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 5월 19일 월요일, ‘5.18 광주민주항쟁’이 발발 한 다음날 나는 入營(입영) 열차를 타야 했습니다.
당시 늦게 다시 들어간 대학 2학년이었지만 입영연기가 취소되면서 영장을 들고 논산 훈련소에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훈련소에서 작대기 하나를 달고 퇴소 한 후 나는 곧바로 광주로 보내졌고 그곳에서 ‘충정’ 훈련이라는 것을 받아야만 했습니다. 개인화기에 대검을 장착 한 채 전방을 행해 대검 끝을 겨누고 발로 땅을 구르면서 한발자국씩 앞으로 전진 하는 훈련, 시위대를 총검으로 제압하기 위한 훈련이었습니다.
광주 시민들의 민주화를 향한 목숨을 건 투지가 두려웠던 전두환 반란 군부는 이등병 훈련생들에게까지도 시위진압 훈련을 시켰던 것입니다.
‘다행’이라고 불러야할지, 오늘까지도 어떤 단어로 당시 내가 겪었던 상황을 말해야 할지 두렵기는 하지만, 내가 광주에 투입되었던 7월은 이미 ‘5.18 광주민주항쟁’은 잔인하게 진압되었고 나는 실제로 시위 진압 작전에 투입되지 않은 채 최전방으로 보내졌지만, 제대 후 수십년간 사라지지 않았던 ‘군대’ 꿈이 그날의 한 장면에서 몸서리치며 깨야만 했던 것은, 만일 내가 당시 시위 진압에 투입되었더라면 어떻게 했었을지 하는 소름끼치는 두려움이 시민들 앞에 대검 꽂은 총을 들고 서있는 귀신같은 모습으로 나를 휘감고 있었기 때문인 것입니다.
‘5.18 광주민주항쟁’
“왜 쏘았지, 왜 찔렀지, 트럭에 싣고 어디갔지”
누군가 맞은 자가 있었기에 쏜 자도 있었고, 누군가 찔린 자가 있었기에 찌른 자도 있었던 우리 민족 모두의 아픔입니다.
물론 아직도 그 아픔을 자신들의 추잡한 쓰레기 같은 이득을 위해 써먹고 있는 짐승만도 못한 인간들이 있다는 것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그 날 그 자리에 있었던 이들은 그들이 어느 편에 서 있었던지 때린 자들, 찌른 자들 그리고 쏜 자들 모두가 추악하고 더러운 전두환 반란 군부권력에 의해 희생당한 피해자들이라는 생각이기에 그 날 그 자리에서 자신들이 저지른 악한 짓을 평생 가슴에 묻고 罪人(죄인)으로 숨어 살아가는 이들에게 말 하고자 합니다.
“그 날 어떤 일이 있었는지 털어 놓고 진실을 고백 하십시오. 여러분들 역시 피해자인 것입니다.”
내년이면 ‘5.18 광주민주항쟁’ 만 40년이 됩니다.
쏜 자가 맞은 자에게, 지른 자가 찔린 자에게 고백하고 사죄하며 함께 당한 시대의 아픔을 서로 보듬어 안을 때 우리민족의 역사는 한걸음 통일이라는 희망으로 다가가게 되리라 믿습니다.
글로벌웹진 NEWSROH 칼럼 ‘장호준의 Awesome Clu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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