라 하고, 大君主를 고쳐 大皇帝라 하고, 동서 열강에 외교관을 교환하고 외면상으로는 獨立國으로서의 체면을 세웠다. 독립은 되었으나 국민은 더욱 가난해 지고 민생은 도탄에 빠졌고, 외구들은 서로 다투어 한반도를 차지하려 했다. 그리하여 광무황제는 영. . .독 등 여러 나라를 끌어들여 호시탐탐 일본과 러시아를 견제하려 했다. 도산은 힘이 없구나!” 하며 이름만 독립국이지 언제 다시 외구들이 침노할지 알 수 없는 민족의 앞날을 염려하엿다.

 

독립군을 기르기 위한 흥사단 창립

 

2013513일은 샌프란시스코에서 흥사단(Yong Korean Academy)을 창립한지 100주년 을 맞이하는 날이다. 도산의 비서실장을 지낸 항산 구익균 (具益均 도산안창호 혁명사상 연구원 이사장) 단우께서 증언하신 내용과 이창걸 교수(단우)의 논문 革命家, 島山 安昌浩의 혁명 사상과 독립운동’(2006. 6), ‘구익균 선생과의 녹취록’(2007. 10)을 참고하여 100년의 역사를 이어온 민족독립운동단체로 이제 창립 100 주년을 앞두고 흥사단의 정체성 (identity)을 재 정립하여 그동안 가리어졌던 도산 안창호의 혁명적인 사상을 밝히고 이를 실천궁행 하므로 이루지 못한 민족분단을 극복하여 민족통일의 대업을 통한 완전 독립의 길을 모색하고자 한다.

도산(島山) 안창호(安昌浩1878~1938)선생은 독립운동가이며 교육자로서 존경 받는 민족의 선각자이며 혁명적 독립운동가였다. "나는 밥을 먹어도 한국의 독립을 위해 먹고, 잠을 자도 한국의 독립을 위해 잔다" "안창호가 죽어서 한국이 독립 된다면 죽으리라" 선언할 만큼 혁명적 독립운동가였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해방후 단우중 비양심적인친일파들의행동으로 신성한 민족애국단체인 흥사단의 본 정신과 사명까지도 외곡시키며 자신들의 안일과 영달을 위한 발판으로 도모한 사실은 참으로 민족의 이름으로 규탄 받아야 마땅한 일이다.

 

늦었지만 이제 부터라도 도산이 독립운동 전략으로서의 흥사단을 창설한 본래의 목적을 회복하여 우리 흥사단의 지상과제인 완전 독립운동으로서의 민족통일운동 전략으로 백분 활용해야 할 것이다.

 

도산과 기독교 신앙

 

역사를 주관하시고 섭리하시는 하나님께선 국가나 또는 교회에 꼭 필요한 인물을 예비해 두시고 필요한 때에 그 인물을 부르시고 세워서 사용하시는 줄 안다. 대한민국을 사랑하시고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며, 우리 대한에 안창호를 내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바이다. 도산 안창호는 민족운동의 중추적 인물이었다. 그의 정신과 독립운동정신의 기반은 예수의 사랑을 실천에 근거한다. 그의 위대한 사상과 행동은 홍익인간(弘益人間)의 민족사상과 경천애인의 기독교사상에 기반을 두고 있다.

 

그는 189416세에 언더우드가 세운 구세학당(후에 경신학교)에 입학, 세례를 받은 후 193860세에 옥고로 인한 병환 때문에 소천 할 때까지 독실한 기독교 신자로 살았다. 도산은 교회를 중심으로 민족의 혼과 애국사상을 사람들에게 심어주었다.

 

한국개신교(敎會)는 일제의 강점기와 맥을 같이한다. 1884/5甲申政變때 개신교 선교사들이 입국하였고, 1905년 을미사변 때 개신교 선교사였던 언더우드를 비롯한 선교사들이 민비의 시해를 목격하였으며, 1910105인 사건도 기독교와 연관되어 있었다. 또한 19193.1독립운동 역시 33인 가운데 16명이 기독교인이었다는 것은 우연한 일이 아니다. 따라서 개신교는 민족운동의 중심에 서 있었다고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민족사상에 근거하여 독립운동이 일어나고, 이러한 민족사상은 개신교 사상(신앙)에 기초하고 있다. 따라서 독립운동과 신앙운동의 대표적인 인물들은 그 맥락을 같이하며 민족의 주권을 찾는데에 있어서 뜻을 함께 했으며, 상호 분리할수 없다

