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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락의 한반도중립화
박정희 유신독재가 노골화한 70년대초 도시산업선교활동을 하며 반독재 반유신 민주화운동을 벌이다 투옥돼 고초를 겪었다. 도미후에도 민초들을 위한 목회의 길을 걸으며 밝은한인사회캠페인과 남북평화통일을 위한 한반도중립화통일운동에 헌신하고 있다. 뉴욕흥사단 회장 역임, 한반도중립화통일운동본부 상임대표. 2012년 CMP 선정 올해의 아시안자원봉사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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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속임수’의 망령

글쓴이 : 김경락 날짜 : 2012-11-29 (목) 00:37:11

 

 

4.19민주화 피의 혁명으로 이승만 독재를 타도하고 민주정부를 세운지 1년만인 1961년 5월16일 새벽 도적같이 민주 정부를 전복(顚覆)시키고 박정희가 국민에 한 공약은 조속한 시일내에 민간정부에 이양(移讓)한다는 것이었다.

 

 

 

박정희의 일생을 보면 한결같이 민족반역자 국가반역자로 살아왔다. 1942년 만주군관학교 졸업식 답사에서 그는 “대동아 공영권의 완수를 위하여 사꾸라 꽃처럼 깨끗이 지겠습니다.” 고 독립운동가들을 살상하기에 혈안(血眼)이 된 일본군에 충성맹세를 한 자이다.

 


 

박정희의 충성맹세 모습을 일본 군국주의자들은 선전용으로 사용하기 위해 문화영화로 만들어 만주일대에 널리 방영하였다. 그리고 박정희는 그해 동경 일본육사에 입학하여 이름도 일본 이름으로 다까끼 마사오로 고쳤다. 이를 지켜 본 일본인 육사교장이 “일본인보다 더 일본인답다”고 칭찬하고 별명을 '특등 일본인'이라 칭하였다.

 


▲조선인 박정희가 일본군관에 지원하며 혈서로 충성을 맹세했다는 보도

 

1944년 일본 육군 소위에 임관, 일본내 마츠야마 제14연대 배속. 중국 열하성에 있던 만주 국의 일본관동군 보병 제8연대 소대장으로 배속, 산악지역의 독립군의 항일 게릴라에 대항 하여 100 여회 전투에 출정하며. "조선놈들의 토벌이라면 내게 맡기라"(사관학교 일본인 동창들의 말) 그때는 다시 이름을 바꾸어 일본명 오카모도 미노루란 이름을 사용하였다.

 

1961년 5.16군사쿠테타로 민주정권을 찬탈(簒奪)하고 그해 11월 12일 일본 이케다총리와 회담 중에 "나는 메이지유신을 지도한 일본지사들의 기개를 본받아 앞으로의 행동을 결정하겠다"고 약속했다는 사실은 대한의 온 국민을 격노케 하고도 남음이 있다.

 

그 다음날 11월 13일 아카사카 영빈관을 떠나 하네다 공항으로 향하는 도중, 차가 먼발치로 이중교가 보이는 일왕의 궁성을 지나게 되자, 벌떡 상체를 일으켜 자세를 곧추고 정중하게 거수경례를 붙였다고 한다.

 

1971년 4월 27일 대통령선거 서울유세 연설문 (국민 속임수 약속)에서 그는 새빨간 거짓말 로 국민들을 속였다. “유권자 여러분! 오늘 이 자리에서 분명히 말씀드리거니와, 내가 이런 자리에 나와서 여러분에게, ‘나를 한번 더 뽑아 주십시오’ 하는 정치연설은 오늘 이것이 마지막 이라는 것을 확실히 말씀드립니다....”

 

이어서 1972년 10월17일 계엄령(戒嚴令) 선포, 유신헌법 선포, 1인독재의 '유신체제' 로 영구집권을 꿈꾸며, 1974년 1월 8일 대통령긴급조치법 제1호를 선포하고는 불법으로 국회도 해산하고 모든 학원도 철폐하고 군 장갑차들을 동원하여 학교정문과 야당당사인 신민당사 앞을 지키고 삼엄한 사회공포 분위기를 조성하였다.

 


 

1979년 10월17일 유신체제 7주년을 기해서 마산에서 부마 민중항쟁이 일어나 국민과 학생들은 격렬한 민주화시위를 하는 과정에서 박정희는 자기 딸 같은 연예인들을 청와대로 데려다가 술판을 벌리는 중에 1979년 10월26일 자기가 신임하여 중앙정보부장으로 세운 김재규의 총탄에 맞아 사망하므로 17년간의 극악무도한 살인독재의 최후를 마쳤다.

 


▲이상사진 www.ko.wikipedia.org

 

99%의 민중을 외면한채 1%의 재벌같은 특권을 누리며 살아온 박근혜 후보가 국민통합, 경제민주화를 들먹인다. 지금도 고공철탑위에서 근로조건 개선을 위해 자신의 희생도 각오하고 외치는 근로자들의 기본적인 요구를 외면하면서 경제민주화 운운하는 것은 양심이 화인(火印) 맞은게 아닌가.

 

4.19 민주화혁명에 바친 고귀한 피의 희생과 근로 기준법에 준한 대우도 외면당하고 장시간 노동으로 오늘날 경제대국을 이룩한 것은 바로 99%의 시민들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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