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화물이 들어왔다. 데자뷰도 아니고 일주일 전에 갔던 코스다. Beardstown, IL에서 Newark, NJ로 가는. 나거야 미안하다. 더는 네 고향 가까이 갈 수 없구나.
어제 올린 포스팅을 포고 페친 한 분이 댓글을 달았다. 이 분은 나거가 탈진해 죽어가는 줄 안 모양이다. 지금 그냥 버리면 죽을 테니 야생동물보호센터에 갖다 주라고 하셨다. 내 양심에 호소한다면서. 기분이 살짝 안 좋았다. 졸지에 나는 병든 동물 유기하는 비양심 인간이 됐다. 내 글솜씨가 부족한 탓이다. 나거가 괜찮다고 알려드리려니 댓글이 안 달린다. 메신저에도 안 뜬다. 페친 검색이 안 됐다. 나를 차단한 모양이다. 그분은 나거를 처음 주웠을 때부터 반대하며 빨리 놓아주라고 하셨다. 동물사랑이 지극한 분이다. 처음부터 자기 말을 안 듣고 데리고 다니더니 죽을 때가 되니 버리려는 내가 미웠던 모양이다.
어젯밤 댓글을 읽고 정말 탈진인가 싶어 자는 나거를 깨웠다. 잠이 덜 깨 비몽사몽 하길래 통에 담아 물을 줬더니 한참을 마시고 활발히 움직인다. 역시 자는 거였다. 공연히 깨웠다.
아침에 일어나니 벙커 냉풍구 앞에 나거가 고개를 쳐들고 있다. 희한하게도 나거는 찬바람을 좋아한다. 어제 자다가 추워서 에어컨을 껐다. 다시 에어컨을 틀어주니 그 앞에서 한동안 바람을 쐬다 옆으로 움직였다. 체온조절 방식인가?
페친의 호소도 있고 해서 주변의 야생동물구조센터를 알아봤다. 세인트루이스 야생동물구조센터가 있었다. 아직 근무시간이 아니다. 지도를 조회하니 트럭으로 갈 수 없는 지형이다. 돌릴 곳도 없거니와 아마 그 동네 자체가 트럭진입 금지일 것 같았다. 멀쩡한 거북이를 데리러 오라 하기도 그렇고, 그때까지 기다릴 시간도 없다.
나거를 살펴봤다. 처음 주웠을 때와 비교해 약간 피곤해 보였지만, 눈빛이 살아 있다. 몸무게도 그때와 비슷하다. (거북이가 병이 심하면 빈껍데기처럼 가볍다고 한다) 나거가 물은 마시니 한참은 더 버티겠지만 약속대로 풀어주기로 했다. 지금 위치는 미주리지만 대도시 인근이라 적당한 장소가 아니다. 주변에 인가가 적고 큰 도로가 없는 곳이라야 한다. 무엇보다 우거진 숲이 있어야 한다.
일단 출발했다. 가민은 고속도로로 안내하는데 퀄컴 내장 나비고는 국도로 안내했다. 국도로 갔다. 신호등이 많아 자주 서야 했다. 중간에 공사 현장도 지났다. 일리노이에 들어서 얼마를 더 가니 시골 풍경이 펼쳐졌다. 갓길이 좁아 도로변에 세울 수는 없다. 잠시 후 사거리에 트럭을 세울만한 공간이 있었다. 유타를 세우고 내려서 주변을 조사했다. 차량 통행량도 그리 많지 않고 주변에 숲도 있었다. 이 일대는 기본적으로 농지여도 곳곳에 크고 작은 숲이 조성됐다. 나거를 통에 담아 숲으로 들어갔다. 다시 도로로 나올까 싶어 가능한 안으로 갔다. 나거를 내려주자 조금의 주저함도 없이 풀숲으로 몸을 숨겼다. 무정한 녀석, 뒤도 안 돌아보고. 자연을 접하니 힘이 솟는 모양이다. 필요 없어진 거북이 사료를 주변에 뿌려줬다. 먹으면 다행이고 다른 동물이라도 먹겠지. 작별 사진이라도 찍으려니 핸드폰을 트럭에 두고 왔네. 뒷다리 한번 쓰다듬고 엉덩이 꼬리 두어 번 톡톡 쳐주고 트럭으로 돌아왔다. 나거를 발견할 때도 나비고가 알려주는 경로상이었는데, 풀어줄 때도 마찬가지네. 후련섭섭하다. 미안하기도 하다. 앞으로도 야생동물을 구조하겠지만 치료가 필요한 경우가 아니라면 그 자리에서 놓아주겠다.
