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23일부터 26일까지 네바다 라스베가스에서 한국프로농구(KBL) 외국인선수 트라이아웃이 열렸다.
한국프로농구는 1997년 원년리그가 시작돼 올해로 24년 째를 맞았다. 아마추어농구의 제전인 농구대잔치의 인기를 등에 업고 시작된 프로농구가 아마추어와 가장 크게 차별화된 요소는 바로 외국인 선수의 등장이었다.
97년이면 내가 초등학교 2학년때인데 농구기자였던 아빠덕분에 농구장도 자주 가고 결국 나도 농구선수가 됐으니 프로농구와 나와의 인연도 보통은 아니다. 사실 라스베가스에 간 목적은 농구컨퍼런스에 참석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 행사는 스포츠마케팅 기관인 SMWW(Sorts Marketing World Wide)가 주최하는 것으로 라스베가스 대학(UNLV)에서 있었다.
해마다 여름이면 라스베가스에서 NBA 신인선수들로 구성된 팀들이 서머리그를 벌인다. 내일의 NBA 스타인 신인선수들의 기량을 확인할 수 있는 무대인데 농구컨퍼런스는 그 시기에 맞춰 열리는 것이었다.
이 행사 참가신청을 한 후 KBL 용병 트라이아웃이 열린다는 소식을 듣게 됐고 아빠의 소개로 자원봉사자로 참여하게 됐다. 프로 10개구단 감독 등 코칭스태프와 구단 관계자들이 총출동한다니 이번 기회에 한국농구의 기라성같은 지도자들도 보고 싶었고 트라이아웃에 참여하는 외국인선수(사실상 100% 미국선수)들의 기량도 궁금했다.
본부호텔은 라스베가스 다운타운에서 살짝 빗겨난 팜스(Palms) 호텔이었다. 22일 일요일 체크인하고 최준길 팀장님을 만나러 로비에 내려갔는데 뜻밖에 반가운 얼굴을 만나게 됐다. LG 세이커스의 신인가드 박래훈이었다.
박래훈은 나와 동갑내기로 올초 경희대를 졸업하고 신인드래프트로 LG에 입단했다. 신인선수가 어떻게 라스베가스에 같이 왔는지 궁금했는데 알고보니 이번 트라이아웃엔 10개구단이 가드 1명씩을 동반했다는 것이다.
용병들이 전부 장신선수이다보니 테스트경기에서 제대로 기량을 확인하려면 볼을 공급할 가드들이 필요했다. 덕분에 이번 시즌 기대되는 신인가드 박래훈이 미국행의 행운을 잡은 것이었다.
래훈이를 처음 알게 된 것은 SUNY Plattsburgh 입학후 두차례 여름방학때 한국에서 경희대 농구부에서 위탁훈련을 받을 때였다. 경희대엔 내가 한국 대경중학교에서 농구할 때 최지훈 과 김용오 등 친구들이 있었다. 그때 훈련하면서 래훈이도 알게 되었는데 이렇게 라스베가스에서 만나게 될줄이야..^^
이튿날 월요일 아침 일찍 트라이아웃 장소인 Desert Oasis Highschool에 KBL 스탭들과 함께 갔다. 이번 트라이아웃에 100명이 넘는 외국인선수들이 오기 때문에 사전에 준비해야 될 일이 많았다.
첫날 등록과 오리엔테이션, 이틀간에 걸친 평가를 위한 팀구성, 우리들을 도와줄 현지 경기관계자 등 할 일이 많기 때문이다.
오후 5시가 되자 선수들이 하나둘 나타나기 시작했다. 몇 년전부터 KBL에 외국인선수 신장제한이 없어졌기 때문에 대부분 2m를 넘는 장신들이었다. 물론 90% 이상 흑인이었다.
내가 있는 대학팀도 14명 엔트리중 백인선수 2명과 아시안인 나를 빼면 흑인선수가 11명이나 된다. 고등학교까지는 백인선수들도 많고 나같은 아시아계도 더러 농구선수가 있지만 대학팀들부터는 내부 경쟁이 치열하기때문에 아시안은 거의 없고 백인선수들도 소수가 된다.
