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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천희, ‘불멸의 남자 현승효’
1974년 경북대 의대 본과2년, 박정희유신독재 철폐운동 주도하다 제명후 강제징집돼 제대 4개월을 남기고 폭염에 완전군장 구보훈련중 사망한 현승효. 그에겐 뼈가 녹고 피가 말라도 식지않는 불멸의 사랑이 있었습니다. 28개월간 수첩에 빽빽이 적어놓은 그립고 애달픈 연인의 사연들, 30년만에 빛을 본 <내님 불멸의 남자, 현승효>를 뉴스로 독자들에게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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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님 불멸의 남자 현승효(60)

깨알같은 글씨로 사랑의 연가를 쓴 11개 수첩
글쓴이 : 현승효노천희 날짜 : 2022-08-28 (일) 21:37:57

깨알같은 글씨로 사랑의 연가를 쓴 11개 수첩

 

<내 요번에 들어가면 죽지 싶으다>

----현승효 28주기를 맞아

 

강제로 군에 끌려가기 전에는 긴급조치같은 법도 아닌 법으로 삐끗하면

도망을 가야 해서 어떤 때는 모르는 사람이 찾아 와 쪽지를 전해주어서

보면 "노야, 몇날 몇시 김천역 구름다리 아래로 오시오" 한다든지

 

또 한번은 느닷없이 친구가 찾아 와 어디로 어디로 버스를 몇번씩이나

바꿔 타고 가서 그가 숨어있던 곳에서 잠시 만나고 오기도 하고 늘 이런 식이었습니다

 

도망 안 댕길 때에는 데이트 약속시간에 한시간씩 두시간씩 늦게 와서

"꼴비기 싫어!" 입 꽁 다물고 삐져 있으면 "이꼴 노야가 평생 봐조야

하는데 보기 싫으면 난 어떡해" 하고 싹싹 빌어서 겨우 조금 풀려 웃고

좀 재미가 있을라 하면

 

노야, 요서 쪼끔만 기다리래이" 미안해 하며 또 싹싹 빌다가 단호하게 가버립니다. 인제사 유신철폐운동 작당하느라 딴데서 기다리는 동지들에게

간 걸 알았습니다. 그러던 그가 정작 군에 끌려 가 있는 동안은 오롯이

내 차지였는데……..



 


어느 누구의 위로하는 말도 듣기 싫고 가만히 쳐다보며 안쓰러워하는 눈길도 거추장스럽고 다 싫었습니다. 가슴을 쥐어뜯는 고통이 덮치면 기뻤습니다. 그의 색신은 이제 흔적도 없는 현세에서 살아있는 내게 유일한 기쁨은 그로 인한 쥐어뜯는 고통 뿐이었으니

 

얌전히 선생질하다가 회식 자리에서 권하는 술만 들어가면 필림이 끊겨

통곡을 하고 몸부림을 치면 다 혼비백산 도망하고

 

노선생 약혼자 일을 그 다음 해 부임해서 알게 된 슈벨트같이 생긴 음악선생

이 행동이 느려 미쳐 도망을 못 가고 있다가 널브러져 있는 나를 택시를 불러 집에 데려와 약을 사멕이고

 

내가 정신을 차려 보니 온방에 도배질 했던 그의 사진 옆에서 쪼그리고 앉아

한참이나 보더니 "노선생, 이 친구는 왜 죽어서 노선생 속을 썩이고 그래요?"

하더니 얼마 후 "나 노선생하고 결혼하고 싶어" 합디다

 

그가 없는 세상 나 혼자 먹고 살자고 돈 번다는 게 너무 끔찍하고 밥 세끼만

먹을 수 있다면 결혼? 오냐, 하자 해! 곰보도 좋고 째보도 좋고 곰배팔도 좋고 당신이 필요해!” 하는 사람과 살아 버렸습니다

 

생명이란 참 묘해서 그 질식할 듯 막막한 고통의 늪 속에 빠져 들어가

죽을 것 같다가 시간이 지나니 멀쩡해지고 기대라며 말없이 어깨를 대주는

엉뚱한 딴놈하고도 살아 집디다

 

하루종일 멀쩡한 사람처럼 할 일 하고 사람노릇 잘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한번씩 아침에 깰 때면 텅 빈 마음, 혼란스러운 마음에 멍해 집니다.