  

 

1910s_Ahn_Chang-ho.png
1910년대의 도산 안창호선생 <이상 사진 www.ko.wikipedia.org>


1. 흥사단창립배경, 목적

그러한 미국 한인이민사의 10년이 되는 1913년은 한인 이민자 사회의 중심지 샌프란시스코 에서는 공립협회의 실질적 지도자였던 도산 안창호 선생과 8도 대표들이 민족운동단체 '흥사단' 을 창립 한 해이다. 조선8도 각도 대표자로 구성된 창립위원으로 경기도 홍언(洪焉), 충청도 조병옥(趙炳玉), 경상도 송종익(宋鍾翊), 전라도 정원도(鄭源道), 평안도 강영소 (姜永韶), 함경도 김종림(金宗林), 황해도 민찬호(閔燦浩), 강원도 염만석(廉萬石) 등 미국 유학 중인 청년학생이 중심이 되 었다. 흥사단의 궁극적인 목표는 자주독립과 민족부흥을 위한 민족의 힘을 기르는 데 있고, 힘을 기르기 위해서는 덕((()3(三育) 을 동맹수련 (同盟 修練)을 통해 하며, 국민 모두가 민족사회에 대한 주인의식을 가지는대 주력하였다. 흥사단(興士團)은 우리 민족의 선각자 도산 안창호(島山 安昌浩; 18781938) 선생이 민족의 자주 독립과 인물 양성을 위해 1913513일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창립한 민족독립운동 단체가 되었다.

 

흥사단은 일제 강점기에는 민족 독립 운동 단체로서 국권 회복에 기여할 인물 양성에 노력하였 으며 상해임시정부의 운영 자금을 조달하는 등 독립운동을 적극 지원하였다. 해방 후에는 국민 계몽 운동 단체로서 금요강좌의 개최와 새벽지의 발간 등을 통하여 자유와 민주사상을 고취하여 4·19 혁명의 도화선 역할을 하였다.

 

창단 50주년을 맞은 1963년부터는 한국흥사단은 미래 한국 사회 지도자와 흥사단 후계 세대 양성을 위한 청년 학생 운동으로 '흥사단 아카데미 운동'을 전개하여 지금까지 수많은 인재를 배출하였다. 이들은 1980년대 들어 사회 각계에서 민주화 투쟁을 전개하여 한국 사회의 민주 발전에 기여 하였다.

 

1990년대부터 활발하게 전개된 한국 사회의 각양 시민 운동은 이러한 '아카데미 운동'을 통하여 배출된 인적 자원과 경험을 토대로 더욱 활발하게 진행되었다고 볼 수 있으며, 그들은 각 분야 시민 운동의 지도적이고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하는 주역으로 활동하고 있다.

 

한국흥사단은 이렇듯 100년에 걸친 역사와 전통을 바탕으로 국가 사회 발전에 이바지할 사명감 을 가진 지도적 일꾼을 양성하기 위한 '회원 수련 활동'을 해오면서 국민 의식 향상을 위한 '시민 사회 교육', '청소년 지도 육성'과 다양한 '공익 사업'을 전개하고 있으며, 특히 21세기를 맞아 시대의 요청에 부응하기 위해 3대 시민 운동으로 '민족통일운동', '투명사회운동', '교육·청소년 운동' 을 설정하고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한국흥사단은 순수 국내 한국인이 설립한 NGO의 효시였으며 조국의 완전독립 과 민족 의 발전을 위한 인물 양성 교육을 전개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흥사단 미주위원부 지부등은 대부분 기본적인 흥사단 활동조차 하지 않고 있음은 안타까운 현실이다. 그러나 안창호 선생이 이끈 초기 미주흥사단은 독립운동의 지원과 물자보급 등의 운동을 추진하고 국내에 수양동맹 회·동우구락부· 수양동우회 등의 조직과 중국에 원동위원부 등의 흥사단 조직들을 건설하는 한편, 해외 여러 지역으로 나뉘어져 있던 독립운동가 들의 역량을 하나 로 모아 통일된 상해임시정부를 조직하고 이에 자금지원을 하는 등의 노력을 아끼지 않았으며, 해방은 물론 해방 이후의 민족의 진로까지 조감하는 매우 치밀한 조직체계를 추구하며 활동을 전개해 나갔다.

