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에 대한 이른바 “퍼주기”는 ‘남’의 일방적인 손해였을까. 이명박 정권은 남북간의 긴장완화 민족화해의 역사적인 획을 그은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10년 집권을 ‘잃어버린 10년’이라고 매도했다. 허위에 찬 ‘修辭(수사)’로 본말을 호도한 이명박 정권은 이른바 747공약이라는 엉터리 공약을 내세워 집권에 성공했으나 그들의 5년통치는 기실 ‘거꾸로 간 5년’이었다. 과연 “퍼주기”의 진실은 무엇인가. 정작 “퍼주기”는 누구를 위한 것이었나. “퍼주기”를 중단한 ‘남’은 왜 더 큰 손실을 보았는가. 중국의 엄청난 잠재이득은 누가 초래했는가. 이명박 정권 출범 무렵 오인동박사가 제시한 ‘더 퍼주어야 할 퍼주기’ 칼럼은 오늘날 ‘퍼주기 논란’의 함정을 피해 우리가 어떤 스탠스를 취해야 할지 명쾌하게 제시하고 있다.<편집자 주>
더 퍼주어야 할 ‘퍼주기’
2008년 2월에 출범할 이명박 정부를 준비하고 있는 인수위원회가 통일부 폐지론을 펴자 논란이 분분했다. 폐지하려는 의도는 전문성 제고, 투명성 견지, 정상적 남북관계로의 복원을 위한 결정이라고 했다. 지난 두 정부의 화해협력 포용정책 10년에 전문성을 더하겠다니 좋은 일이고, 북과 대화를 트기 어려웠던 시절 비공개 통로를 거쳐 여기까지 왔으니 앞으로 투명성은 바람직하다. 그리고 한나라당을 비롯한 보수층은 ‘일방적인 퍼주기’(?) 대신 상호주의에 의한 대북지원을 할 것이라고 한다.
얼핏 다 옳은 말 같으나 상호주의에는 문제가 있다. 현재 남과 북의 현격한 정치, 경제, 사회적 차이 때문에 동시적 상호주의는 할 수 없다. 북은 모자라기 때문에 지원을 받는데, 주면 나도 받아야겠다고 강박하면 관계는 단절되고 다시 대결적이 될 것이다. 상당 기간 남측이 먼저 북을 지원해 주는 형태가 되고 또 북으로부터 되받는 것도 물질적으로는 같은 량의 값어치가 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니 밑지는 일이라고 하겠지만 먼저 줄 수 있는 위치에 있는 남한은 뒤에 더 큰 것을 얻을 수도 있으니 얼마나 복된 일인가?
해방의 혼돈과 6.25전쟁 중, 그리고 그 이후로도 오랜 동안 남한은 부끄럽게도 분유와 안남미 식량에서부터 여러 구호물자와 군사비까지 미국으로부터 일방적으로 받기만 했다. 당시 아무 것도 동시에 줄 수 없었던 남한이었다. 그때 미국이 철저한 상호주의를 요구했다면 남한 사람들은 무엇을 어떻게 줄 수 있었을까? 반세기가 지난 오늘에도 남한 사람들은 미국을 목메게 잊지 못하며 고마워하고 있다. 독일 통일 전, 서독이 오랜 기간 동독에 그 많은 물자지원을 했을 때 상호주의로 주고받으며 했던가?
북한 '퍼주기' 라는 말은 김대중 정부의 포용정책 실시 때부터 나왔는데 남한이 식량과 비료 등 인도적 지원한 것을 두고 하는 말이다. 이렇게 ‘퍼줬’는데 받은 것은 없다고 하는 수구보수층의 선전에 많은 사람들이 따르고 있다. 그러니 그 '퍼주기'의 허와 실을 짚어보고 새 정부 시대를 맞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지난 13년간 남한의 통일협력기금은 25억 달러이었는데 이 기금으로 여러 대북지원을 했으니 1년 평균 2억 달러가 못 되는 액수이다. 독일 통일 전, 17년 동안 서독은 동독에 1년에 32억 달러를 지원했다. 즉 남한이 매년 2억 달러를 북에 '퍼준' 반면, 서독은 32억 달러씩 동독에 '퍼준' 셈이다.
1년에 2억 달러는 4천7백만 남한 국민 1인당 4달러 정도이니 필자가 살고 있는 미국 기준으로 따지면 한 사람이 1년에 햄버거 하나를 굶어 죽어가고 있다는 북녘 동포에게 준 셈이다. 이렇게 '퍼줬'(?)는 데도 북한으로부터 받은 것은 그만두더라도 개혁/개방한 것도 없다고 한다. 정말 그런가요? 미국 한인동포들은 조국에서 한 발작 떨어져서 객관적으로 또 공정하게 큰 눈으로 볼 수 있다.
6 ․ 15남북공동선언 이후, 이산가족 상봉 수가 1만 명을 넘었다. 물론 아직도 적은 숫자이지만 계속 늘어나야 한다. 2007년 한 해에 남북을 왕래한 인원이 10만 명이 넘어서 지난 60년간에 왕래한 숫자 보다 많았다. 금강산에는 150만 명이 다녀왔다. 한반도의 동부와 서부에서는 그 철통같던 휴전선 철조망을 뚫고 철도와 도로가 개통되어서 금강산, 개성관광과 개성공단 출퇴근으로 남북을 넘나드는 차량이 하루에 수백 대라고 한다. 아직은 개발 초기단계이지만 개성공단에서 일하는 북한 근로자가 2만 여 명이다. 이런 것은 북에서 받은 것이 아니고 또 북의 개혁/개방이 아닌가?