가슴이 휑하면 이 거리 저 거리를 그냥 쏘다니며 지치도록 걸어 다닙니다.

아침에 나가며 이 사람은 여보 오늘은 날이 너무 더우니 집에 바로 들어 와, ? 하고 달래기도 하고

 

그런데, 언감생심 여자박정희 박근혜가 여당보다 더 힘있는 야당의

대표가 되어 국가의 정체성이 어쩌고 아니 이럴 수가?

 

여자박정희가 웃는 걸 보면 마음이 뒤틀려 아직도 많이 괴롭습니다. 얼마나

더 이렇게 뒤틀리는 마음으로 살아가야 하는지 정말 암담할 때가 많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이러하리라. 그 사람들이 가여워 손이라도 잡아주고 싶습니다

 

, 피가 거꾸로 솟으며 정신이 들어 내 남은 생 현승효추모사업에 정열을 바치겠다 선언하니 이제는 영감이 된 딴놈은 그래 당신 건강이나 잘 챙기면서 해!” 합니다

 

눈알이 뱅뱅 돌도록 혹사시키는 쫄병생활에 1분이라도 틈이 나면 품속에서

애인이 사 준 작은 수첩을 꺼내어 깨알같은 글씨로 사랑의 연가를 빽빽이 써놓았다가 수첩이 가득 찰 때가 되면 그 멀리 부대로 온종일 달려 온 애인 손에 쥐어 주어 다시 만날 때까지 떨어져 있는 동안 자기를 느끼게 해주려고 들킬까봐 피를 말리는 공포에 떨며 써놓은 어른 손바닥 반만한 수첩이 11,

 

보물처럼 끌안고 살았습니다. 님의 색신은 없으나 일기는 한시도 떨어져 본 적 없이. 힘들 일이 있을 때는 "덤벼라 내가 누구냐 나는 현승효가 죽도록 사랑하는 노야니라" 하면 무서울 게 없고 겁나는 게 없었습니다

 

살기 바빠 잊고 살았던 옛 친구들이 하나 둘 이메일을 보내 와 답장하려고 한글타자를 연습해서 야후나 구글에 아는 사람 이름을 모조리 넣어 검색 해보니 다 나오고 심지어는 30년 전에 한 집에 세 얻어 살며 정이 든 사람 이름도 넣으니 이메일 주소가 나와서 우리는 반갑게 통화도 했는데

 

<현승효>를 검색하니 '자료없음' 하며 하나도 안 나오다니, 이럴 수가? 숨통

이 턱 막혔습니다

 

아침에 눈만 뜨면 민주와 관계되는 사이트는 샅샅이 들어가서 현승효도 있나 보았습니다. 날이면 날마다 민주화 운동 희생자로 인정받은 사람들 명단이 발표되는 데

 

아무도 현승효 얘기는 하지 않고 박근혜는 활짝 웃고 한국에서 내노라 잘났다는 남자들이 여자박정희에게 대표님 대표님 우리 대표님 굽실굽실대고 가는 곳마다 사람들이 환호를 하는 걸 보니 머리가 팍 돌아버릴 듯하고

 

내가 기억하는 내님의 친구들을 싹 다 검색해서 이메일을 보내도 한 사람도

답장이 없었습니다. 입술을 꽉 깨물고

 

"좋아 승효씨 내가 하께. 내 남은 열정 현승효기념사업할거야!” 선언했더니

 

탱구는 옛날 결혼하자 할 때도 이 친구 사진을 머리맡에 두고 자도 자기는 개의치 않는다 하더니 이번에도 노 프라블럼(no problem!), 당신 건강

잘 돌봐가며 해하고. 우선 내님의 일기문을 워드에 넣는 작업부터 하겠다 했더니 탱구는 노트북을 사와서 한글을 다 깔아 주었습니다.