 

그러한 중에돛기 미주 흥사단은 미국내 동포들의 발전과 권익 보호, 가난한 생활으로부터의 해방 을 위한 노력에 소홀하지 않았다. 흥사단이 1917년에 미국에 세운 북미실업과 대동실업이 그 대표적인 예라 하겠다. 지금의 한인들이 미국 사회에 훌륭하게 정착한 과정에 흥사단이 크게 기여했다는 역사적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2001811일 미국 로스앤젤레스 동부 리버사이드에서는 동양인으로는 최초로 도산 안창호 선생의 동상이 세계적 인권운동가 마틴루터킹 목사 동상과 함께 건립되었고 '도산 안창호의 날이 선포되었다. 이는 흥사단과 도산 기념사업회, 미국의 동포들이 힘을 모아 각고의 준비 작업을 거쳐 열린 하나의 작품이며 흥사단 미주 조직강화의 첫 포석이라 해석할 수 있다.


흥사단1.jpg
2002년도 미주흥사단 조직 강화를 위한 미국 순방중의 김소선 흥사단 이사장 (사진 오른쪽) <기사 및 사진:이영일 단우 제공>

 

바로 이어 흥사단 김소선 이사장은 20025, 흥사단 미주 지역 조직강화를 위해 필라델피아, 서북미지부(타코마), 동남부지부(아틀란타), 미주위원부(LA), 워싱턴DC, 시애틀을 차례로 찾았다. 흥사단 운동의 발원지인 미국 사회에 도산 안창호의 사상과 흥사단 정신을 현대에 맞게 새로 보급하고 침체기에 있던 미주위원부 조직을 강화, 한인사회에 활력을 불어넣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이면에는 한국과 미국을 잇는 국제적 NGO 네크워크 형성, 흥사단의 국제화 전략의 뜻도 포함되어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이러한 미국 사회내의 흥사단의 움직임은 로스엔젤레스 제퍼슨가 1368번지에 위치한 대한인 국민회 북미총회관 복원운동 과정에서도 찾아 볼 수 있다. 대한인국민회는 1903년 도산 안창호 선생이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창립한 공립협회(共立協會)와 하와이의 합성협회가 1909년에 연합한 조직에 다시 대동보국회와 다음 해에 통합하여 재조직된 미주 한인 최초의 통일기구이다.

 

 

리버사이드 동상.jpg
리버사이드에 동양인 최초 로 세워진 도산 안창호 선생 동상. 흥사단의 국제NGO로서의 도약을 상징하고 있다

 

안창호 선생이 초대 총회장을 역임한 대한인국민회는, 교포들의 친선을 도모하며 합병 반대운동, 파리평화회의 대표 파견 및 안중근 변호를 위한 모금운동 등을 전개하였으며, 태동실업 주식회사, 권업동맹 단 등을 설립하여 실업을 장려 하였고, 소년병 학교와 국민군사관 학교를 설립하여 독립군 사관을 양성하는 등 항일운동의 성지였던 곳이다. 19193·1운동이 일어났을 때는 414일부터 3일간 필라델피아에서 한인자유대회를 열어 독립선언식을 가지기도 하는 등 미국 한인교포 역사를 대변한 바 있다.

 

이 복원사업을 도산 안창호 선생 기념사업회가 주도하여 추진하였고 흥사단 이사장을 역임한 서영훈 총재 등이 추진하여 흥사단의 미주 활성화 계기를 마련했다고 볼 수 있다.

 

흥사단은 미국 주요 5개 도시의 미국 조직 강화와 함께 2003125일에는 뉴욕한인회관에서 뉴욕지부가 창립 되었다. 특히 흥사단 뉴욕지부 창립은 이러한 흥사단의 국제화 및 미주 지역 조직강화의 결정판으로 흥사단 운동을 미국에 확산시키는 계기가 될 것으로 흥사단 본부 에서 기대를 가지고, 김소선 이사장도 참석했다.

 

조국의 독립과 미국 한인 동포들의 권익 보호, 조국의 민주화를 위해 노력해 온 흥사단! 창립 100주년을 맞는 2013년도에 국제적인 NGO로서 도약하려는 흥사단이 한국 사회와 교포사회 발전을 가져오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해 본다.