거북이를 몇 번 키운 경험이 있고 잘 지냈다. 상황은 지금과 다르지만, 미주리 시골에서 야생 박스터틀과도 간식 먹이며 친하게 지냈다. 종의 차이인지 개체의 성격인지 나거는 아니었다. 며칠간 관찰한 결과 나거는 호기심이 많고 높은 곳에 올라가기를 좋아했다. 경계심을 어느 정도 풀자 좁은 트럭 내에서도 곳곳을 탐구했다. 긴 발톱을 이용해 의외로 등반을 잘한다.
나거를 산책시키다 잃어버릴 뻔했던 뉴욕주 업스테이트 국도변 휴게소가 자연환경은 더 좋지만, 아칸소와 기후가 크게 다르다. 미주리에 가까운 남부 일리노이가 나거가 적응하기엔 낫다고 애써 위안해본다. 배불리 밥한끼 못 먹여 보내서 마음이 짠하다. 나거야 처음 만났을 때 죽을 수도 있었던 귀생(龜生) 다시 태어났다고 생각하고 잘 살아라. 너나 나나 고향 떠나 낯선 땅에서 분투하는 모습이 비슷하겠구나.
JBS에 도착했다. 오늘도 화물은 안 실렸다. 세차장과 야드 모두 지난번보다 한산해서 수월했다. 밥테일로 월마트에 왔다. 다음 주에 집에 가니 많이 살 필요는 없다. 나흘 정도 먹을 냉장식품과 상온 보관이 가능한 먹거리로 조금 샀다. 여전히 이 일대에서 전화 신호는 안 잡힌다. 망할 티모바일. 한숨 자고 일어나 월마트 와이파이를 이용해 발송처에 전화를 걸었다. 아직 준비 안 됐다. 몇 시간 간격으로 전화를 걸어봐야 한다. 주위에 밥테일 트럭이 많아지는 것을 보니 이번에도 오래 걸리겠다.
주차공간이 필요해
새벽 4시 30분에 전화하니 화물은 실었고 서류 준비 중이란다. 7시에 다시 전화하니 준비됐다고 했다. (나중에 신호 연결되는 곳에서 확인하니 5시 15분에 음성 메시지가 들어와 있었다)
트레일러 찾아서 연결하고 서류 받아 출발했다. 전화가 안 되니 라이브 로드 콜은 할 수 없었다. 이럴 때를 대비해 다른 통신사의 예비 전화기가 있어야겠다.
미국 내 네트워크 커버리지를 조사하는 민간단체가 있다. 커버 영역은 버라이즌이 가장 넓다. 단점은 비싸다. 그다음은 AT&T다. 가격은 버라이즌과 비슷하다. 티모빌은 AT&T와 커버 범위는 비슷하고 가격은 싸다. 스프린트는 커버 영역이 낮고 가격은 싸다. 나머지 회사들은 모두 이들 미국 4대 통신사의 망을 빌려 쓴다. 대도시에서는 어느 통신사나 다 잘 터진다. 문제는 시골 지역이다. 티모빌만 해도 거의 문제가 없었지만, 간혹 백에 한두 곳 지금처럼 전화가 안 걸리는 곳이 나온다. 월마트 와이파이가 없었다면 많이 불편했을 것이다.
출발하고 한 시간이 넘도록 전화 신호는 터지지 않았다. 간신히 약한 신호가 잡히는 곳에서 갓길에 세우고 출발보고 전화를 걸 수 있었다.
