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님 불멸의 남자 현승효(52)
---사랑하는 당신에게
어제(19일) 돌아오는 길에 서울서 편지 부치고 오늘 이곳을 인사 차 왔다가 불현듯 당신에게 다시 소식 전하오. 나는 오늘 중으로 새로운 직장(박격포부대)으로 옮기게 되었소. 어제 돌아 오는 산길에서 작년 여름 언젠가 당신과 헤어질 때 넘던 천서리 산 모퉁이 풀밭에서 당신을 그리며 하염없이 앉아 있었더랬소.
그리운 당신의 모습은 필설로 다 형언키 어렵구려. 그때와 똑같은 숲길, 초록색의 신록 당신의 체취를 맡으려 이리저리 고개를 돌려 보았소
여보, 나는 어디에 가더라도 강인하고 모든 것을 나의 최선으로 대처할테니 아무 걱정마오. 그리고 방학때 오면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당신과 보내도록 할테니 아무 걱정말고 달려 오기 바라오
사랑하는 당신! 나에게 당신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가슴이 터질 것 같은 행복감과 자신감에 넘치고 있다오. 부디 건강하게 밥 많이 해먹고 잘 지내기 바라오. 이제 나에게 닥치는 시련도 이것이 마지막이 될 듯하고 오히려 이것이 나에겐 더욱 알차고 보람있는 경험과 느낌으로 昇華시킬터이니 지켜봐 주기 바라오.
사랑하는 당신! 하늘은 무척이나 맑고 푸르구려. 어제 그 산길은 나에게 너무나 강렬한 인상을 주었소. 언젠가 당신의 몸이 피곤해서 나와 같이 체조하면서 돌아서던 그 길 말이요. 그리고 이제 다시 수첩에 매일매일 전처럼 일기로 당신과 대화를 계속할 수도 있으리라 믿소. 꼭 매일매일 당신의 이름을 쓰면서 이겨 가리라. 사실 이번 직장도 별것은 아니니 걱정마오.
나의 사랑! 당신에게 이 편지에 수없이 입 맞추면서 쓰고 있다오. 아마도 당신은 이 편지지에 눈물 방울을 떨어뜨릴지도 모르겠구려. 그러면 안돼! 나의 바램은 건강한 당신이오. 밥 많이 먹고 운동 부지런히 하면서 방학 때 만나기로 합시다. 이제 얼마 남지 않았소.
그리고 이 글과 함께 대구에 편지를 함께 부칠 터이니 만약 누나에게 서류가 도착되지 않았다면 그곳에서 확인하고 나에게 연락하도록 하면(이것은 누나에게 부탁해 놓았음) 내가 이곳에서 다시 서류를 한통 보낼 터이니 학교 것을 다시 해서 한번 더 제출토록 하오
그저 당신은 건강하게 지내기만 하면 된다오. 그리고 새 직장에 옮기는 즉시 주소 알려 주리다. 당신이 그토록 애태우던 편지는 이제 자주 하게 되었으니 그것은 더욱 좋은 일이요. 이곳 주소는 이제 바뀔 터이니 이리로 편지 마오
여보, 내내 건강하오. 나는 강한 사람이니 걱정말고 안녕
77. 6.20. 勝孝

이 편지를 받고 한 주일이 또 지나갔습니다. 연일 찌는 듯한 날씨인데도
더위를 별로 안 타던 나도 그 밤은 자다 깨어 뒤척뒤척 거렸습니다. 꼼짝하기 싫어서 웬만하면 그냥 잘 터인데 무언가 강하게 당기는 힘에 끌려 옷도 걸치지 않고 마당으로 나갔습니다
하늘 저 높이 달이 휘영청 밝았습니다
“당신도 지금 보초 서면서 저 달을 보고 있겠네.”