 

창립 100주년 맞는흥사단

 

흥사단 깃발. 기러기는 단결을 상징한다

 

흥사단 힘의3대원칙과 4대정신

힘의 3대 원칙 - 자력주의:우리가 믿고 의지할 것은 외세가 아니라 우리 민족의 힘뿐이라 는 원칙 양력주의(養力主義): 힘은 기르면 자라고 기르지 않으면 자라지 않는다는 원칙 大力主義: 큰 힘이 있으면 큰 일을 이룰 수 있고, 힘이 작으면 작은 일밖에 이루지 못한다는 원칙을 말한다. 또 국민 개개인이 건전한 인격을 갖춘 진실되고 신뢰 받을 수 있는 자가 되기 위하여 4대 정신으로 무장할 것을 강조 한다.

 

4대정신 무실(務實): 율곡(栗谷)이 지은 격몽요결(擊蒙要訣)속의 논무 실위 수기 지요(論務實爲修己之要)’라는 제하에서 처음으로 사용된 용어로, 참되기 운동, 거짓말 안 하기 운동이다. 충의(忠義):사물이나 일을 대할 때에는 정성을 다하며, 사람을 대할 때에는 신의와 믿음으로 대하는 생활. 용감: 옳음을 보고 나아가며, 불의를 보고 물러서지 않는 용기를 가진 삶, 역행(力行): 행하기를 힘쓰자는 뜻으로, 실천의 중요성을 가르치는것이다.일제강점기하의 흥사단과 흥사단 단우들은 안악사건, 105인사건, 3·1운동, 동우회 사건 등에 연루되어 옥고를 치르는 등 독립운동에 직접 간접으로 참여하였으며, 1926년에는 월간지 '동광(東光)'을 창간하여 1933년까지 40호를 속간하기도 하였다. 1912년 창간한 '신한민보'도 흥사단의 경영으로 국민교육과 계몽에서 일익을 담당하였다. 1949년 본부를 국내로 이전하고 미국본부를 미주위원회로 개칭, 19615·16군사정변 때까지 금요강좌'새벽'지를 통한 사회교육에 진력하였다. 현재 청소년들에게 인권 및 역사를 가르쳐주고 있다.(http://www.yka.or.kr/- 그러나 도산 안창호의 기본사상과 기본적인 흥사단 정신의 외곡된 점은 속히 고쳐서 다시 정리하여야한다.

 

2. 안창호는 민족의 힘을 기르기 위해 세가지의 자본을 중시하였다.

그 세가지 자본은, 경제적-정신적-도덕적 자본으로 세가지 자본중에서 도덕적 자본을 가장 강조 하였다.그는 또한, 강한 나라를 만들기 위해 온 국민의 건전한 인격자가 됨이 가장 필요 하다고 생각하였고, 인격혁명을 해야 새로운 국민이 되고 새로운 나라를 열 수 있다고 하였다. 무실- 무 는 힘쓴다, 실은 실천, 실행, 진실, 성실, 실질 등을 가리킴. 참되기를 힘쓰자, 진실을 전하자, 진리탐구에 힘쓰자, 속이지 않는다. 등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무실의 반대는 거짓이다. 역행-힘써 행하라, 옳은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 마땅히 해야 하는 것을 꾸준히 실행하자는 것임. 자기 자신부터 직접 실천하는 본보기를 보이자는 의미이다. 충의-충성과 신의를 합친 말, 다른 사람에 대해서 언제나 신용이 있고 충성을 다하여야 함. 옳은 일이면 끝까지 성실을 다해 실천하고 신의를 지켜야함. 용감- 복잡한 세상에서 사람이 참과 진실의 편에 서서 살아가려면 언제나 용기가 필요하며, 용기있고 용감한 국민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 함. 그밖에도 황색은 '무실', 홍색은 '역행', 백색은 '충의', 청색은 '용감'을 뜻한다.

 

3. 힘기르기와 실천 전략은 청소년 지도력 개발부터

한 예로서 필자가 2007년부터 4년간 뉴욕흥사단 회장직에 있으면서 경험한 일과 흥사단 97주년 창립기념과 8.15 민족해방 65주년 기념식과 아울러 미주동포 대축제로 개발하기 위해 시도했던 일을 소개함이 힘기르기 운동을 실천하려는 미주지역 흥사단 각지부에 참고가 되기를 바란다. 특히 당시 행사 과정 중에 수개 지부에서 자료를 요청해 와서 전국 각 지부에 메일 해 준바가 있다.

