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님 저 성아에요 .저..추천서 한 장만 써주세요.. 학비가 비싸서 장학금을 받아야 이 학교에 갈 수 있거든요.” “아..성아씨, 제가 지금 나와 있으니깐요, 저한테 메일로 다시 보내줄래요?”
“네..”
감독님이 바쁘신가 보네..일단 마음을 비우고 메일 드려야겠다. 하루가 지나도 답장이 없으셔서 정말 마음을 비우고 있었다. 감독님께서 내가 대학로에서 공연할때 출연했던 작품을 보러오신 적은 있어도 함께 작업한 적은 없으니 안써주셔도 너무나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틀째 되던 날 감독님으로부터 메일이 왔다.
“다음과 같은 내용으로 썼는데 무언가 꼭 보충할 내용이 있으면 알려주세요. 영어가 좀 서툴러서 어떨지 모르겠는데 ...하여간 잘 되었음 좋겠어요. Good luck!”
친절하게 영문으로 내가 생각지도 못할만큼 자세하게 써주신 감독님의 추천서(推薦書)를 읽으면서 나도 모르게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감독님...이름 석자 누가 되지 않게 열심히 하겠습니다.’ 다짐하면서 말이다. 몇달전 임순례감독님의 영화 ‘소와 함께 여행하는 법’ 이 뉴욕 MoMa에서 상영되던 날 한동신선생님의 초대로 뉴욕에서 뵐 수 있었고 함께 공연했던 선배가 감독님의 영화에 주연배우로 출연하게 되었음을 그제서야 알았다.
영화상영후 감독님, 한동신선생님, 관계자분들과 뉴욕의 어느 설렁탕집을 갔었는데 감독님을 통해 대학로 선배들의 소식을 들을 수 있었고 오랜만에 고향분을 만난것처럼 따뜻한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임순례감독님을 처음 뵈었던 때는 지금으로부터 12년전.
탄탄한 연출력으로 많은 상을 수상했던 박근형 연출님(극단 골목길대표,현 한국종합예술대학교 극작과 교수)의 연극 ‘청춘예찬’에 출연하고 있을 때였다. (청춘예찬은 베이징올림픽 한국현대연극대표 초청작으로 문화관광부 장관상, 백상예술대상 희곡상, 연기상, 동아연극상 작품상, 연출상, 연기상 등을 휩쓸었다.)
열악했던 환경탓에 배우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소품과 극장청소를 담당하고, 해일오빠는 포스터 붙이는 일과 무대조명 체크하는 일을 담당하고 있었다. 10년 가까이되는 선배들이 대부분이었기때문에 한살터울인 해일오빠와 가까운 선후배로 지낼 때였다.
▲ 지난해 영화 '최종병기 활' 로 각종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을 휩쓸었던 해일오빠의 첫영화
청춘예찬을 감상한후 주인공이었던 해일오빠를 캐스팅하고자 meeting하면서 대학로 닭갈비집에서 감독님께서 닭갈비를 사주신 기억이 난다. 내가 고생한다고 생각했는지, 함께 먹으러가자는 오빠의 권유에 닭갈비를 너무 좋아하는 나는 염치불구하고 동행하여 감독님을 처음 뵐 수 있었다.
사실 12년전 감독님을 처음 뵌 그때도 마치 여러번 만나 것처럼 편하고 따뜻했다. 얼마전 한동신선생님의 칼럼에서도 감독님의 따뜻함을 표현하셨는데 비단 나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도 편안함과 따스함을 주는 매력이 있는것 같다.
‘우리생애 최고의 순간’(문소리-김정은 주연 )이란 영화로 청룡영화제 최우수 작품상도 수상하고 해외영화제에서도 수상경력이 화려한 감독님. 그럴수밖에 없는게 작품을 직접 쓰기도 하는 감독님은 한 작품에 그야말로 장인정신을 발휘해 4년이상 공을 들인다.
2009년에 ‘와이키키 브라더스’로 NYFA Film School에 초청되어 강의도 한 감독님은 현재 부산의 영산대학교 교수로도 재직중이고 동물보호단체 카라의 대표로 봉사하는 일에도 앞장서고 있다.
임순례 감독님의 추천서를 받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주위의 조언이 있었다. NYFA(New York Film Academy Acting & Film School) 에서 4년째 마케팅을 담당하는 성하언니는 “많은 액수의 장학금을 받으려면 성아씨의 career에 대한 구체적인 에세이와 증명해주실 분의 추천서가 더 필요해요”하고 귀띔했다.
▲ NYFA에서 4년째 마케팅을 담당하고 있는 신성하 디렉터
어떤 분께 부탁을 드려야하나. 순간 최정봉 교수님이 스쳐갔다. 2010년 뉴욕 한국문화원 후원으로 주연으로 출연했던 독립영화 ‘Boundary’ 가 뉴욕 Tribeca 극장에서 ‘한국독립영화제’ 에 선정되었을 때 MoMa의 수석 큐레이터 로렌스 카디쉬(Laurence Kurdish), 영화 큐레이터 한동신 오픈워크 대표님과 함께 NYU에서 Cinema Study를 가르치고 계신 최정봉교수님이 심사위원이었다. 조심스럽게 교수님께 장학금 추천서와 관련해 나의 career 에 대해 편지를 써주실 수 있는지 여쭈었다 .
최정봉교수님은 사실 NYU에서도 교수님 수업을 들었던 상위 5%이내 학생이나 교수님과 관련 작업을 오랫동안 함께 했던 학생들에게만 써주시는데, 독립영화제 관련하여 심사를 하신 인연으로, 내 연기에 대해 솔직한 느낌을 있는 써주시겠다고 허락해주었다.