오늘도 열심히 달렸다. 일리노이 – 인디애나 – 오하이오까지 왔다. 오하이오 휴게소에서 쉴까 하다가 Seville, OH의 TA 트럭스탑에 왔다. 이곳은 200대 이상 주차 가능한 대형트럭스탑이다. 바로 가까이에 파일럿 트럭스탑도 있어 어지간하면 자리가 차는 일이 없다. 거의 오후 9시에 도착했는데도 빈자리가 많았다. 주유는 파일럿에서 하게 돼 있다. TA로 온 이유는 파일럿 평이 안 좋아서다. 화장실과 샤워실이 좁고 더럽다고 별 한 개가 많았다. TA는 깨끗하다는 평이다. 과연 TA 샤워실은 깨끗했다. TA는 샤워비가 14달러다. 다른 곳은 12달러다. TA가 샤워실 비치 용품이 가장 좋기는 하다. 지난 월요일 TA에서 주유했기에 샤워 크레딧이 소멸되기 전에 왔다. 샤워 후에는 컨추리 프라이드에서 저녁을 먹었다. 데니스와 비교해 컨추리 프라이드가 음식이 더 낫고 가격은 싸다. 디너 메뉴를 시켰더니 샐러드바를 이용할 수 있었고 커피 가격도 따로 받지 않았다. (데니스는 커피를 따로 계산한다)
주유를 내일로 미룬 데는 이유가 있다. 자정이 지나면 가격이 갤런당 2센트 내려간다. 9월은 드라이버 감사의 달이다. 트럭스탑마다 각종 행사가 있다. 파일럿 플라잉제이(PFJ)는 9월 중 한 번이라도 주유하면 샤워 파워 크레딧을 준다. 9월 한 달 동안 무료로 샤워할 수 있다. 내 경우에는 PFJ의 샤워 크레딧이 떨어질 일은 없기는 하다.
내일 저녁에는 뉴왁에 도착한다. 배달은 모레 아침이지만 저번처럼 미리 받아 줄 것 같다. 뉴왁에서는 집이 가깝다. 트로피카나에 트레일러를 내려놓고 밥테일로 집에 가면 좋으련만. 지난해 집 근처에 주차했다가 500달러가 넘는 티켓을 받았다. 사정해서 무마는 됐지만 그런 행운을 다시 기대할 수는 없겠지. (게다가 환불받기까지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들었다) 밥테일 트럭을 주차하려면 승용차 2대를 앞뒤로 세운 정도의 공간이 필요하다. 그런 공간을 집 근처에 마련할 수 없을까? 배달처 인근 트럭스탑에서 유료주차가 가능하다. 하루에 24달러 정도로 알고 있다. 밥테일이니 좀 깎아주려나?
## 뉴욕 뉴저지 인근에 밥테일 트럭 주차 가능한 곳을 아시는 분은 연락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일하나?
오늘도 부지런히 달려왔다. 중간에 두 번 쉬고 오후 6시경 뉴왁에 도착했다. 이번에는 길을 헷갈리지 않고 한 번에 제대로 찾았다. 그런데 일을 하나? 다른 트럭도 안 보이고 야드 안에서도 움직임이 없다. 지난주에는 대기하는 트럭도 많고 사람도 북적거렸는데.
일단 근처 도로에 주차한 후 서류 들고 경비실로 갔다. 아무도 없다. 초소에 사람이 있길래 몇 시부터 접수하냐고 물어봤다. 여긴 24/7이란다. 젊은 흑인 여성이었는데 내게 몇 가지를 묻더니 경비실로 함께 가서 체크인 절차를 밟아줬다. 이 서류를 들고 접수하는 곳으로 가야 한다.
육류 접수하는 곳으로 가려니 문이 잠겨 있다. 밖에 나와 쉬는 직원에게 얘기해 다른 문으로 들어갔다. 접수창구에 사람은 앉아 있어 서류는 접수했는데 작업하는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원래 일요일이 그런가? 아니면 노동절 연휴라 그런가?
전화번호 남기고 왔으니 연락이 오겠지. 새벽이나 아침이 될 것 같다.