개성공단 북녘 근로자의 한 달 임금은 60달러이고, 제품 생산액은 연 2억 달러에 이르렀다. 남북간의 교역도 10억 달러를 넘는 대단한 진전을 보였지만, 북과 중국의 교역량에 비하면 아직도 적은 숫자이다. 남한 국민 한 사람이 1년에 짜장면 한그릇 값의 지원을 북한에 보냈더니, 동부에서는 금강산, 서부에서는 개성의 북한 땅이 개방된 것은 남한의 기능적 영토가 휴전선 너머로 확장되었다는 것과 같다. 반대로 남측의 군사지역 한 구석이라도 북측에 내놓는 것을 상상이나 하겠는가?
물론 분단을 극복하고 통일을 이뤄야할 한 민족 사이의, 한반도 안에서의 이런 교류협력과 개방을 영토확장 운운 하는 것은 망언이다. 이런 현실을 북측의 개혁/개방으로 보는 사람도 있지만 반대로 4달러씩이나 퍼주었더니 원자탄 만들었다고 비난하는 사람도 많다. 만일 8달러, 아니 16달러 씩 ‘퍼주었’더라면 백두산 관광, 신의주 공단, 나선자유무역지대와 평양 나들이가 벌써 생겼을 지도 모른다. 그러면 또 그 퍼준 것으로 수소탄을 만들었을 거라고 비난할 것이다. 남한이 지원한 쌀과 비료, 기자재 등이 정말 핵무기 만드는데 쓰였을까? 과거 미국에서 받은 식량과 구호물자를 남한은 모두 군비확장에 썼던가?
북한에 대한 지원이 이랬던 반면 남한 자신의 실상도 짚어 보자. 남한은 1999년부터 지난 8년간 신무기 구입 하느라고 미국에 56억 달러를 지불했다. 1년 국방예산이 아니라 무기구입에만 매년 7억 달러를 쓴 것이다. 구호물자 원조 받던 남한이 이젠 미국에 이렇게 ‘퍼주’고 있다. 북한에 지원한 것의 3배 이상을 분단유지에 쓰고 있다. 2007년 남한 국방예산이 250억 달러였다. 국방백서에서 북한의 1년 군사비는 50억 달러 미만이란다.
그래도 남한 사람들은 적화통일이 될까 두려워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남한은 미군 주둔비로 매년 10억 달러를(간접지원비까지 계상하면 20억 달러) 내고 있다. 2007년 남한 국민총소득(GNI)은 9천억 달러이니 국방비는 그 3% 정도이다. 북한 GNI는 250여억이라니 남한이 북한보다 40배 정도의 경제력이다. 그러니 북한 인민총소득은 남한 국방비보다도 적은 숫자이다. 남한 국민 1인당 1년 총소득이 2만 달러이고, 북한은 1,000여 달러 정도이다. 이런 숫자만의 비교로 남북관계를 모두 말할 수 있는 것은 물론 아니다.
2007년 노무현‐김정일의 10.4남북공동선언에 따른 획기적인 경제협력사업들은 새 정부에게는 모두 북한 ‘퍼주기 깜’으로만 보일 것이다. 북의 지하자원 개발을 위한 개성-평양 고속도로 개보수사업, 서해 남포, 동해의 안변 조선시설을 위한 해안사업,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 구상에 따라 개발될 해주공단과 해주항 개방사업들이 모두 먼저 ‘퍼주기 깜’ 들이라고 질타할 것이다. 교전까지 생긴 긴장의 서해가 평화의 바다가 되는 것은 생각도 안 할 것이다.
그러면, 보수된 개성‐평양 고속도로를 달릴 수 천대의 화물차와 열차들, 남포와 안변을 향해, 또 해주항을 들락거릴 무수한 대형선박들은 모두 어느 쪽의 것들일까? 물론 남한 것들이다. 세계를 누비며 큰 돈을 벌어온 남한 기업가들이 일방적 밑지는 장사를 하기 위해서 선박을 띄우고 트럭들을 달리게 할 것일까? 그 선박들, 그 차량과 그 열차들은 투자한 비용의 몇 배의 이익을 보장 할 땅 짚고 헤엄칠 그런 돈벌이사업들이다.
새 정부는‘ 퍼주기’가 아니라 ‘더 퍼주기’를 해서 북한의 남한 의존도를 높여야 한다. 거기서 안보도 평화도 남북간의 화해와 통일의 꿈도 이루어지는 것이다. 지난 10년의 대북 화해협력 정책을 '퍼주기' 라는 얍삽한 구호로 반대하는 시대는 지나갈 것이다. 김대중/노무현정부는 별로 '퍼주지'도 못했으면서도 지독하게 욕만 먹었다. 그래도 그 알량한 ‘퍼주기’의 결과로 커다란 남북경제공동체의 기초가 마련된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퍼주기' 라는 말은 더 이상 안 들리기 바란다. ‘퍼주기’를 안 해서가 아니라 실용적인 경제제일주의를 표방하는 기업가 출신 이명박 대통령이 통 큰 '더 퍼주기’를 할 때가 왔기 때문이다. 보수층의 지지로 당선된 그가 냉철한 통찰력을 발휘해 눈 앞에 보이는 이익을 걷어차 버리지 말고 화해협력과 상호교류를 더 실현해 나간다면 아무도 욕하지 않을 것이다.
오늘 북에 ‘더 퍼주’는 것은 내일 남측에 몇 배의 수확을 보장할 것이며 나아가 우리 겨레의 궁극적 목표인 분단소멸과 통일을 앞 당기는 위대한 역사를 창조하는 길이다. 그래야 7‐4‐ 공약의 7대선진국 진입도 가능할 것이기 때문이다.
* 이 칼럼은 이명박 정권 출범 직전인 2008년 1월 22일 작성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