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게 스포츠야? 사기지?”
TV를 보던 아이가 말했다. 뭐라 할 말이 없다. 나도 아이와 똑같은 생각이니까.
월드컵이라면 모두가 선망해 마지 않는 최고의 축구 이벤트다. 4년에 한 번 세계 최고의 선수들이 절정의 기량(技倆)을 뽐내고 축구의 정수(精髓)를 과시하는 언필칭 꿈의 대제전이다.
과연 그런가. 7월 2일 우루과이와 가나의 8강전은 축구 규칙의 근본적인 문제. 나아가 축구를 매개로 한 장사질에 혈안이 된 FIFA의 문제점이 고스란히 노출된 최악(最惡)의 저질 경기였다.
전후반을 1-1로 비기고 30분간의 추가 연장에서 종료 휘슬이 울리기 직전 가나의 파상적인 공격속에 급기야 골문으로 들어가는 가나 선수의 헤딩슛을 공격수 수아레스가 손으로 걷어낸 행위는 86년 월드컵에서 ‘신의 손’ 운운하며 신을 비웃은 마라도나의 추악한 핸들링 사건이후 최악의 장면일 것이다.
아니 어쩌면 그보다 더한 것인지도 모른다. 골키퍼보다 뒤에서 손으로 천연덕스럽게 쳐내는 선수의 행동을 어떻게 봐야 하나. 자기도 모르게 걷어낸 것일까? 한국전에서도 두골을 혼자서 작렬한 골잡이가 설마하니 수문장으로 착각한건 아닐테니말이다.
(그럴 자격이 있는 선수는 오직 한명 북한의 김명원이다. 그는 공격수인데도 골키퍼로 등록됐다. 김종훈 감독은 그가 골키퍼를 원했다고 말했지만 FIFA는 공격수 하나를 더 쓰려는 꼼수로 보고 골키퍼 포지션으로만 출전할 수 있다고 유권해석을 내렸다.)
레프리가 고의 핸들링한 수아레스에게 지체없이 레드카드를 빼서 퇴장시킨건 당연한 일이다. 그리고 페널티킥 선언. 그럼 그것으로 된 걸까. 들어가는 골을 손으로 막았는데 무슨 페널티킥? 골을 인정해야 온당한게 아닌가?
들어가면 본전이고 안들어가면 할 수 없는 일? 그게 축구 규칙이라고? 그렇다면 축구는 언감생심 페어플레이를 논하는 스포츠에서 퇴출시켜야 마땅하다. 골키퍼를 제외한 선수들이 손으로 잡아선 안되는게 축구의 기본이다. 그 기본을 고의로 어긴 선수를 단지 퇴장조치하는 것만으로 끝낸다면 축구는 더 이상 스포츠라고 불러선 안된다.
우리가 모두 봤다시피 가나의 슈터는 페널티킥을 실축했다. 그 순간 우루과이 GK는 크로스바를 가리키며 신(그의 신은 불의와 부정, 부조리의 신일까)에게 감사하는듯 했고 퇴장당한 채 지켜보던 수아레스는 환호작약했다.
결국 승부차기에서 우루과이는 가나를 4-2로 이겼다. 최고 수훈갑은 물론 수아레스다. 들어가는 골을 손으로 걷어내 퇴장당했지만 악의 화신(化身)이 가호한듯 상대 키커는 실축했고 승부차기에서 극적인 승리를 거뒀으니 말이다.
한국은 역시 수준이 낮다. 축구강국이 되려면 이 정도 뱃심은 있어야 한다. 들어가는 골을 손으로 잡고, 심판 몰래 상대선수를 걸고 때리고 넘어뜨리고, 슬쩍 손으로 볼을 콘트롤해서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겨야 한다. 오직 주심(主審)만 속이면 된다. 관중과 전세계 수억명의 시청자가 다 봤어도 그 순간 주심만 따돌리면 이길수 있는 것이다.
혹시 들통이 나도 경고를 받거나 기껏해야 퇴장으로 족하다. 선수생활이 끝나는 것도 아니고 그 나라 축구협회가 징계를 받는 것도 아니다. 고의 반칙만 슬쩍 저지르면 꿀같은 결실을 얻고 그에 대한 징벌은 아무것도 아닌데 왜 치사한 짓을 망설이느냐는 것이다.
한국과 대결한 아르헨티나 선수들을 한번 봐라. 핸들링을 아주 자연스럽게 한다. 주심이 혹시 보면 미안하다는 제스처 한번 취하면 된다. 모르면 그냥 가는 것이다. 그냥 가면 골 하나를 넣거나 막을 수 있는 황금같은 기회가 되는 것이다. 그 한골로 영웅이 되고 몸값도 달라질 수 있는데 왜 주저하겠나.
수아레스는 퇴장을 당했지만 우루과이는 사실상 아무런 피해가 없었다. 페널티킥이후 경기가 끝났기 때문에 10명이 싸우는 불리함도 없다. 비록 그가 다음 경기를 못뛰어도 한명을 희생시켜서 4강에 오른다면 누가 그걸 싫다고 하겠는가. 추악한 핸들링 반칙을 하고도 국민적 영웅으로 떠오른 이유다.