 

청소년들의 세계적인 지도력개발(Global Leadership Development)을 위해 장학생들을 선발하고, 만남의 광장을 마련하고자 “Korean-American YOUTH Festival”을 준비하며 미주동포 2세들의 세계적인지도자(Global Leader)로서의 꿈을 펼칠 수 있는 기회로 삼아 올바른 애국 애족정신을 함양하는 방법으로 흥사단 정신을 계승 시키고자 하는 간절한 마음으로 뉴욕흥사단 역사상 처음으로 '도산 안창호선생의 사상과 교육정신', '흥사단 운동', '한국문화', '자랑스러운 한국민' 등의 주제를 중, , 대 학생들에게 주어 2면 이내로 Essay Contest 를 통해 16명의 장학생을 선발하여 시상하였다.

 

이를 위해 사업장을 방문하며 장학금 모금도 하였다. 단우중의 논리에 뛰어난 정광채 단우 (민족통일운동 본부장, 외부에서 김광수변호사(미동북부변호사 변론대회 법문작성 부문 1등 경력) 심사위원장으로 하고 김태훈 변호사, 고등학교 영어교사 Sylvia Huh 등 심사위원들과 처음으로 선택한 교육운동 본부장(Brian Kim) 과 행사부장으로 새로 선택된 Helen Kim이 주축이 되어 41명의 학생들로 부터 수필(영문)을 접수하고 심사를 통해 대학부 고등부, 중등부 각1, 2, 33명과 장려상 각 3명을 선정하여 815일 오후 7시 뉴욕 플러싱 열린공간(Open Center)에서 흥사단 97주년 및65주년 해방기념일 행사를 성황리에 개최하였다. 결과적으로 Essay Contest에 참여한 학생들에게 학생 아카데미 회원 가입을 권면하는 반면, 고둥부 1등한 안 모세와 중등부 2등한 안 아론이 아카데미 회원으로 등록하는 경사를 보게 되었다.

 

4. Mass Media의 후원 회장인 본인이 직접 동분서주 하며 신문 방송국 대표들을 찾아가 만나서 무료 광고 뉴스 후원을 요청 했다. 한국일보, TKC TV 방송국에서 공식적으로 후원, 광고하기로 하고, 다른 방송과 신문사는 기사로 후원하게 되었다. 한국일보사에서는 3주간에 걸쳐 미주판 전면광고로 후원해 주었고, TKC TV 방송국에서는 매일 세차례에 걸쳐서 뉴스광고로 방송해 주었다. 또한 타 신문사와 방송국에서는 뉴스기사로 후원해 주어서 뉴욕주만 아니라 타주의 학생들도 참여하는데에 크게 협력하였다.

 

시민운동과 행동교육

 

- '독도는 우리 땅' 시위에 흥사단 대표들 참여 (아래는 뉴스기사)

뉴욕흥사단과 도산 안창호 사상연구회 대표들과 뉴욕 한인들, 일본 영사관 앞에서 규탄 시위'역사 교육 강화해야'

 

20080719() 14:45:53 [조회수 : 1395] 이승규

일본 정부가 최근 독도가 일본 땅이라는 주장을 일본 역사 교과서에 명기하기로 한 것에 대해 한국에서 비판이 일고 있다. 뉴욕에 사는 한인들도 718일 오후 12시 맨해튼 파크 애비뉴에 있는 일본총영사관 앞에서 규탄 시위를 열었다.

 

이날 시위에 참가한 60여 명은 뉴욕한인회, 플러싱한인회와 특히 뉴욕흥사단(회장 김경락 목사)과 도산안창호 사상연구회(회장 황재봉 장로) 등에서 참가했으며, 흥사단 김경락 회장은 일본이 갑자기 독도영유권을 주장하는 이유는 이명박 장로가 대통령이 되면서 일본에 대해 과거사는 다 잊어버리자는 발언을 한것을 기회로 삼아 호시탐탐 침략의 기회를 노리던 일본에게 빌미를 제공해 준 때문다라고, 이명박 대통령의 안이한 외교술을 탓했다. 주로 60대로 보이는 노인이 많았다. 이들은 '독도는 우리 땅', 'JAPAN STOP LYING' 등의 구호가 담긴 피켓을 들고 "일본은 독도 찬탈 음모를 포기하고, 독도 영토를 포기하겠다는 의사를 만천하에 천명하라"고 촉구했다. 이들은 이어 일본 정부가 계속 독도 영유권을 주장한다면, 일본 상품 불매 운동 등을 전개하겠다고 했다. 이와 함께 한인들은 미국에 있다는 지리적 조건을 활용해 미국 정치인이나 시민들을 상대로 독도가 한국 땅이라는 사실을 알리는 홍보 활동도 병행하자고 촉구했다.

