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군조선의 위치에 관한 선행연구를 확인해본 바 12편의 학위논문이 있어 살펴보았다.
김남중(金南中)은 “왕검성의 위치는 本溪市(본계시) 서쪽 지역뿐만 아니라 本溪滿族自治縣(본계만족자치현), 撫順市(무순시) 남쪽 일대, 新賓(신빈) 서쪽 일대까지 확대해서 살필 수 있겠다”고 하였으며 “浿水(패수)는 지금의 혼하(渾河)이다”라고 주장하였다.
왕검성은 요녕성 본계시에 위치하지 않고 산서성 남부에 위치하였으며 패수는 요녕성에 있는 혼하가 아니라 황하북부 하남성 하내에 위치하였음을 필자의 학술논문 여러 곳에서 이미 밝힌 바 있다.
김종서(金鍾序)는 “위만조선의 수도인 王儉城(왕검성)은 하북성 昌黎(창려)에 있었다는 것, 한사군은 하북성 동부와 遼河(요하) 서부지역에 있었다는 것 등은 史料(사료) 고증을 통하여 입증하였다. ... 이 고죽국이 발해북안, 하북성 昌黎(창려) 인근지역을 영토로 한 국가로 보는 것이 통설이고, 중국사회과학원의 담기양 등이 편찬한 <중국역사 지도집>에도 그렇게 표기하고 있다.
따라서 본래 고죽국의 영토위에 세위진 국가인 한씨조선, 위만조선, 위만조선을 멸망시키고 설치된 낙랑군, 현도군, 대방군 등의 한삼군은 발해북안, 하북성 동부의 창려 인근지역에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조선의 인근 국가였던 임둔국과 진번국과 그 땅위에 잠시 설치되었던 임둔군과 진번군 또한 그 인근 지역인 요령성 서부지역과 내몽고 일부지역을 영역으로 했었을 것이다”라고 주장과 추측을 하고 있으나 왕검성은 하북성 창려에 있지 않았으며 고죽국은 산서성 남서부에 위치하였음을 필자의 논문 여러 곳에서 이미 밝힌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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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군조선의 강역 연구> - 제5부
배현경(裵賢京)은 “‘조선의 위치’를 고증하여 그 중심은 평양이라는 것, 우리나라 역사에 ‘三浿水(삼패수)’가 있어 鴨綠江(압록강), 大同江(대동강), 猪灘江(저탄강)을 모두 浿水(패수)라 하지만 浿水(패수)는 大同江(대동강) 뿐이라는 것, ‘王儉城(왕검성)’의 위치를 고증하여 평양이라는 것,
‘漢四郡(한사군)의 위치와 변천’에 대해 여러 곳에서 상술하고 있으나 특히 樂浪郡(낙랑군)과 玄菟(현토)의 위치에 대해 깊은 관심을 보이고 있는 것, ‘沃沮(옥저)의 위치’, ‘慰禮城(위례성)’의 위치는 稷山(직산)이 아니고 漢城近郊(한성근교)라는 것, 馬韓(마한)에 관한 고증 등이다”라고 인용함으로써 조선의 위치를 한반도 평양으로 왕검성의 위치를 평양으로 인식하고 있다.
그러나 단군조선의 평양과 왕검성은 평안남도의 평양이 아니다. 단군조선의 평양은 산서성 남부에 있는 오늘날의 임분시임을 필자의 학술논문 여러 곳에서 이미 밝힌 바 있다.
이경미는 “‘단군’과 ‘왕검’을 구별하는데, ‘왕검’은 평양의 지기(地祇), 즉 그 땅을 다스리는 신(神)적 존재였던 ‘왕검선인(王儉仙人)의 이름에서 유래된 말로, 이 말은 동시에 ‘평양’이라는 지명을 가리키기도 했다.
왕검이 평양으로 개명된 것은 고구려 때 일이며, 평양의 지기 왕험선인은 후일에 ‘왕검선인(王儉仙人)’으로 불렀다”라고 하여 단군조선의 위치를 한반도 평안남도 평양으로 파악했다. 그러나 왕검은 평양이 아니며 단군조선의 도읍지인 평양은 한반도에 위치한 오늘날의 평양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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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군조선의 강역 연구> - 제6부
왕희범은 “결론적으로 말하면 <위서>에서 고조선의 첫 도읍인 ‘아사달’과 <단군고기>에서 첫 도읍인 ‘평양성’은 동일한 지역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단군조선 형성기의 첫 도읍은 아사달이다. ...고조선 중심지는 대동강설과 요동 중심설이 있다.
요동 중심설이 처음 제기된 것은 조선시대 학자인 이익(李瀷)은 만주의 요심(遼瀋)지방, 즉 요하의 동서(遼河의 東西)를 단군조선의 중심지로 보았으며, 단군이 개국했던 태백산(太白山)도 요지(遼地)에 있을 것으로 추측하였다.
조선 후기 이종휘(李種徽)가 지은 <동사(東史)>에서도 요동, 심양일대는 단군과 기자의 영토라고 하였다”라고 하여 왕희범 역시 단군조선의 도읍지인 평양을 한반도 평안남도 평양으로 이해하였고 단군조선의 중심지를 요녕성 요하의 동서로 파악하고 있다. 유감스럽게도 1차사료와 문헌사료에 전혀 근거없는 추정에 불과하다.