▲ NYU에서 Cinema Studies를 가르치는 최정봉교수님
매 작품마다 장인정신으로 특히 사회에서 소외(疎外)된 사람들의 배경으로 감동적인 영화를 만드시는 임순례감독님과 NYU 최정봉교수님의 장학금관련 추천서, 그리고 두달간 공들여 만들었던 포트폴리오와 career와 경험을 관련한 에세이를 제출한 결과, 국제학생임에도 불구하고 1만 달러의 장학금을 받을 수 있었다.
▲ 두달간 정성스럽게 준비했던 portfolio & essay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나탈리 포트만이 ‘Black Swan’ 이란 영화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받을 때 수상소감을 말하는 장면을 인터넷으로 본적이 있는데, 사실 나는 그 장면보다도 화면아래 흐르는 광고자막에 더 주의를 기울였었다. 내가 가고자 했던 NYFA의 학교관련 광고자막이었기 때문이다.
모든 수업은 현장 실습을 중심으로 철저하게 이루어지고 세계각지에 그리고 미국의 하버드대학교를 비롯한 각 유명대학교 내에서도 수업이 진행되고 있다. Film 에 관한 다량의 장비와 자체 셋트장을 보유하고 있는 덕분에 각종 Film Festival 에서 이 학교 출신 학생들의 수상내역도 화려하다. 세계적인 미인선발대회인 미스유니버스의 우승자들은 NYFA acting school 과 연계돼 연기수업을 이곳에서 받고 활동을 하게 돼 있다.
무엇보다 세계적으로 뻗어 있는 네트워크 또한 대단하다. 한국에 있을때 8년간 무대에서만큼은 선배들과 처절하게 연기로 기싸움하며 공연했던 나로서는 이런 실습위주의 수업이 가장 마음에 끌렸다.
그러나 비싼 학비부담으로 가고 싶어도 못갈수도 있겠구나.. 걱정하던 나에게 1년 3만달러의 학비가운데 절반 가까운 장학금이 책정되어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런데...
“성아씨, 영화연기 전공이 아니라서 학점을 인정해줄 수 없대요…. 성아씨 학점이 괜찮아서 인정될거라 생각했는데…. degree 를 받으려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된대요..”
당초 뉴욕에서 1년, LA의 유니버셜 스튜디오에서 1년, 이렇게 2년간의 공부를 생각했던 나의 모든 계획은 무너졌고 그렇게 바보처럼, 아이처럼 울고 말았다.
서른 넘어 미국유학을 결심하고 뉴욕가기전 부모님의 반대를 극구 무릅쓰고 “뉴욕 가더라도 엄마아빠 손 절대 안 벌릴테니깐 걱정마세요!” 자신있게 큰소리 치고 왔는데... 부모님께는 죄송한 마음뿐이었다. 8년간 연극무대에서 공연하면서 부모님께 충분히 신세를 졌다는 죄책감이 컸기 때문이다.
지칠때까지 펑펑 울고나서 정신을 차려보니 나보다도 감독님과 교수님이 가장 마음에 걸렸다. 이대로 접는다면 그분들께 너무 죄송하다 싶어 B플랜을 계획하기 위해 하나님께 매달리며 기도를 드렸다. 기도하는 가운데 복잡했던 나의 마음들을 평안한 마음으로 바꾸어주셨고, 어쩌면 뉴욕에서 계속 머무르기를 원하시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LA에서 공부를 하게 되면 뉴아라봉(뉴욕의 아름다운 라면봉사)을 다른분께 부탁드리고, LA아라봉을 만들어야 하나? 아직 계약기간이 남아있는 아파트는 어떻게 처리하지? 지금 다니고 있는 교회는? ‘김성아의 NY다이어리’는 ‘LA다이어리’로 바꿔야 하나? 날 믿고 공부하고 있는 학생들과 학부모들은?..’
뉴욕에서 여러 가지 관계한 일들로 인해 마음이 마냥 편하지 않았던 터였다. ‘일단 지금 상황들을 교수님과 감독님께 솔직하게 말씀드려야겠다.’
‘프로는.. 달라도 정말 다르구나..’ 교수님과 감독님은 나의 결정을 믿어주셨고, 무겁게 이메일을 드렸던 나에게 오히려 따뜻한 격려의 답장으로 위로를 해주셨다.
2010년 CUNY 출신 백평훈감독님의 ‘Boundary’ 에 주연으로 출연했을때 이 학교 필름페스티발에서 최고실험영화상을 수상하게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수상작에 한해 아시안 아메리칸 국제영화제에 상영기회가 다시 한번 주어진다는 소식에 관련 웹사이트를 검색한적이 있다. 그때 울부짖으며 연기했던 나의 얼굴이 포스터에 실린걸 보고 ‘여기 학교 출신도 아닌데 내 얼굴을 왜 실었을까? …하는 생각을 잠시 한 적이 있는데, 어쩌면 이 학교와 인연이 되려고 했던건 아닌가 싶다.
3학점을 더 채우면 Theater Acing(무대 연기)를 공부할 수 있는 자격이 된다는 입학허가를 CUNY로부터 받은 것이다. 뉴욕시립대라서 다른 사립학교보다 학비부담을 줄일수 있어 부모님께 손 벌리지 않게 돼 다행이고 뉴욕에 머무를 수 있도록 인도해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교수님, 감독님 ..degree는 뉴욕시립대에서 받기로 결정했지만, 저에게 정성스럽게 써주신 장학금관련 추천서때문에라도 NYFA에서 Certificate 는 꼭 받고 오겠습니다.”
우여곡절끝에 NYFA에서 Acting for Film 필름연기수업을 받게 되었지만, 첫 수업일 다시..난관에 부딪쳤다.
<下편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