 

뉴욕에 있는 한인들은 일본의 독도 도발에 대해 한국 정부가 적극 대응해 줄 것을 주문했다. 이들은 독도를 지키기 위한 장기적이고 전략적인 정책을 수립해야 하며 독도가 한국 영토임을 알리는 홍보를 계속 해야 하며 초등학교부터 독도와 관련된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시위에 참가한 한 여성은 "우리나라가 역사를 너무 소홀히 하고 있어 일본이 계속 도발을 하는 것이다""역사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시위에 참가한 한인들은 일본이 계속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는 것에 대해서는 비판의 여지가 없지만, 사태가 벌어 지게 된 원인에 대해서는 약간 다른 해석을 내렸다. 일부 참가자는 '이명박 대통령의 저자세 외교'를 원인으로, 일부 는 '대한민국의 국력이 약해서' 이런 사태가 벌어졌다고 했다.

 

김경락 목사(뉴욕 흥사단 회장)"이명박 대통령의 저자세 외교 때문에 일본이 한국땅을 자기네 영토라는 이런 맹랑한 일이 계속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며 이명박 대통령이 "미국에 와서도 저자세로 일관해 지금 한국이 저 난리 가 나고 있는 것이 아닌가"라고 했다. 김 목사는 "이명박 대통령이 CEO 스타일로 정부를 운영하고 있다" 면서 "대통령은 그러면 안 된다"고 말했다.

 

이헌진 회장(나라사랑 민족사랑회)"주권 국가의 권리를 찾기 위해 시위에 참가했다""무엇보다 국익 이 우선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한 여성은 "우리나라가 국력이 약해 일본이 계속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다" "뉴욕에 있는 한인들이 이번 사건에 팔을 걷어붙이고 나서야 한다"고 했다.

 

일부 참가자들은 "한국에서 미국산 쇠고기 수입 문제 로 인해 한 달이 넘게 촛불을 들더니, 이번 사태에는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독도 문제가 바로 촛불을 들어야 할 사안이다"고 말했다.

 

뉴욕에 있는 한인들은 앞으로 계속 독도가 한국 땅임 을 알리는 데 주력하기로 했다. 이들은 가칭 '독도 지킴 이 위원회'를 만들어 일본의 독도 도발에 대응하기로 했다. 다만 일본의 계속되는 독도 영유권 주장이 국제 사회에서 분쟁을 만들겠다는 의도도 있기 때문에, 일본 영사관 앞에서의 규탄 시위는 상황을 봐 가며 진행하기 로 했다.

 

도산의 독립혁명운동 정신의 통일운동을 위한 재조명

 

필자는 지난 67년간의 한민족의 분단을 종식 시키고 8천만우리 민족의 민주 평화통일을 이루어 조국 대번영의 길로 발전하기 위하여는 도산의 독립혁명운동 정신이 재조명 되어야 한다고 본다. 독립기념관 이명화 연구원이 최근 열린 제25회 도산사상세미나에서 발표한 도산 안창호에 대한 비판적 인식과 연구동향에서 도산은 자주독립의 힘을 기르기 위해 신용 의 자본, 도덕의 자본, 경제의 자본을 축적하자는 힘의 철학을 강조했으며 도산은 한번도 민족 독립을 포기한 적이 없으며 목표를 완수하기 위해 끊임없이 새로운 운동과 사업을 전개해 갔다. 도산의 민족 독립을 위한 준비론실력양성론도 이론에서 그친 것이 아니라 인재 양성과 재정확보를 위한 실천적인 행동이었기 때문에 친일 세력들의 행동과 비교할 수 없다는 것이다.

 

또한 도산의 민족개조론은 부패의 만연과 이기주의의 팽배, 현실에 타협하는 민족성으로 인해 근대화를 이루지 못하고, 힘을 기르지 못했다는 철저한 자기반성에서 나온 것으로, 최근 지명관 한림대, 신용하 서울대 교수 등 많은 연구자들이 도산의 민족개조론은 춘원의 그 것과는 별개로 다루어져야 한다는 견해를내고 있다.