페북은 감정 변소
자정이 좀 지나 전화가 왔다. 생각보다 일찍 시작하네. 처음에는 77번 도어에 대라고 했다. 막 출발하려는데 74번 도어로 바뀌었다고 전화 왔다. 그런가 보다 하고 갔는데 다행이었다. 77번 도어는 건물 끝쪽이라 닥에 대려면 출구 바리케이트를 나가서 어렵게 후진해야 한다. 내 앞의 트럭이 고생하고 있었다. 74번은 그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나도 편하게 대기 위해 바리케이트를 약간 지났지만, 꼭 그렇게 해야 하는 건 아니었다. 거기다 내 옆의 닥은 비어 있어 공간을 넓게 쓸 수 있었다. 내 뒤로 온 트럭들은 나보다는 어려운 조건이다.
주차하고 서류 접수하고 기다렸다. 한숨 잘 생각이었는데 조국 기자간담회가 시작됐다. 덕분에 기다리는 시간이 지루하지 않았다. 그가 점잖은 사람인 줄은 알았지만, 기자들의 한심한 질문에도 성의를 보이며 답변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멘탈이 강하고 절제력이 있구나. 게다가 체력도 좋다. 11시간이라니. 시종일관 자기 페이스를 잃지 않았다.
새벽 4시경 짐 내리고 서류를 받아서 나왔다. 배달처 담장 쪽으로 트럭을 세울 공간이 있었다. 그곳에 세우고 간담회를 좀 더 시청하다 잤다. 페이스북에 포스팅을 두 개 했는데 나중에 지웠다. 답답한 마음을 풀려고 기자들을 조롱하는 내용이었다. 감정 해소용이다. 페이스북은 감정의 변소이기도 하다. 어떤 사람들은 순전히 그 용도로만 사용한다.
페북 포스팅에 시간을 설정해 놓으면 알아서 지워지는 기능도 있었으면 좋겠다. 당시에야 감정이 격앙돼 써놓고 나중에 보면 유치하거나 부질없다. 나는 페이스북을 기록 저장소로 쓰기 때문에 감정의 배설물은 가능한 덜 남기고 싶다. (아내가 가끔 모니터해준다)
다음 화물이 안 들어왔다. 정오가 지나 앞 트럭이 빠지길래 앞으로 당긴다고 트럭 시동을 켰다. 잠시 후 여러 메시지가 들어온다. 이제야 화물이 들어오네. 그런데 발송지 도착시간이 오후 1시다. 뭐지? 휴대폰을 확인하니 오전 8시에 들어왔다. 자느라 확인을 못 했다. 퀄컴 단말기는 시동 끄고 2시간이 지나면 전원이 꺼진다. 전에는 새 메시지가 들어오면 자동으로 전원이 들어와 알려줬는데, 신형 단말기는 전원을 켜면 그때 메시지를 수신한다. 그래서 수시로 휴대폰 앱을 확인해봐야 한다.
휴일 담당 디스패처에게 오후 3시에나 도착할 것 같은데 괜찮냐고 물어봤다. 괜찮단다. Hammonton, NJ의 켈로그 공장이다. 몇 번 가봤다. 리퍼 연료 가득 채우고, 트레일러 세차 영수증만 가져가면 수월한 곳이다. 근처에도 트럭 세차장은 있지만, 휴일이라 안 열었을 것 같다. 가는 길 중간에 있는 Bordentown의 TA 트럭스탑으로 갔다. 리퍼 급유하고 옆에 있는 블루비콘에서 트레일러를 세척했다.
3시 30분에 켈로그에 도착해 트레일러를 바꿔 달고 출발했다. 여기 배달하고 핏스톤 터미널로 가서 주차하고 오늘 밤차로 집에 가야지. 필라델피아를 통과하는데 도로가 제법 막혔다.
헐~ Bethlehem, PA의 US Cold Storage가 문을 닫았다. 내일 오전 6시 30분에 연단다. 다른 프라임 트럭도 픽업하러 왔다가 공치고 그냥 간다. 그는 근처 카지노로 간다고 했다. 카지노에 주차하지 말라고 하던데? 내 알 바 아니지. 나는 Allentown 서비스 플라자로 갔다. 이 일대에서는 가장 큰 휴게소다. 트럭스탑은 이미 자리가 찼고 이곳은 아직 널널하다. 그러고 보니 오면서 리퍼 연료도 채웠어야 했는데 깜빡했다. 드랍 앤 훅이기 때문이다. 다시 뉴저지로 건너가 주유하고 와야 한다. 1시간 정도 더 걸리겠군. 내일 오전에 배달하면 집에는 내일 오후 늦게나 도착하겠다.