농구는 정말 흑인들을 위한 스포츠다. 키도 크고 탄력 좋고 기술 좋고 대학에 와서 농구잘하는 흑인들을 참 많이 보았다. 미국의 NCAA 디비전1~3에 속한 대학팀만 1300개가 넘는다. 거기서 한명씩만 졸업해도 1300명인데 NBA에 들어가는 신인선수들은 50~60명밖에 안되니 NBA는 얼마나 좁은 문인가.
NBA 근처도 못가본 선수들이 한국에 와서 날라다닌다(?)는 말을 하는데 그만큼 미국엔 기량이 뛰어난 선수들이 많다. 올해 KBL은 지난해 자유스카우트에서 다시 트라이아웃을 실시하기 때문에 전 소속팀 용병들도 다시 자유롭게 선발할 수 있다. 게다가 팀마다 1명보유에서 2명보유, 1명출장으로 TO가 늘어나 외국인선수의 비중이 높아졌다.
신청자중 20% 정도가 과거 KBL에서 뛰어본 경험이 있는 선수들이었다. 과거 LG에서 활약한 대릴 프루 와 같은 추억(追憶)의 얼굴도 만날 수 있었다. 대릴 프루는 친구와 함께 트라이아웃이 열린다는 얘기에 오랜만에 구단관계자도 만날 겸 왔다고 한다.
트라이아웃 장소인 데저트 오아시스 고등학교는 다운타운에서 20분 정도 떨어진 곳에 있었다. 아다시피 라스베가스는 사막과 황무지(荒蕪地)에서 만들어진 도시다. 도심은 화려하기짝이 없는 카지노 호텔 수십개가 위용을 자랑하고 주변에 크고 작은 호텔마다 카지노 시설을 갖추고 있는 도박의 도시다.
지금까지 KBL은 트라이아웃을 5번 라스베가스에서 했고 4번은 시카고, 1번은 필라델피아에서 했다고 한다. 시카고는 미국의 거의 가운데에 있어서 외국인선수들이 어느곳에서든 오기 편하다는 점이 고려됐다고 한다.
그럼 왜 라스베가스에서 그렇게 많이 트라이아웃을 했을까. 일단 한국 입장에서 보면 미국의 관문인 로스앤젤레스에서 가깝고 (요즘은 라스베가스 직항이 생겨 더 편해졌지만) 라스베가스가 본래 행사들이 많이 열리는 곳이라 호텔이나 시설을 활용하기가 좋고 비용도 크게 들지 않는다는 점때문이라고 들었다.
아무튼 라스베가스는 ‘죄악의 도시(Sin City)’라는 별명을 갖고 있는 것처럼 도박과 술, 향락의 이미지를 갖고 있는 곳이다. 다운타운을 다니다보면 매혹적이고 선정적인 여성의 사진들과 다소 퇴폐적인 쇼를 선전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아직 학생기분을 떨치지 못한 나로선 애들 교육시키기엔 좋지 않겠다는 생각이 솔직히 든다.
그런만큼 트라이아웃이 열리는 고등학교의 시설이라든가 환경이 궁금했다. 한국과 달리 카지노 슬럿머신들이 비행장 대합실부터 호텔 로비까지 가득 있기때문에 아이들도 자유롭게 오가면서 도박하는 모습들을 볼 수 있다.
유해환경이라고 할 수 있는 이곳에서 학교를 다녀야 하는 아이들이 솔직히 걱정됐다. 그런데 막상 데저트 오아시스 고등학교를 와보니 그렇게 걱정할만한 일은 아니겠구나하고 생각이 들었다.
일단 학교들이 다운타운하고는 멀리 떨어진 주택가 외진 곳이라 할 수 있는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학교이름이 ‘사막의 오아시스(Desert Oasis)’라고 해서 웃었는데 실제로 오는 길은 사막같은 황무지를 한참 달려서 이런 곳에 학교가 있을까? 하는 곳에 있었다. 그것도 생각보다 훨씬 크고 좋은 시설이었다. 사막의 오아시스라는 이름 그대로였다. ^^
내가 뉴욕서 다닌 고등학교에 비하면 서너배는 큰 학교였고 시설도 작은 대학교 못지 않았다. 이런 곳에 다니는 학생들은 라스베가스 다운타운의 환락가와 동떨어진 생활을 하니 교육환경을 걱정할 필요가 없는 셈이다.
<下편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