 

안창호는 흥사단 운동을 통해 대한인국민회, 임시정부, 한국독립당 등의 정치혁명활동과 함께 수행됐고, 미주 등 일부 지역 흥사단원들은 혁명전선의 일선에서 활약했으며, 도산의 문화운동과 교육운동은 독립운동과 민족 근대화운동의 통합선상에서 구상되고 추진했다.

 

도산은 민족통합을 위한 대공주의에 근거한 한국혁명을 추진해 갔다. 임시정부 시절 안창호 선생의 비서실장을 역임한 구익균(104) 독립투사가 도산 안창호를 만났을 때 한국 혁명은 잃어버린 옛나라를 찾아서(조국광복) 복스러운 새 나라를 건설하자는 것이라며, 독립 운동 가와 민족주의자들은 잃어버린 옛나라를 찾는 일에만 열중하는 반면, 사회주의자들은 복 스러운 새 나라를 건설하는 데만 주력하고 있다. 잃어버린 옛 나라를 찾는 일이나 복스러운 새나라를 건설하는 일은 손바닥과 손등의 관계와 마찬가지로 중요하다고 말씀했다고 한다. 곧 민족의 백년대계를 구상할때 사상과 이념을 초월한 애국정신으로 명실 공히 힘있는국가를 건설하기를 원하신 것이다.

 

이곳 미국에서 창립한지 100주년(2013)을 맞은 흥사단의 과제는 무엇일까?

 

구익균 열사는 지금껏 흥사단을 출세의 사다리로만 이용한 사람들이 많았던 것이 사실이에요. 도산 선생의 위대한 혁명사상을 후배들이 잇는 길은 이 길밖에 없습니다.” 라고 강조한다. 일부 친일파들이 흥사단을 이끈 일이 있어서 현실과 타협하는 면에서 구익균 열사가 증언한 혁명가 로서의 도산의 본래의 상을 의도적으로 가린바가 없지 않다. 지금도 흥사단 일부에서는 도산의 기본정신은 아랑곳 없이 건전한 인격에만 억지로 초점을 맞추려는 이들이 있다. 그러한 이들 이 불행하게도 흥사단 단우간 위원부와 지부간의 분열을 조앙하여 사분오열 시키는 현금의 작태 는 도저히 묵과 할 수 없는 도가 지나친 상태에 이르고 있다 하겠다.

 

이런 맥락에서 요즘 미주 흥사단 일부에서 건전한 인격을 행하지도 못하면서 마치 건전한 인격 교육만이 도산 사상의 전부인양 호도하는 행태는 즉시 지양되어야 한다. 도산 안창호 선생의 기본 혁명정신인 남과 북은 물론, 온 인류를 한 가족으로 공생공존을 목표에 의해 도산정신이 살아나 민족통일운동을 성취하여 완전한 민족의독립을 성취하도록 머리를 맛대고 진지하게 연구하고 대단합과 행동적인 운동전개를 실천해 가야 하리라. 이러한 도산의 혁명적인 독립은동은 8천만 민족이 하나되어 외세에 의존하지 않는 영구적인 중립국으로서의 통일을 위한 민중운동으로 전개 해 나아가야 마땅 하리라.

 

韓民族은 하늘의 크고 밝은 꿈을 지닌 '밝은 사나이'(桓雄)와 어두운 역사의 신산고초를 곰처럼 우직하게 이겨내고 사람다운 사람이 된 '檀君의 후손이다. 크고 밝은 꿈으로 역사의 어둠, 지역감정과 반민주적인 관행과 편견을 불사르고 민주화와 민족통일의 밝고 떳떳한 길로 나아가자.

 

우리 韓民族日帝가 명치유신으로 이룩한 결과보다 훨씬 이전에 우리는 이미 그와 같은 문화를 향유하며 살았다. 문제는 우리의 자존심이 야만인의 발굽아래 여지없이 유린 당했다는 사실이다. 우리의 역사는, 우리 선조들의 삶의 족적은 얼마든지 자랑하고도 남을 만큼 고귀한 것이었다.다만 이를 지킬만한 힘을 지니지 못했 었다는 점에서,그리고 아직 도 우리의 국력이 침략자 일본에 훨씬 뒤져있다는 점에서 우리의 상처난 자존심은 지금도 회복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는 무참하게 유린당한 자존심을 회복하기위해 와신상담(臥薪嘗膽)하는 과정에 있다.하루 세끼 걱정을 안하게 되었다고 반세기에 걸친 민족의 수난과 치욕을 어찌 잊을 수 있단 말인가!