달을 그렇게 간절하게 바라 본 적은 없었지요
(나중에 보니 그 시간에 그는 이미 의식을 잃었습니다)
다음 날 잠을 설쳐서 머리가 횅하고 몸이 개운하지 않았지만 출근은 겨우 하였습니다. 오전 11시 쯤인가 수업을 하고 있는데 바로 옆 교무실에서 때르릉 전화 벨이 요란스레 울립디다. 그러더니 시끄리한 소리가 웅성웅성 들리고 복도에는 급하게 탁탁 끄는 쓰리빠 소리가 내가 수업하는 교실 문 앞에서 뚝 멈추더니 소사 무시마가 드르륵 문을 열고,
“노선샘예 시외 전화 왔심더”
그 순간, “올게 왔구나!” 하는 생각이 휙 지나 갑디다.
생전 들어보지 못한 남자 목소리가 전화줄을 타고
“승효가 전사했답니다, 지금 서울 누나 집으로 가 보시이소 ……”
낯선 목소리는 승효씨 집에 세들어 사는 아저씨였습니다
초연이 휩쓸고 간 듯, 이 세상이 텅 빈 듯, 옆에서 동료들이 뭐라 하는데
하나 들리지도 않고 어떻게 땅에 발을 디디고 걸어 왔는지
헛발질을 하며 간신히 이선생네를 갔습니다. 이선생, 승효씨가 죽었대.
이선생, 영보 씨, 이선생집 주인아줌마, 모두 무슨 소리냐며 펄쩍 뛰며 그러지
말고 서울 큰누나 집에 전화부터 해보라 합니다
큰누나는 “승효가 좀 많이 다쳤어, 놀래지 말고 어서 와”하십니다
얼마나 다쳤길래? 온갖 상상이 다 되고 어지러웠습니다
서울 갈 채비를 하러 집에 갔더니 우체부가 다녀 갔는지 마당에서
주인할매가 편지를 들고 있다가
“너거 애인한테서 왔다, 좋겄다, 자!”
하고 휙 던져 줍디다
"할매예, 이 사람 죽었답니다"
"뭐라카노 야가! 할매는 빽 소리를 지르고 섰고 저는 그의 체취를 맡으려고 한참이나 편지봉투를 얼굴에 대고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나의 生命에게
인편이 있어 또 소식 전하오. 내 생각에 당신은 오늘도 잠을 설치고 새벽녁엔 벼개섶에 아쉬움과 서러움에 그리고 슬픔과 아픔이 범벅된 눈물로 적시리라
나는 알고 있소
나는 오늘 새벽 꿈결에 당신을 만나다 깨어서 엄청난 현실의 차이에 눈물이
날 뻔한 것을………….
이때까지는 내 하고푼 일만 하다 당신이 나를 기다리는 고통을 잊은 적도
있소만 이제야 나는 알 수 있구려!
노야! 용서해 주오. 그리고 나는 당신이 얼마나 억척스럽고 강인한 여자라는
걸 오늘 새벽에야 느낄 수 있었다오. 나라도 그토록 긴 그런 시간을 견딜 수
는 없으리라는 것을 나는 오늘 새벽의 아픔으로 알았소.
노야! 나는 행복하다오 가슴이 터지도록 기쁘다오. 아무리 어려움이 가슴을
찢고 고통이 오더라도 당신이 있는 것만으로 나는 견딜 수 있게 되었다오.
노야! 사랑하오. 강인한 나의 지주 우리 계속 강해 봅시다.
그리고 못난이가 되지 않는다고 맹세하오. 밥 많이 해먹고 튼튼하고 건강한 몸으로 있다가 방학에 달려오오. 내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당신과 보내리다.
나에겐 당신이 전부이니 나머진 상관할 것이 없다는 걸 느꼈소. 그리고 내가 몹씨도 보고싶고 괴로울 땐 누워있지 말고 밖으로 나가서 일을 정신없이 하던
지 무엇이든지 해서 잊도록 하고 알았지?
그리고 건강해야 하오. 나는 강인한 사람임을 잊지말고 집념도 강하다는 것을 기억하기 바라오. 나의 강한 여자여, 안녕!
1977, 6.25
승효.
글로벌웹진 NEWSROH 칼럼 ‘노천희, 내님 불멸의 남자 현승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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