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화랑갤러리 17인작가 그룹전

30평도 안되는 작은 전시 공간.
그러나 이곳에 걸린 60여개의 작품들은 하나같이 강렬했고 묵직한 메시지를 전한다.
인사동 나무화랑(대표 김진하)에서 13일 개막한 ‘말하고 싶다!’전은 고경일 김우성 레오다브 박건 박순철 박재동 성완경 아트만두 이윤엽 이하 이태호 이현정 조문호 주홍 정보경 하일지 홍성담 등 17인의 작가가 참여했다.




‘말하고 싶다!’전은 지난해 10월 추석 무렵 예술의 전당에서 열릴 예정이었다. 포스터까지 나온 전시가 느닷없이 취소된 표면상의 이유는 코로나확산에 따른 감염 우려였지만 발단은 아트만두 작가의 포스터였다.
작가가 시사 캐리커처를 활용한 웹 포스터를 만들어 페이스북에 내건 것을 조국 전 법무장관이 공유하자 조선일보가 즉각 보도해 논란의 불을 지폈다. 같은 날 국회 문예위 '국민의 힘' 김승수의원이 ‘예술의전당’에 전시가 부적절하다는 취지의 질의를 보냈다.
우여곡절(迂餘曲折) 끝에 전시가 무산됐으니 수구세력의 분노는 성공한 듯 보였다. 그러나 주최측은 온라인 전시를 열었고 접근성이 더욱 좋은 인사동 나무화랑의 전시로 새해 벽두의 문을 열었다. 코로나 상황은 10월보다 훨씬 엄중해졌지만 전시를 여는데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전시를 기획한 박건 작가는 “이번 전시에 참여한 작가들은 현실과 현장 미술에 공감하며 행동하는 미술가들이다. 구성원이 추천하면 함께 할 수 있게 문을 열었다 미술로써 삶을 이야기하고 가꾸는 뜻을 품고 있다. ‘말하고싶다~’전은 나무화랑이 처한 시기적 공간적 여건을 고려하여 소통(疏通)을 먼저 두고 가능한 유통(流通)도 꾀해보기 위한 전시다”라고 소개했다.


참여 작가는 회화, 사진, 만화, 판화, 벽화 등 분야도 다채롭다. 작품들은 각자의 이력만큼이나 흥미롭다. 여성미술로서의 사진과 드로잉, 시사만화의 거장과 친구들, 풍자회화와 목판화의 진수, 화가가 될 수 밖에 없었던 소설가의 회화, 원로 비펑가의 기습사진, 인권 사각지대를 포착한 노숙사진, 작가와 아이가 콜라보한 그라피티, 거리와 공산품 아트….
“사회적 거리가 멀어질수록 예술로써 그 거리를 좁힐 의무감도 있다”는 박건 기획자의 말에 작가들이 호응했고, 이태호, 김우성, 박순철, 이현정, 정보경 작가가 새롭게 합류하게 되었다.
조문호 작가는 블로그에서 “정치 풍자와 더불어 역사에 대한 이야기. 새로운 발견. 현실에 대한 아픔과 분노 등 작가들이 하고 싶은 말을 당당하게 들려 주기 위해 오프라인 전시의 일을 벌이게 됐다”고 밝혔다.

조문호 작가는 “비평가 성완경씨의 기습사진, 가짜 미투로 곤욕을 치룬 박재동씨의 손바닥아트, 공산품아트로 새로운 면모를 보여 준 박 건씨. 교보빌딩 외벽 전면에 독립운동가 초상을 펼친 레오다브, 독보적이고 강력한 시사캐리커처를 보여주고 있는 아트만두 등 저마다 삶의 현장에서 거침없이 표출 해 온 작가들의 게릴라 전시다”라고 설명했다.

전시장에 입장하면 첫 작품부터 충격을 준다. 홍성담 작가의 <기레기들의 최후의 만찬을 위한 백우해체도>다. '불쌍한 우리 이듕섭이 소듕섭이 문듕섭이'를 50호 캔버스천에 두루마리로 그려 걸었다.
촛불정부의 공역과 국정과제인 검찰개혁 의지를 이중섭의 대표작 흰소에 비유하고 그 위에 소고기 부위별 해체도를 얹어 그렸다. 검찰개혁을 반대하는 언론과 기득권 세력의 현실정치 권력구도를 신랄하게 풍자한 작품이다.
이하 작가의 패러디 작품 ‘민주주의의 아버지’는 이한열 열사를 떠올리게 하기에 비장함과 노여움이 혼재된 감정을 불러 일으킨다.

