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비가 와서 희미하게 보이던 오른쪽에 병풍처럼 처진 설산이 선명하게 보이고 하늘 위로 새털구름이 초원을 달리고 있다. 산뜻하고 청아해진 공기에 무엇을 해도 기분 좋게 할 수 있을 것 같은 날 나는 42km만큼 평양과 서울에 가까이 달리고 있으니 이처럼 보람된 일이 또 있을까? 스치고 지나가는 꽃바람에 그간의 피로가 확 날아간다. 여인의 부드러운 손길이 내 몸을 어루만져주는 기분 좋은 느낌이다.
이마에서 단정히 휘날리는 앞머리와 명주 같은 갈기에서 부드러운 바람을 일으키며 살이 오르고 털에 윤기가 도는 말 네 마리가 앞에서 달려간다. 엄마 말일까, 아빠 말일까? 아니면 대장 말일까? 한 마리의 두 발이 묶여져 있어 뒤뚱뒤뚱 달린다. 나머지 말들은 묶인 말이 안쓰러운 지 뒤를 돌아보며 보조를 맞추며 달려간다. 카자흐스탄의 개양귀비 꽃으로 빨갛게 무늬진 광활한 초원을 맘껏 질주 할 수 있는 나머지 말들이 한 마리 발이 묶인 말과 함께 보조를 맞춘다.
주인은 한 마리의 발을 묶어놓으면 네 마리 모두 멀리 도망가지 못할 것을 알고 있는 것 같다. 발이 묶인 말이 애처럽기도 하고, 함께 하는 동료애가 가슴 뭉클하기도 하다. 말들도 함께해서 오는 불편함을 감수하며 기꺼이 함께 한다. 초원에서 보조를 맞춰 달리는 건 말뿐만 아니다. 강석준 교무와 나는 벌써 며칠째 발을 맞춰 달리고 있다. 빨리 가려면 혼자 가고 멀리 가려면 같이 가라는 말이 있다. 함께 달리는 발걸음이 한결 가볍다.
요즘 성직자 지망생이 줄어들어 교무가 모자라는 상황에서 원불교에서 연원인 강석준 교무를 나의 가장 험함 코스와 힘든 시기인 텐산 산맥을 넘고 타클라마칸 사막을 함께 달리며 고비를 넘기라고 특별히 배려(配慮)를 해주었다. 혜초스님도 눈물을 흘리며 넘었다는 텐산 산맥이다. 들어가는 자 살아서 나오는 자 없다는 타클라마칸 사막이다. 뒤에 가는 사람은 앞에 간 사람의 해골을 보며 이정표를 삼아 길을 찾았다는 곳이다. 지금이야 길이 잘 깔렸지만 두려운 건 매한가지다.
저 멀리 수백 마리의 소들이 평화롭게 풀을 뜯고 있다. 멀리서 바라보이는 말 잔등에 올라탄 유목민의 모습은 켄타로우스(머리는 사람이고 몸은 말인 신화적인 동물)와 같다. 내가 말의 하체를 지녔다면 지금 이 길을 신나게 달리고 있을 것이란 상상을 한다. 주인을 졸졸 따라다니던 소몰이 개는 소 몇 마리가 대오에서 이탈하자 쏜살같이 좇아가 짖으며 소들을 제자리에 들어서며 다시 주인 곁으로 달려가는 모습이 참으로 내가 동경하던 목가적인 모습이다. 나는 저런 모습을 보면 그대로 이곳에 눌러 살고픈 욕망이 회오리바람처럼 가슴에서 일어난다.
우리 일행이 다가가자 멀리서 켄타로우스처럼 보이던 라하라는 목동이 늠름한 말 조나를 타고 다고 왔다. 라하는 잘생긴 옛날 서부영화에 나오는 주인공처럼 눈이 크고 잘생긴 청년이었다. 한번도 세파에 시달려보지 않고 사랑의 실연을 경험하지 못한 순진무구한 표정에 금방 반해버릴 지경이었다. 그가 타고 온 조나는 텐산의 산줄기처럼 강한 척추와 딱 벌어진 잘 발달된 가슴 근육에 펑 퍼진 엉덩이 근육과 쭉 뻗은 종아리는 천리를 단숨에 달릴 것 같다. 디나는 주인을 잠시도 놓치지 않고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쫓아다니면서도 눈초리는 매섭게 소들을 응시한다. 라하와 조나와 디나는 눈에 보이지 않는 단단하면서도 부드러운 선으로 서로 연결된 하나의 운명체 같다는 생각이 든다.
라하는 우리에게 다가와 통하지 않는 말로 살갑게 인사를 하고는 말에서 내려 말고삐를 내게 전해주면 한번 올라타 보라고 한다. 나는 올라타기 전 조나의 목덜미를 손가락으로 긁어주며 인사를 나누었다. 조나도 나를 친구로 받아들였는지 순순히 자신의 잔등을 내어준다. 이 말을 몰고 그대로 평양을 거쳐 서울로 들어가고 싶다는 욕심이 가득 차올랐다.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파괴되어가는 환경을 초점을 잃은 동공으로 바라만 보다가 텅 빈 듯 충만한 초원에 서니 과연 삶의 중요한 가치가 무엇인지 되짚어보게 한다. 두 세기 전 제정 러시아는 낯선 문명을 가지고 카자흐 유목전통을 통제하려 했다. 그때부터 사회적 혼란과 모순은 격심해져왔다. 러시아인들의 초원진출은 카자흐인들에게 새로운 도전이고 희망과 두려움의 시작이었다.
황제펭귄은 핸디캡이 많은 동물이다. 짧은 털은 추위를 피하기에 부족하고 짧은 다리는 천적을 ㅍ해 달아날 수도 없다. 날개도 제대로 작동을 하지 않는다. 태생적 환경을 극복하기 위해 이들은 물가 모여 따뜻하게 체온을 유지하며 교대로 바깥쪽을 지키며 무리를 보호한다. 황제펭귄이 다 같이 생존하기 위해 배우는 최고의 가치는 ‘동료애’이다. 동물들은 함께 살아가는 지혜를 우리에게 가르쳐준다. 강석준 교무가 며칠 사이에 피부에 화상을 입어가며 내 옆에서 내 발걸음의 무게를 덜어주려 고통을 감수하며 거친 호흡을 내뱉어가며 달리는 모습이 안타깝고도 고맙다.
글로벌웹진 NEWSROH 칼럼 ‘강명구의 마라톤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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