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istol로 넘어가는 길은 산세(山勢)가 험하여 손수레를 밀고 오르락 내리락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모르겠다. 이제 길을 나선지 삼 개월이 훨씬 지났다. 몸도 마음도 지쳐가고 있다. 이제는 도시에서 살면서 자고 눈뜨면 자동적으로 일하러 나가듯이 자동적으로 아침에 일어나면 달린다.
아침부터 고즈넉한 숲 길을 달린다. 땀을 뻘뻘 흘리며 산 능선에 오르자 밑으로 테네시 강의 지류가 유유하게 흐르는 것이 보인다. 그 숲 속에 지붕이 빨간 작은 집이 하나 있다. 집은 작지만 주위의 온 숲이 그 집 정원 같았고 아래로 흐르는 강물도 그 집 주인의 것 같았다. 푸르른 하늘과 이 맑은 공기를 다 소유한 아주 부잣집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그 집 앞을 지나는데 개가 짖어댄다. 개 짖는 소리도 숲 속에서는 울림이 좋다.

숲은 아련한 그리움을 유발(誘發)시킨다. 머리 속의 잡념을 지워버리고, 상상력을 자극하여 동화의 나라로 인도한다. 싱그러운 나무 냄새는 사시사철 좋지만 오 월의 숲에서는 꽃향기가 진동을 한다. 가진 것은 없어도 향기를 뿌리는 꽃을 닮고 싶다.
대자연의 하늘과 땅이 맞닿아 있는 곳에서 그것과 하나된 마음으로 완전한 일체감에 젖어들어 본다. 하늘의 햇빛 에너지가 나의 정수리를 따라 들어오고 우주의 커다란 기운은 호흡을 통해 몸에 응축(凝縮)시킨다. 발끝으로 전해오는 대지의 정기가 굳었던 몸과 마음을 이완(弛緩)시켜준다. 몸과 마음의 긴장이 병을 만들어 낸다는 사실을 알면 이런 시간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모른다. 놀랍도록 기분 좋게 느껴지고 자유로워지는 느낌, 우리 자신 안에서 평화를 찾기 전에는 이 땅 위에 평화는 오지 않는다.
마라톤에서는 한 걸음도 빼먹거나 건너뛸 수도 없고 대신 뛰어줄 수도 없다. 그러나 어깨를 나란히 하고 같이 뛰는 발걸음은 훨씬 가볍다. 가슴의 주파수만 맞추면 우리는 엄청난 에너지를 사람들로부터 공급받을 수 있다. 숲 길을 달리면서 자연의 소리에 주파수를 맞추고 사람들과 주파수를 맞추니 나도 상상하지 못했던 놀라운 기운으로 매일매일 달릴 수 있다.
Bristol은 반은 테네시 주에 속하고 반은 버지니아 주에 속하는 특이한 도시이다. 그래서 도시 한가운데 주 경계 푯말이 있다. 이 도시로 유세영씨가 600 마일을 차를 몰고 박창록씨와 함께 격려차 찾아왔다. 아침 여섯 시에 출발해서 오후 다섯 시에 도착하는 장거리 운전을 마다하지 않고 온 것이다.
이박삼일 동안 한 사람은 차량으로 뒤에서 깜박이를 켜고 뛰는 나를 보호해주고 한 사람은 자전거를 타고 앞에서 길을 터주고 하여 얼마나 정신적으로 안정감을 느꼈는지 모른다. 유세영씨는 내가 유모차를 밀며 대륙횡단 마라톤을 할 수도 있겠다는 아이디어가 생각났을 때 처음으로 의논을 한 사람이다. 그때 그가 턱도 없다고 일축해버렸으면 아마 엄두도 못내고 접어버리고 말았을 것이다. 그리고 나서 다른 사람들에게 대륙횡단의 계획을 말할 때 거의 모든 사람들이 가능성이 없다고 고개를 흔들었다. 다만 김정기 선생님이 ‘한번 해보세요’하면서 어깨를 두들겨 주셨을 뿐이다.
용기를 주고 힘을 주고 격려를 해주는 것 뿐만 아니다. 그는 사실 여기까지 오는데 최고의 공로자이다. 매일 지도를 보고 지금까지 길을 뚫어준 사람이다. 매일 마라톤 코스 하나의 거리를 손수레를 밀며 달리는 것으로도 충분히 기진맥진(氣盡脈盡)하는데 지도를 보고, 인터넷 사정도 안 좋은 곳에서 길을 찾고 잠자리를 찾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내 안에는 심장이라는 빨강 지붕의 작은 집이 있다. 그곳에는 사람 사는 정이 잔잔히 강물같이 흐르고, 온 세상이 나의 정원이며 푸르른 하늘이 모두 나의 것인 빨강 지붕의 작은 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