아트만두 작가의 작품들은 ‘그때그사람들’이라는 공통의 주제아래 ‘이재용 T1000’을 비롯, 주호영 조수진 전두환 민경욱 트럼프 윤석열 등 시사 인물들이 절묘하게 풍자되고 있다.

특히 ‘이재용 T1000’은 ‘Terminator Judgement Day S-1000’라는 제목아래 영화 터미네이터의 ‘액체금속인간’을 연상시켜 한결 흥미를 자아낸다.
이현정 작가의 ‘唯我獨尊’은 강렬하다. 엄마이자 주부인 작가의 나신(裸身)을 스스럼없이 드러내고 있다. 빨래가 걸린 방에서 여왕의 금관을 쓴 전라의 사진은 두 개의 고급스런 액자에 담겨 있다. 얼핏 보면 똑같아 보이지만 작가의 시선은 두가지다.

부끄러운듯 눈을 내리깔은 작품이 체념과 당혹, 순응과 상실, 무기력한 이미지를 던져준다면 정면을 똑바로 응시하는 작품은 용기와 자신감, 자아 회복의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그녀의 당당함은 관객으로 하여금 거꾸로 발가벗겨진듯한 느낌을 안겨준다.
바로 이어 박건 작가의 공산품 예술을 만날 수 있다. 작가가 서명한 1000원부터 50000원 지폐들이 벽에 붙어 있다. 1천원의 퇴계 이황과 5천원의 율곡 이이, 1만원의 세종대왕, 5만원의 신사임당은 작가가 특별히 제조한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다. 이채롭게도 맨 하단엔 중국돈 10위안이 붙어 있다. 지폐모델 모택동(毛澤東)도 K마스크를 착용했음은 물론이다.

그런데 이 지폐 작품들의 가격은 얼마일까.

마스크를 쓴 퇴계 이황. 이보다 완벽할수 없는 코로나 방역이다 <사진 박건작가 블로그>
“1000짜리 공산품 돈입니다. 첨단공법이 적용된 최고급 판화죠. 력사적 인물 퇴계 이황이 새겨져 있어요. 이 초상에 마스크를 씌웠어요. 제목과 싸인을 했습니다. 작품 값이 작품입니다. 작품가는 여러 요소들이 더해져 결정되죠. 복잡미묘하고 허무맹랑하고 우유부단하고 내로남불하죠. 거두절미하고 정해 보았어요. 호당 가격으로 정할 수도 있지만 통상 차수리비를 적용해 보았어요. 공임비 포함하여 부품비의 배로 하지요. 따라서 이 작품가는 2천원입니다. 1월13일 나무아트에서 한정 판매합니다.” <박건 작가노트>
작가의 서명과 마스크 쓴 퇴계 이황 지폐가 단돈 2천원이라니….
박건 작가의 공산품 예술만큼 극단적인(?) 가격은 아니지만 이번 전시에 나온 작품들은 아주 저렴하게 책정됐다. 대중을 위한 유통에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이다. 개념 탑재된 작품들을 ‘거품 뺀 싼 가격으로 소장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아닐 수 없다.
전시는 26일까지 인사동 '나무아트'에서 열린다. 전시작품은 다음 카페(https://m.cafe.daum.net/akfgkrhtlvek/)에서도 관람할 수 있다. 강렬한 느낌을 온 몸으로 받으려면 직접 전시장을 찾을 것을 강추한다.
‘말하고 싶다’ 카페에서는 온라인 동영상과 아카이브 전도 감상할 수 있다.
http://blog.daum.net/mun6144/5868?fbclid=IwAR3lGQjnHTZX0o8WM9hatekhAYnqgyEBUAo2kYhbj5TB6ObWhVaM5i5OonA

오프닝 첫날 박재동 화백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나무화랑 제공>
글로벌웹진 NEWSROH 칼럼 ‘로창현의 뉴욕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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