오장록(吳長錄)은 그의 논문에서 “古朝鮮(고조선)의 도읍인 王儉城(왕검성)이 昌黎(창려)의 險瀆(험독)에서 遼東(요동)의 險瀆(험독)으로 다음에는 大同江 流域(대동강 유역)의 現 平壤(현 평양)의 險瀆(험독)으로 移動(이동)하였다. ...漢四郡(한사군)은 平壤 地域(평양 지역)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中國 遼西 地域(중국 요서 지역)에 存在(존재)하였을 可能性(가능성)이 크다”라고 하여 왕검성이 하북성 창려에서 요녕성으로 그리고 한반도 대동강 유역으로 이동해 온 것으로 파악하고 있으며 한사군은 요하의 서쪽으로 인식하고 있는 요서 지역으로 비정하고 있다.
왕검성은 하북성 창려, 요녕성, 그리고 한반도 대동강 유역에 있지 않고 산서성에 있었음을 필자의 논문 여러 곳에서 이미 밝힌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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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군조선의 강역 연구> - 제7부

이인철은 그의 논문에서 “고조선은 요동지역과 북만주 및 한반도를 그 영토로 삼고 계속해서 존재하다가 부여, 고구려, 읍루, 동옥저, 동예, 최씨낙랑, 한 등의 나라로 분열되었다. 뿐만 아니라 고구려가 건국된 곳은 요동의 압록강 유역이다.
한사군 가운데 하나인 현도군은 요서에 있었으므로 고구려는 한사군의 일부인 현도군에서 건국되지 않았던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중국의 기록에 의한 것이므로 객관성과 합리성이 담보되는 것이다”라고 하여 요동과 요서를 요녕성에 있는 요하의 동서로 인식하고 있다.
고구려는 요동으로 알고 있는 요녕성 요하 동쪽에서 건국된 적도 없고 중국의 문헌사료 어디에도 “한사군 가운데 하나인 현도군은 요서(요하의 서쪽)에 있었다”라는 기록은 없다.
임병용은 “부국강병을 이루기 위해 요동과 만주의 영토에 주목하고, 이를 한반도와 함께 하나의 생활권으로 인식하여, 그 지역이 단군•기자이래 발해에 이르기까지 본래 우리의 영토였다는 역사적 정당성을 부여하였다”라고 하여 자신의 주장이 아닌, 단지 인용만 한 것으로 보아 임병용은 단군조선의 강역을 요동, 만주, 그리고 한반도로 인식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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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군조선의 강역 연구> - 제8부
장지화는 “단군조선의 강역은 배달국을 계승하여 한반도와 요동•요서를 아우르는 영토였음을 서술할 필요가 있다”고 하여 단군조선의 영토를 요녕성 요하로 나뉘는 요서와 요동 그리고 한반도까지로 파악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장지화는 그의 논문에서 “이에 연구자는 기자조선, 위만조선과 구분하기 위해서라도 ‘단군조선’이라는 명칭을 사용해야 한다고 보고 본 연구에서 고조선 대신 ‘단군조선’의 호칭을 사용하였다”고 하여 장지화의 논리성, 설득력 그리고 뚜렷한 주장을 엿볼 수 있다.
조원진의 논문을 검토해보면 “고조선의 중심지와 영역 변천에 대해 기존에는 평양설, 요동설, 이동설의 3구분으로 살펴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小고조선론을 제외하면 고조선 영역은 요동지역이 포함된 것은 인정한다”라고 하여 자신의 주장은 없고 기존의 설을 수용하고 있다.
조원진의 논문 제3장과 제4장은 동굴무덤, 유적, 고인돌, 돌무지무덤, 비파형동검, 다뉴경, 미송리형토기 등 주로 유물을 다루고 있어 역사 논문이라기 보다는 고고학 논문으로 보인다. 고고학이란 인류학의 한 분야로 역사학이 아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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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군조선의 강역 연구> - 제9부

최혜민은 고대사의 역사무대가 어디였는가에 대해 자신의 주장이나 비판없이 “기자는 동래 직후에 왕이 아니라 부여왕조의 임명으로 평양의 수위가 되었으며, 부여왕조와 군신관계를 맺고 있었다고 하였다.
기자조선의 중심지는 모두 지금의 평양으로 비정하였다. ...기자의 봉지는 봉천부 의주와 광녕 동쪽이라고 하였다”고 하여 단군조선의 중심지를 한반도 평양으로 이해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홍성서(洪性瑞)는 “환웅이 왕검을 낳았다. 그때는 사해 여러 민족이 하늘의 이치를 알지 못할 때였으므로 스스로 미혹해 세상이 고통스러웠다.
그래서 왕검은 동북의 자방(磁方)을 그의 나라를 건설할 땅으로 택했다”라 하여 왕검단군조선의 위치를 동북3성 즉, 요녕성, 길림성, 흑룡강성에 비정한 것으로 이해된다. 그러나 단군조선의 중심 지역은 오늘날의 동북삼성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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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웹진 NEWSROH 칼럼 ‘김태영의 한민족참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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