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아름다운 것에는 균형(均衡)이 있다. 좌우대칭이 있으면 안정감이 있다. 그러나 세상에는 불완전해야 아름다운 것들이 있다. 단점을 억지로 가리려하지 않아도 된다. 사람은 불완전하기에 함께 있을 때 아름답고 우리네 인생살이도 불완전해서 아름다울 수가 있다. 불완전한 몸으로 온전한 사람도 감당하기 힘든 일을 해냈을 때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다.
최고의 미를 추구하는 예술에도 완성은 없다고 한다. 다만 예술적인 영감으로 어느 지점에서 멈추는 것이라고 한다. 자연은 비대칭(非對稱)과 불완전함이 교묘하게 평형을 이루면서 아름답게 느껴질 때가 많다. 새들의 두서없는 지저귐이 그렇고 파도소리의 저 불완전함이 내게 평안함을 가져다준다. 길 떠난 나그네의 어쩔 수 없는 피곤함도 있었겠지만 불규칙적인 파도소리가 자장가가 되어 끝없는 잠의 나락에 빠져들게 했다.
그러나 새벽녘에 절벽에 자리 잡은 팔각정에 부는 태풍의 끝자락에서 새어나오는 바람소리에 늦은 잠을 잘 수는 없는 일이었다. 절벽의 깊은 곳으로 파고들면서 공명통 안에 들어갔다 나온 소리는 공포를 자아냈다. 허공에는 야생동물의 울음소리 같은 바람의 으르렁거림으로 가득 찼다.
불완전한 것이 아름다운 것은 약간의 불완전을 말하는 것이다. 인간이 아름다운 것은 미쳐 날뛸 때가 아니라 뭔가 어수룩해 보이고 작은 실수를 할 때이다. 때때로 이렇게 속수무책(束手無策)의 불완전함은 공포감마저 자아내게 한다. 새벽녘 바닷가 절벽 위에서 맞는 태풍의 끝자락 바람은 결코 만만하지 않았다. 절벽의 밑에서부터 타고 올라온 바람은 더 증폭(增幅)되기 마련이다. 벼랑 위의 정자로 아우토반을 질주하는 차량처럼 바람은 질주해 들어왔다. 텐트는 심하게 요동을 치고 널어 논 옷가지는 바람에 날아가 버리고 말았다.
내가 패러글라이딩을 타봐서 안다. 산 밑에서 타고 올라온 바람이 패러글라이딩을 펼치면 사람을 둥둥 떠 있게 만든다. 독수리들은 이런 바람을 타려고 절벽에 산다. 세찬 바람이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텐트의 깊은 곳으로 파고 들고 살갗으로 스며온다. 이승에는 절대로 만만한 신선놀음이란 없는 것이어서 신선의 흉내를 내려는 나의 바닷가 절벽 위에 팔각정에서의 하룻밤은 새벽녘에 날씨가 갑자기 변하면서 결코 녹녹치 않게 되었다. 불완전함이 가져다주는 파도소리의 아름다움은 잠시뿐 거친 바람소리와 파도소리에 밤새도록 시달려야했다. 견디는 데까지 견디다 결국 새벽잠을 설치고 일어나 짐을 꾸리는 수밖에 없었다. 피로를 회복하지 못한 찌뿌둥한 몸을 이끌고 울산시내로 들어섰다.
울산은 현대의 도시이다. 현대시라고 해도 누가 뭐라고 할 수 없을 만큼 현대중공업, 미포조선, 현대건설, 현대자동차, 현대 종합상사, 현대 중고등학교, 현대축구단, 현대아파트, 현대백화점까지 다 자리 잡고 있다. 특히 현대자동차는 단일 공장으로 세계 최대의 규모를 자랑한다고 한다. 하루 5,000 대가 넘는 자동차를 생산하고 3만 명이 넘는 근로자가 근무한다고 한다. 거대한 공장을 옆으로 심하게 부는 바람을 맞바람으로 맞으며 악전고투(惡戰苦鬪)를 하며 달려간다. 공장을 면한 태화강에는 이렇게 생산된 자동차를 세계 각국으로 실어 나를 수 있는 거대한 배가 정박할 수 있는 접안시설이 되어있다.
이제 울산시내에 들어와서 태화강을 건너는 것이 문제였다. 자동차전용도로를 피해서 가려니까 강둑을 타고 거친 바람을 역풍으로 받으며 힘들게 달려갔다. 바람이 많이 불어 고생했지만 이 또한 과정이다. 태화강의 바람이 부는 가을 갈대밭은 정겹다. 나는 두 팔을 쫙 펼쳐본다. 바람이 가슴으로 들어와 풍선처럼 떠올라 태화강의 갈대밭을 내려다 볼 수 있을 것 같다.
항상 도시에 들어서면 길을 찾는 것에 애를 먹는다. 원래는 다시 바닷길을 따라 부산 기장을 거쳐 해운대를 가는 길을 가려했지만 그러질 못하고 7 번 국도를 타고 산을 넘는 부산 방향으로 길을 잡고 말았다. 자동차가 쌩쌩 달리는 국도를 타는 일은 언제나 과정이었지만 정신적 피로감은 대단하다. 피할 수 있으면 피하고 싶지만 장 담글 때 구더기 생기는 일쯤으로 생각한다.