 

컴맹인 내가 처음에 뭘 잘못 눌러 입력한게 다 없어져 앙앙 울면 땀을 뻘뻘 흘리며 복구를 해놓고, 노트북에 매달려 있는 나에게 커피 갖다주고 밥 갖다 주고 과일 갖다 주고 당신 병나겠다 쉬엄쉬엄 하라 그럽니다.

 

자고 깨서 <현승효>를 검색하면 여전히 <자료없음>, 계속 이럴 수가 머리가 돌아버리겠다가 20045월 어느 날 아침, 기적처럼 화면에 뜬 현승효활자는 살아서 꿈틀 꿈틀 움직이는 생명체였습니다.

, 하느님 마침내 부활하여 내게 온 님!

기어코 내게 찾아 온 이 순간, 머리 속에 불꽃 같은 게 파바 파바박 팡팡 정신없이 마구 터지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유신시절 의문사한 친구 현승효, 실종된 후배 심오석의 죽음의 진실 밝히기 전엔 눈 못감아경북대의대 71학번 신인식씨 진상규명 나서다

 

현승효, 경북대의대 71학번

심오석, 경북대의대 72학번

 

죽어간 친구의 진실을 밝히지 않고서는 눈을 감을 수 없습니다.”

 

암울했던 1970년대 초 유신반대 운동을 벌이다 의문사한

심오석 현승효 경북대 의대 민주열사 기념사업회를 추진하고 있는

신인식(53)씨는 이렇게 말문을 열었다. 경북대 의대 71학번인 신씨는

의대 졸업 뒤 의무공무원과 개업의 등을 거쳐 최근에는 이일에 전념

하다시피 하고 있다.

 

신씨의 절친한 친구이던 현씨는 1972년부터 74년까지 유신독재 반대를 주도하다 19752월 강제 징집되어 제대를 얼마 남겨놓지 않은 776월 말 의문의 죽음을 당했다.

 

신씨는

승효가 열사병으로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가족들이 가보니 온몸에

붕대를 감고 있었다면서 붕대를 풀고 몸을 보니 몸이 청동 녹색으로 변해 있었다고 죽음에 의문을 제기했다. 일반 주검의 경우 회백색을 띄는 것이 정상이라는 것이다.

 

신씨는 대학 재학 때 나를 데리고 청도 운문사로 가 독립군가를

불러주며 잔학한 유신압제에 맞서 싸우자고 뜨겁게 말하던 친구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고 말했다.

 

후배인 심오석씨 경우도 신씨 가슴에 맺힌 한이다. 761114, 경북대 의대본과 1년이던 심씨는 공안기관의 수배망을 피해 도피 도중 행방불명 된 뒤 아직까지도 그의 생사는 밝혀지지 않고 있다.

 

신씨는 그 며칠 뒤 심씨의 여동생이 심씨가 공안기관원으로 보이는

2명에게 연행되는 것을 보았다고 말했다“2002년 심씨 가족이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에 제소했으나 증거가 부족해 1차 판정에서

진상규명불능 결론이 났다고 말했다.

 

신씨는 현재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에서 이 두 사람의 의문사를

재조사하고 있다사건의 진실을 밝히고, 이들을 추모하는 사업을

추진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신씨는 지난 26일 현승효씨의 형 승길씨와 당시 경북대 교수였던

안재구(72) 박사 등을 만나 기념사업회 설립문제를 논의했다.

그는 앞으로 자료수집에 나서는 한편, 두 사람을 위한 기념관

설립등을 추진할 계획이다.

 

대구/박영률 기자 ylpak@hani.co.kr 한겨레(http://www.hani.co.kr),

 

 

글로벌웹진 NEWSROH 칼럼 노천희, 내님 불멸의 남자 현승효

 

http://www.newsroh.com/bbs/board.php?bo_table=nbnh&wr_id=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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