사람들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는다. 믿고 싶은 대로 믿는다. 조국 교수가 어떤 해명을 했든 누군가는 여전히 거짓이라 할 것이고 누구는 후련하다 할 것이다. 그의 속내야 알 수 없지만, 겉에 보이는 모습은 그 정도면 반듯하게 살았다. 그걸 욕할 수는 없다. 존경받을 정도는 아니어도 남에게 해를 끼친 것도 아니다. 정말 나쁜 놈들은 따로 있다.
훌쩍 큰 심바
아침에 배달을 마치고 핏스톤 터미널에 오니 정오다. 인바운드에서 트럭을 점검하더니 에어 드라이 어쩌고 하는 게 수리가 필요하다며 트랙터샵으로 가라 했다.
트레일러와 트럭 모두 깨끗이 세차하고 야드에 트레일러를 주차했다. 평일이라 그런지 평소보다 야드가 덜 복잡했다.
샤워하고 빨래하고 버스 시간 알아보니 오후 6시 버스가 있다. 트랙터샵에 수리의뢰서와 시동키를 맡겼다.
셔틀버스에 전화하니 30분 후에 도착한단다. 30분 후에 밴이 왔길래 물어보지도 않고 탔다. 가는데 셔틀버스 기사에게서 전화가 왔다. 출발 준비됐나? 어? 나 벌써 차 타고 가는데? 내가 탄 밴은 수련생들 호텔에 데려다주는 버스였다. 다시 터미널에 돌아오면 전화해라. 알았다. 호텔은 Wilkes-barre에 있다. 나는 Scranton으로 갈 예정이었다. Lyft를 불렀다. 윌키스베리 버스터미널이 여기서 멀지 않다. 어차피 같은 버스가 여기서 출발해 스크랜튼을 경유해 간다. 요금도 같다. 처음에는 윌키스베리로 다녔지만, 요즘은 스크랜튼으로 다닌다. 스크랜튼에서 다니면 30분 정도 시간이 절약된다.
터미널에서 버스표를 샀다. 편도 52달러다. 1시간 정도 남았다.
마르츠 버스를 탔다. 9시 조금 넘어 뉴욕에 도착했다. 지하철과 시내버스를 타고 집에 왔다. Q17 버스는 계속 업그레이드된다. 오늘 탄 버스에는 USB 포트가 좌석에 있었다.
집에 오니 식구들과 심바가 나를 맞았다. 심바는 나를 기억할까? 많이 컸다. 제법 고양이 태가 난다. 장난을 잘 친다. 깨물고 할퀴고. 팔뚝에 스크래치 몇 줄 생겼다.
내가 밥을 먹는데 식탁에 오르더니 밥을 먹는다. 100% 현미밥이다. 밥을 좋아한단다. 고양이가? 내가 먹던 콩나물무침 반찬도 입에 넣기에 황급히 뺐었다. 그건 안 돼 매워. 고양이가 맵고 짠 것 먹으면 안 좋다. 희한한 녀석일세.
막대기로 심바와 한참 놀아줬다. 맨손으로 놀아주기에는 이제 부담스럽다. 심바는 실컷 놀았는지 막대기를 물고 거실로 나갔다. 아내와 아들의 허벅지에는 심바가 입힌 상처가 있었다. 별로 개의치 않는 것을 보니 애묘인이 다 됐다.
집에서
병원에서 진료를 받았다. 9시 10분 약속이라면서 1시간 30분을 넘게 기다렸다. 뭥미?
QCC에 가서 아내와 아들의 여권을 신청했다. 나무늘보처럼 느릿느릿 일하는 직원이 접수를 받았다. 아내는 사진이 요구 사항에 맞지 않아 다시 찍어야 했다. 아들의 여권만 먼저 신청했다. 아들은 우리집에서 유일한 한국국적자다. 일전에 여권을 신청했는데 증빙서류를 추가로 요구해 영사관에서 받아 냈는데도 거부당했다. 출생증명서와 가족관계증명서를 요구하는데 한국에는 출생증명서 공문이 없다. 기본증명서가 같은 기능을 하는데 미국 관청에서 이 부분을 이해를 못 하는 것 같다. 이번에는 잘 통과하기를 바란다.