그렇게 국도 길을 정신없이 달리다 웅천면에 들어와 모텔을 정해놓고 보니 핸드폰이 안 보인다. 내 물품 중에 어느 것 하나 중요하지 않은 것이 없지만 핸드폰만큼 중요한 것도 없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맨 마지막에 전화기를 사용한 곳이 한 5 km 전이었다. 거기까지 달려가야 하는데 달려간들 거기 있다는 보장도 없다.
다른 물건 같으면 잊어버린 것으로 치고 마는데 전화기를 잃어버리면 모든 것이 뒤죽박죽이 된다. 그 중요성으로 인해 천근만근(千斤萬斤)의 무거운 몸을 이끌고 다시 온 길을 달려가는 수밖에 없었다. 모든 힘을 다 써서 뛰고 난 후에 다시 뛰어온 길을 되돌아간다는 것은 상상하기도 싫은 일이다. 간신히 지옥을 탈출했는데 다시 지옥으로 뛰어들라는 말처럼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나는 지옥으로 다시 뛰어들고 말았다. 다행히 1 km쯤 온 길을 뛰어가다 보니 길거리에 내 핸드폰이 떨어져 있었다. 정말 천만다행(千萬多幸)이었다. 핸드폰을 주워들고 보니 전화가 몇 개가 와 있었다.
울산에 사시는 전성하씨로부터의 전화를 못 받았다. 전화를 걸어보니 내 원래의 예정 코스인 간절곶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다고 한다. 그는 급하게 차를 돌려서 내가 있는 곳으로 부인과 함께 와서 저녁을 사주고 갔다. 나의 불안하고 아슬아슬한 여행이 사람들로 하여금 불완전한 아름다움으로 보이나보다. 그래서 사람들의 일면식도 없는 나를 찾아와 격려하고 위로해주면서 스스로 또 위안을 받고 가는 지도 모르겠다.
세상에 불완전해야 아름다운 것들이 있다. 다빈치의 모나리자가 5 %의 미완성으로 신비로운 아름다운 미소가 된 것도 그렇다. 인물화를 그리면서 눈동자를 그려넣지 못한 모딜리아니의 작품에서 독특한 아름다움을 느끼는 것은 왠지 모르겠다. 인간은 사실 완벽하지 않기 때문에 아름답다는 것을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다. 그런데 산업화시대에 들어서면서 완벽하지 못하면 살아남지 못한다는 강박관념(强拍觀念)에 사로잡히기 시작했다. 치열한 경쟁 속에서 부족하고 모자라는 것은 죄악시되기까지 했다. 모자라면 모자라는 대로 서로 나누며 위로하며 사는 자연의 원리를 회복할 때가 되었다.
내가 마라톤을 좋아하는 이유는 마라톤이 끝나고 나면 모든 완주자가 서로의 노고를 위로해주고 완주를 축하해주는 아름다움이 있어서이다. 물론 엘리트 마라톤에는 일등이 모든 영광을 독식하지만 적어도 아마추어 마라톤에서는 일등도 없고 꼴등도 없다. 오로지 완주자만이 있다. 서브쓰리를 존중하고 갈채를 보내긴 해고 그것뿐이다. 마라톤이 끝난 후 모든 완주자가 모여서 나누는 축제가 있어서 좋다. 아무것도 걸치지 않고 다 내려놓고 달리는 시간 물은 수증기가 되어 하늘로 올라가고 햇빛은 땅속으로 흡수되어 내려가는 수승화강(水昇火降)의 기운을 맛본다.
장거리를 끝없는 인내로 달리다 보니 성격도 바뀌었다. 불 같은 성격이 느긋해졌고, 노하거나 화내는 일을 어느 정도 다스릴 수 있게 되었다. 어지간해서 스트래스를 잘 받지 않는다. 달리기를 시작한 후 습관이 바뀌었다. 습관이 바뀌니 생활이 바뀌었고, 생활이 바뀌니 만나는 사람이 바뀌었다. 만나는 사람이 바뀌어 대화가 바뀌니 생각이 바뀌었다. 생각이 바뀌면 인생이 바뀐다고 한다. 세상과 사람들을 뜨겁게 사랑하고픈 마음이 생겼다. 브이자를 그리며 떼지어 하늘을 날아가는 철새들의 끝없는 날갯짓의 고통과 희열을 마라톤을 뛰면서 알게 되었다.
한입 베어문 사과가 세계의 전자제품 시장을 선도하는 회사의 로고로 쓰이는 것도 그렇다. 무엇이 그리 바쁘기에 사과를 다 먹지 못하고 한입 베어 먹고 책상 위에 놓아두었을까하는 궁금증을 유발시킨다. 완벽하고 최고의 전자기기 생산을 추구하는 애플의 창업주 스티브잡스의 대단한 상술에 다시 한 번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다. 불완전한 곳에 희망이나 가능성이 있다. 분단이라는 불완전하고 기형적인 구도에서 우리가 오히려 희망을 찾는 것은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