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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와 漢나라의 전쟁
고구려와 燕나라의 전쟁
고구려와 魏나라의 전쟁
고구려와 隋唐나라의 전쟁
단군조선이 흉노 모돈에게 망한 후 解氏의 북부여의 후손인 朱蒙이 나라를 새로 세운 것이 고구리 즉 고구려인데 尙書의 冀州이자 幽州이며 秦의 河東이자 漢의 遼東이고 遼西인 山西省 서남부 쟁탈전이 고구려가 구백년 동안 치룬 전쟁이겠지요?
논평:
위도 35도로 나뉘는 황하 북쪽인 산서성 남부와 하남성 하내(河內)는 동이배달한민족의 중원(中原)이다. 배달국, 단군조선, 삼한, 상(은), 고죽국, 비자국, 고구려, 백제, 신라, 대진, 고려 왕조의 발상지이다.
엄격하게 따지자면 김씨의 시조라고 하는 소호금천씨(少昊金天氏: BC2598) 자손의 일부가 흉노족(匈奴族)이고 금천씨 이후 동양사에 나오는 왕조들은 거의 흉노족이다. 흉노(匈奴)는 나쁜 뜻이 아닌 ‘사람(Humanbeing)’이란 의미로 자신들이 살던 곳에서 황하 동쪽이나 황하 남쪽으로 이동하여 왕조를 세우고 북서쪽에 살고있는 사람들을 흉노라고 부른 것뿐이다.
하(夏)나라 시기는 훈육(獯鬻) 상나라 시기는 귀방(鬼方) 주나라 시기는 험윤(獫狁) 한나라 시기는 흉노(匈奴)라고 불렸다. 흉노에서 훈족이 그리고 징기스칸이 나왔다.
고구려의 시조인 추모(주몽)가 해모수(解慕漱)의 아들이기 때문에 해씨라는 견해는 설득력이 약하다. 이 같은 주장의 근거는 <한단고기>에서 유래된다. 해모수의 기록은 <삼성기 전>, <단군세기>, <북부여기 상>, <북부여기 하>, <태백일사>, 그리고 <고구려 본기>에 나오는 설(說)이다.
역사학(歷史學)이 다른 학문과 다른 점은 ‘기록에 의한 사실을 고증하는 학문’이라는 점이다. 따라서 역사(歷史)는 받드시 서지학(書誌學: Bibliography)이 수반되어야 한다. 즉, 1차사료와 문헌자료의 출처를 제시해야 한다는 말이다. 따라서 서지학의 관점에서 볼 때 <한단고기>는 설득력이 약하다. 물론 <삼국사기>, <삼국유사>, 그리고 <고기>를 인용하고 있으나 총체적으로 보아 전거(典據)가 빈약하다. 전거가 빈약하다는 말은 교차확인을 할 수 없다는 의미이다.
고구려를 건국한 추모성제가 해(解)씨라는 주장은 문헌사료부터 고증(考證)할 수 없는 추측에 불과하다. 옛날에는 자신이 살고있는 지명을 따라 성(姓)씨를 정한 일이 허다했다. 산서성 남부에 있는 해현(解縣)이란 지명과 천연염지인 해지(解池)가 해(解)라는 지명이다. 그래서 인지 지금도 산서성에는 해씨가 많이 살고 있다.
추모는 고씨(高氏)이며 <한단고기/북부여기 하>에도 같은 기록이 보인다. ”임인 30년(BC59) 5월에 고주몽(高晝夢)이 분능에서 태어났다“라고 기술하고 있다. 문헌비판이다. 고구려의 건국이 BC231년이기 때문에 고주몽이 태어난 연대는 최소한 BC231년 이전이 되어야 한다. 자세한 내용은 www.coreanhistory.com 을 방문하여 저자의 학술논문들을 읽어보기 바란다.
000의 연구(硏究) 글에 “주몽의 처음 성씨는 해씨였으며, 고구려를 건국한 뒤에 고씨로 바꾸었다”라고 말하고 있으나 근거없는 잡설(雜說)이다. 왜냐하면 동서양 유사(有史) 이래 나라를 세우고 난 후에 자신의 성씨를 바꾸었다는 기록은 없다. 또한 박노석은 1차사료와 문헌자료로부터 근거(根據)를 제시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해씨의 시조는 해량(解良)이고 후위(後魏)를 세운 사람은 선비족 탁발규(拓拔珪)이며 그의 부족 집단인 탁발부(拓跋部)에 해비(解毗)란 성씨가 있었고 수나라 때는 많은 사람들이 해(解)씨로 개명했다(<신역 백가성>(2009) 참고). 그러나 해씨의 시조로 알려진 해량에 대한 자세한 기록은 찾아보기 어렵다.
해(解)란 성씨를 가진 인물로는 동한의 해광(解光), 당나라의 해완(解琬), 남당의 해처중(解處中), 남송의 해잠(解潛), 명나라의 해진(解縉), 해개(解開) 등이 있다. 고구려를 건국한 추모가 이렇게 유명한 아버지(해모수)의 성씨인 해씨(解氏)를 버리고 고씨(高氏)가 되었다는 이야기는 허구의 소설이다. 고씨는 김씨에서 유래된 것으로 고추모는 김씨이다.
한국의 사학계에서는 <한단고기>가 위서라고도 하고 재야에서는 위대한 사서라 주장하고 있다. 저자가 살펴본 바로는 양쪽의 주장이 서로 일리(一理)가 있다. 차이가 있다면 양쪽이 논리적(論理的)이지 못하고 지극히 감정적(感情的)이라는 점이다.
고로 <<한단고기>의 문제점 비판과 위서(僞書) 진위(眞僞) 연구>(제20집) 라는 학술논문을 발표할 예정이다. 출간되거든 참고하면 큰 도움이 될 것이며 지금은 <고려의 강역 연구>(제19집) 집필 중이다. 독서를 하지 않은 사람은 역사학자가 될 수 없고 되었다 하더라도 최고(最高)가 되지 못한다. 죽은 후에도 후세들에게 모진 비판을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독서, 독서, 또 독서다.

글로벌웹진 NEWSROH 칼럼 ‘김태영의 한민족참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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