 

제국주의자 일본은 다시 미국과 손을 잡고 아시아의 패권을 손에 쥐려 하고 있다. 그들은 모든 것을 손에 쥘 수 있을때까지 비굴할 정도로 미국에 충성하며 기회를 노린다.

 

그들이 쓸개를 핥으며 복귀할 기회를 노리는 시간 우리는 자기도취에 빠져 있지나 않은지 돌아 볼 일이다. 그들은 우리를 적당히 추켜주며 취하게 만든다. 월드컵을 통해서 더욱 그러한 음모가 드러 났음에도 우리는 아직도 그때의 취기를 헤어나지 못한다. 實益이 없는 칭찬에 우쭐대며 우리는 마치 세계를 정복한냥 착각속에 세월을 보냈다.그동안에 세계 질서는 눈부시게 재편 내지 정돈되어 가고 있는 것을 알기나 하는지!

 

지금 당장 한풀이 화풀이로 우리자신이 기분 좋아 취하면 우리의 후손들은 또다시 굴종과 치욕의 세기를 살아가야 할 것이다.

 

일제는 패망한 이후로 그들이 신으로 모시는 천황이 일개 정복군사령관에게 졸개처럼 굽신거리며 생존을 구걸해 오늘을 이루었다. 패전국 일본이 50년을 굴종하며 보류했던 자존심은 이제 주변국 눈치보지 않고 신사참배하는데까지 가게 되었다. 그들이 추구하는 바는 예나 지금이나 바뀜이 없다. 그들은 국제사회에서 손잡고 연합해야 할 대상을 정확하게 파악한다. 그리고 그들의 힘이 상대방을 결정적으로 치명타 할 수 있을 때까지 드러내지 않고 기다린다는데서 우리와 다르다. 100년전 우리는 영국과 미국을 제쳐두고 기껏 골목깡패에 불과한 일본, 그리고 중국과 러시아에 의존하려고 우왕좌왕 했었다. 말하자면 줄기나 뿌리를 버려두고 말라 죽어가는 곁가지에 정성을 쏟은 셈이다. 우리가 대상을 잘못 선택하여 시간을 허비하는 동안,일본은 영국(동맹)과 미국(밀약)을 손짓해 불러 연합한 것이다. 그 결과 조선은 예정된 순서대로 지역깡패 일본의 식민지가 되고 말았던 것이다.

 

지금은 100년전보다 더 치열하게 거래가 실시간으로 이루어지는 글로벌 사회다. 힘은 국가의 존망을 가름한다. 지구상에서 독자적 생존능력을 지닌 국가, 힘있는 국가가 되기 위해 힘을 길러야 한다. 우리나라의 처지는 더욱 절박하다. 일본은 어느새 한국은 물론 중국까지도 안중 에 두지않고 행동할 정도로 성장하였으며 방약무인(傍若無人)해졌다. 그들은 이 시기를 맞기 위해 50년동안 미국의 발밑에서 굽실거리며 살아왔다. 미국은 벌써 일본이 배신하지 않을 나라라고 착각하기에까지 이르렀다. 미국의 마음을 읽지 않고서 일본이 그처럼 오만한 행동을 할 수 없다. 우리는 너무나 쉽게 자신의 위치를 망각하고, 드디어 세계전략에서 일본의 회생을 도와주고 말았다. 도산의 흥사단 창립은 혁명적 행동을 목적하고 있다.

* 친일 원로단우들의 진실왜곡 유감

 

도산 선생께서 흥사단을 창립한 진정한 목적에 대한 설명이 2008년역사 사회학자인 이창걸교수 (단우)가 연구하여 발표하기 까지는 흥사단에서 확실히 하고 있지 않았다. 흥사단 약법의 제2조 목적문을 제시하며 흥사단은 건전한 인격을 갖춘 인재의 신성한 단결을 통하여 민족 전도대업의 기초를 준비함에 목적이 있음을 기술하고 있으며, 현재 논쟁이 되고 있는 흥사단의 정치참여 문제, 친일파 출신인 이광수와 주요한 식의 수양중심 의 흥사단과 실력양성 및 교육운동가식의 도산 인식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기 전까지는 도산정신과 사상을 의식적으로 왜곡시켜 왔다.

 

<편 계속>

 

* 이 글은 흥사단 창립 100주년을 맞 20135월에 작성한 것임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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