식구들과 외식을 했다. 더글라스톤의 성북동 BBQ 식당에 갔다. 근래 먹은 한식당 음식 중 가장 낫다. 거의 한국에서 먹는 맛이다. 자연스레 과식으로 이어졌고 체했다. 두통과 구토증으로 다음 날 아침까지 고생했다.
이번에는 오랫동안 못 만난 사람들을 보려고 했는데 컨디션 난조로 다음으로 미뤄야 했다.
아내의 사진을 포토샵으로 배경을 밝게 처리했다. 배경이 흰색이라야 한다. 드럭스토어에서 출력해 다시 QCC로 갔다. 어제와 다른 직원이었다. 오늘은 사진을 받았다. 아들과 아내의 여권만 나오면 신분과 관련한 일은 이제 잊어도 된다.
심바가 할퀴고 깨물어 손과 팔다리에 상처가 여러 곳 생겼다. 놀자고 달려드느라 생긴 상처다. 심바를 제압하는 법을 익혔다. 달려들 때 이불로 싸서 쓰다듬거나 두드리면 가르릉 거리며 가만 있는다. 고양이가 기분 좋을 때 내는 소리다.
집에 있는 동안 세 편의 영화를 봤다. <나만 없어 고양이>는 고양이를 소재로 한 옴니버스 한국 영화다. TV 드라마 정도의 수준과 내용이다. 고양이가 주역보다는 소품 정도로 나와서 아쉽다. <기생충> 화제의 영화를 이제야 봤다. 잘 만들었다. 칸 대상 받을만하다. 버릴 장면이 거의 없다. <어느 가족> 전년도 칸 대상작이다. 이 작품도 일본영화치고는 꽤 수작이다. 기생충이 다소 작위적이고 우화적이라면 어느 가족은 사실적이다. 단순 비교는 어려우나 영화적으로는 기생충에 더 높은 점수를 준다.
한 편의 교양서적과 소설집도 빌렸다. <포노 사피엔스> 최재붕 지음,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김초엽 소설. 김초엽은 1993년생 젊은 작가로 과학을 전공했다. 단편 한 편만 읽었는데 문장이 깔끔하고 전달하려는 내용이 가볍지 않다.
저녁에는 집 근처 새로 생긴 피자집에서 피자와 샐러드를 먹었다. 라디오쉑이 문을 닫고 오랫동안 비어 있던 공간에 새로 생긴 가게다. 근처 마땅한 피자집이 없어서인지 성업 중이다. 맛은 먹을 만하고 아주 뛰어난 정도는 아니다.
마지막 날 블루베이 다이너에서 브런치를 먹었다. 장원이 형과 제임스 주 형님을 만났다. 제임스 형님이 56년생이라고 해서 깜짝 놀랐다.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는다. 제임스 형님은 일전에 통역 서비스를 통해 알게 됐는데 한국에서 밴드 활동을 하고 뉴욕 시티 칼리지에서 녹음을 전공했다. 장원이 형과 얘기가 잘 통할 것 같아 두 사람을 소개하는 자리를 만들었다. 예상대로 두 사람이 모두 좋아하며 얘기를 이어갔다. 앞으로 자주 보기로 했다. 제임스 형님은 나하고 같은 동네에 살았다.
저녁을 먹고 집에서 출발했다. 오후 8시 버스를 타고 스크랜튼에 11시에 도착했다. 리프트 택시를 불러 회사 터미널에 왔다. 시동키를 받아 트럭에 오니 퀄컴 단말기가 켜져 있다. 수리 끝난 지 얼마 안 된 모양이다.
화물은 내일 오전에나 들어올 것이다. 주말이라 화물이 얼마나 있을는지.
18일에는 2016년 택시 사고 피고소인 신분으로 법원에서 조사가 예정됐다. 19일에는 병원 시술 약속이 있어 약 열흘 만에 다시 집으로 갈 계획이다. 트럭일 시작하고 가장 짧은 기간에 집에 간다.
글로벌웹진 NEWSROH 칼럼 ‘황길재의 길에서 본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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