주심은 규칙(規則)대로 했다고 하지만 그건 골로 인정했어야 했다. 수아레스가 골라인 선상에서 들어가는 볼을 스파이크하듯 손으로 쳐냈기때문에 골로 인정해도 되는 상황이었다. 독일-잉글랜드 전에서 골문 안 50cm도 들어간 골을 노골로 선언했는데 그 정도를 골이라고 해도 누가 뭐라 할 텐가. 더구나 수아레스의 손 아니었으면 무조건 들어가는게 아닌가.
퇴장조치후 페널티킥을 주었다고 주심은 제 역할을 했다고 하지만 가나로선 너무도 억울한 일이었다. 잘해야 본전이고 못하면 승부가 원점으로 돌아가는데 이런 개같은 경우가 어디 있나?
결국 페널티킥은 실축했고 이어진 승부차기에서도 가나는 패했다. 이긴 경기가 원점으로 돌아갔으니 사기가 떨어지고 불안감이 엄습했을 것이다. 심리적으로 이미 지고 들어간 것이다.
이날 경기 하나로 세계의 시청자들은 축구가 얼마나 어이없는 스포츠이고 부정한 짓, 범죄와도 같은 짓을 저질러도 대접받고 영웅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두 눈 똑똑히 보았다.
그것이 룰이고 규칙이란다. 이번 월드컵은 어느 때보다도 심판의 오심이 문제가 되었다. 심판의 수준이 갑자기 떨어진게 아니다. 애초부터 부실한 축구의 단점이 테크놀로지의 발전으로 백일하게 들어났기 때문이다.
과거엔 심판이 어떠한 판정을 해도 잘못을 따질 근거가 부족했는데 수십대의 카메라로 선수들의 부정한 짓들이 낱낱이 잡히면서 이런 것을 못보고 지나치는 심판에 대한 비난이 쇄도하는 것이다.
하지만 FIFA는 ‘오심(誤審)도 경기의 일부’라며 모르쇠한다. 맞다. 심판이 못보는데 무슨 재간이 있나. 그러나 FIFA에 대한 비난은 오심을 줄일 수 있는 방법들이 있는데도 방치한다는데 있다.
다른 스포츠에서 활용하는 비디오판독장치를 FIFA는 경기의 흐름이 끊어진다며 반대한다. 하지만 축구가 정말 90분간 쉼없이 이어지는 스포츠인가. 축구는 마라톤이 아니다. 주심이 휘슬을 불면 경기가 끊어지고 아웃되면 골킥이나 코너킥을 차거나 스로인을 해야 한다. 경기는 수시로 끊어지고 있다.
비디오 판독을 위해 20~30초가 걸린들 오심으로 인한 피해와 억울한 승부는 없애야 할게 아닌가. 그것만이 아니다. 주심을 적어도 두명 기용해 둘이서 뛰어다니도록 해야 한다. 그 넓은 그라운드를 선수보다 나이가 많은 심판들이 90분간 쫒아다녀서 선수들의 교활한 반칙을 얼마나 잡겠느냐 말이다.
축구장의 20분의 1밖에 안되는 농구도 심판이 3명이다. 그것도 선수들을 따라다니면서 휘슬을 불어댄다. 그런데도 교묘한 반칙은 나온다. 하지만 축구장에선 심판의 눈을 속이는게 땅짚고 헤엄치기다.
기껏해야 거수기 노릇밖에 못하는 선심(線審)도 달랑 두명이 말이 되는가. 페널티 박스를 전담하는 선심을 포함해 양쪽 면에 4명 씩 8명은 배치해야 한다. 농구코트의 4분의 1밖에 안되는 배트민턴 코트의 라인스맨(선심)이 8명이다. 라인을 벗어났는지 여부가 중요한 배드민턴의 특성도 있지만 축구의 선심이 턱없이 부족하다는건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그라운드에 2명의 주심 부심과 8명의 선심이 배치돼 공과 상관없이 벌어지는 선수들의 교묘한 파울까지 적발한다면 축구의 치졸한 파울들은 대부분 사라질 것이다. 어떤 것이 경기 흐름을 방해하는가. 파울을 조장하는 현재의 룰이 축구 흐름을 끊는가. 아니면 많은 심판들의 감시때문에 파울이 줄어드는 것이 축구흐름을 끊는가.
엄격한 감시로 파울을 원천적으로 막고 파울자에게 가혹한 판정을 내리면 도리어 축구는 물 흐르듯 흘러갈 것이고 관중들은 세계 최고의 기량을 가진 선수들이 펼치는 축구의 아름다움을 만끽할 것이다.
어느 것을 택할 것인가? 추잡한 스포츠로 이대로 죽어갈지, 진정한 스포츠로 다시금 태어날지, 그것은 FIFA에 달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