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로에서 공연할때 난 어린나이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항상 막내로 있었다. 나보다 10살 이상 차이나는 선배님들이 대부분이었고, 그 위로 4살, 5살 많은 선배들이었다.
내 또래, 또는 더 젊은 후배들은 극단에 들어왔다가 열악한 환경 탓에 오래 못버티고 사라지곤 했다. 하지만 힘들다는 이유만으로 이렇게 가치있는 일을 접기엔 너무 억울하지 않은가?
사람들이 좋아서 연극을 시작했던 나는 인복(人福)이 참, 많은 사람인 것 같다. 공연이 끝나고 선생님, 선배님들이 하시는 말씀들은 지금까지도 주옥(珠玉)같은 기억으로 남아 있다. 선생님들이 하시는 말씀들은 내가 따라갈 수 없는 세월의 깊이가 있었다.
메모하는 습관이 있는 나는 선배님들이 말씀하실 때마다 앞에서 적기 민망해서 머릿속에 담아 두었다가 집에 오자마자 차곡차곡 적어 내 방 벽에 붙이곤 했다. 그리고 아침에 일어나서, 또는 자기 전에 자주 읽곤 했다.
▲ 차곡차곡 정리해 내 방벽에 붙여놓았던 선배님들의 주옥같은 말씀들
내가 아직 겪어보지 못한 세월과 경험을 간접적으로 체험하고 배울 수 있으니 내게 이보다 더 큰 재산은 없었다. 그래서 난 나보다 나이 많으신 선배님과 선생님들을 좋아한다.
뉴욕에 온 이후 대학로시절 선배님들의 말씀들이 그리웠던 내게 거짓말처럼 행운이 찾아왔다.
우연히 알게 된 뉴스로의 노창현 대표님을 통해 칼럼을 쓰라는 제의를 받았을 때, 솔직히 자신이 없었다. 칼럼의 필진님들은 세계 곳곳에 계신, 내가 평소 만나기 어려운 박사님과 교수님, 원장님, 회장님, 목사님, 기장님, 대표님 등등, 그것도 분야가 정말 다양한 전문가 선생님들이셨다.
노창현 대표님께서 타이틀을 ‘김성아의 NY 다이어리’라고 정해주시곤 거창한 내용보다는 솔직한 뉴욕에서의 연기생활, 일상의 일기를 쓰면 될 것 같다고 말씀해주셔서 다행히 부담감을 줄일수 있었다.
얼마전 뉴스로의 필진 모임에 참석하게 되었는데, 이런 분들을 한 자리에서 볼 수 있다는 사실이 신기했다.
타국에 계신 다른 선생님들께서 따뜻한 메세지도 전해주시고, 예쁜 꽃도 보내주시고, 해외의 뉴스로 필진들이 계신 곳에 여행단을 만들어 가자는 계획도 나오고, 별이 보이고 낙타가 있는 사막으로 초대하고 싶다는 메일을 받고…. 상상만으로도 너무 행복했다.
그날 선생님들께선 역시 내가 생각 할 수도 없는 좋은 아이디어와 후배들의 사랑이 담긴 말씀들을 해주셨다. 그날, 사실 내색은 안했지만 눈시울이 뜨거웠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전 정말 인복이 많은 사람인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