탱구가 조용필 평양음악회 다운 받아놓았다고 빨리 나와서 보라고 불러댄다
용필이가 (안성기 조용필 다 내하고 동갑이다) '허공'을 부르니 갑자기
고광덕이가 생각이 났다. 허공은 광덕이 십팔번이잖아
"여보, 허공 저 노래 광덕이 십팔번이대이"
"나도 허공 좋아해"
"첨 듣는 소리네"
"진짜다"
"근데 광덕이 이 쉐이는 요새 전화도 안하고"
그카는데 눈물이 찔끔 난다
"광덕이가 보고싶은데 이 쉐끼가 요새는 전화도 안해"
"한 번씩 하두만도"
"3월달에 내 한국 가고 없을 때 했다 그랬잖아 그 뒤에도 했어?"
"아, 그때 하고 안 왔어. 당신이 해봐라 왜"
"싫어, 요노무 쉐이!"
98년 부중 동창 9명이 33년 만에 첨 동창회한다고 했을 때 Jackson Heights 우리 동네에서 차로 20분 떨어진 플러싱에 사는 광덕이 차를 둘이만 타고 워싱턴을 갔다왔다 하였다. 아이들 보고는 천희가시나가 한번도 안 쉬고 이야기 하더래이 했다지만 지도 안 쉬어놓고는. 우리는 정말 한시도 쉬지않고 온갖 얘기를 다 하고 금방 가시나야 짜식아야 하며 무슨 소리도 다 하게 되었다.
현승효는 중앙국민학교 동창이라 우리 친구합시다 했더니 “내가 뭐 친구가 없어서 여식아하고 친구하게 됐심까?” 하고 픽 웃었다. 며칠 지나 애인 행세를 할라고 해서 또 우리 친구 해요 했디 얼굴을 찡그리며 틱 내뱉는 말이 “암놈 숫놈 만나 친구 좋아하시네.” 하고 휙 걸어가 버리잖아. 아이고야! 그러고는 친구하자 하면 또 암놈 우짜고 할까봐 입밖에도 못 내었는데 광덕이는 가시나처럼 내하고 수다 떨기 너무 좋아 친구가 되더래이.
그때 가시나 6명, 무시마 서이가 왔는데 무시마 하나 하고는 싸웠지만 광덕이 하나 건졌으니 손해 본 거 없다. 워싱턴 살던 진주가 새벽부터 전국 각지에서 오는 아이들 공항에 픽업한다고 우리가 밤 열시가 다 되어 도착해서 보이 진주는 바스라질 것 같아 깜빡 놀랬다
그런데 무시마 하나가 진주가 겨우 좀 앉아서 5분도 안 되었는데
“진주야, 커피 좀 마시자”해서 “응!” 하고 일나서는 진주를 내가 앉치고
커피 니가 해무라 해서 기분이 상한 이 무시마하고 결국은 싸움 한판 하게 되었다. (내가 밥하고 신랑이 설거지 한다 했디 뭐? 하며 인상을 팍 쓰길래)
티샤쓰 갈아입을 때마다 '예수천국 불신지옥'핀을 꼭꼭 옮겨 꼽고 댕겨서 야 와이카노 싶은 것만 빼면 광덕이 야 하고는 잘 통했다. 예를 들면 조용한 곳을 지나가면 좀 잘나가는 무시마가 여게다 땅을 사두었으면 지금쯤 어쩌고 그카면 내가 광덕이보고 “자 와 저카노?” 그카면 “자들은 원래 저래 살아왔잖아” 이카면서 맞장구도 쳐주고, 노래방 가서 미친게이 처럼 춤을 추고 밖에 나오니 내 옆에 살짜기 와서는, “천희야, 니 춤 참 잘 추더라, 어쩌면 저래 귀여울까 싶더라.” 이러고, 진주가 우리 집에 왔을 때는 하루 근무 빠지고 존스비치에 같이 가주고는 내가 꽝덕아 한 곡 해라 하면 이동원의 ‘향수’도 멋들어지게 부르고, 돌 주워와서 공기놀이도 하자 하고 우리 둘에게 하나씩 업히라면서 업어주기도 하고, 밥 먹을 때는 천희야 이거 너무 맛있제? 하는데 가시나 친구들 보다 더 살갑고 같이 놀기 그저그만이었다. 무시마 동무가 이래 가시나처럼 재미있고 편한 거 첨 알았다.
우리집에서 진주는 만고에 편하다는 탱구 춘선이 하고, 나는 꽝덕이 하고 붙잡고 부르스라 카면서 붙잡고 춤도 추었다.
진주가 리치몬드로 이사 가서 광덕이 하고 놀러오라 해서 너무 신나서 야 집에 전화를 하는데, 마눌이 여보세요 하길래 도둑놈 지발 지린다고 아이쿠 싶어 전화기를 얼른 놓았더니 "우리 집에 전화했어요?" 하고 금방 전화가 와서 한참을 쪽팔려 죽을 번 했다.
저거 마누라가 경계하는 눈치라 마눌의 마음을 상해가면서 만날 거 뭐 있노 싶어 만나고 싶은 마음을 싹 접고 광덕이 땜에 한동안 보는 둥 마는 둥 했던 춘선이 등어리에 다시 찰싹 붙어 자기 시작한 후 어느 날 야한테 전화가 왔는데 지금 central library 내 일하는 도서관에 와 있다고 했다
내려가니 엄마야! 야 얼굴이 반쪽이고 눈의 흰자는 붕 떠있었다. 니 얼굴이 와 그러노 야야? 깜짝 놀라 묻는데 야는 거의 정신이 반이 나간 것 같았다
얘기를 들어보니 중학교 3학년이던 딸 때문이었다. Macy에서 옷을 한 5백불어치(그전에 한번은 엄마가 쉬쉬) 훔치다가 들켜서 경찰서에서 연락이 와서 좀 때렸더니 고발을 해서 판사가 딸을 집에 못 있게 하고 그룹홈에 있다는 것이었다
지는 아이들을 위해 밤일을 하면서 매일 3시에 학교 가서 픽업해 오고 토요일마다 뉴저지에 있는 한국학교까지 데려다주고 퀸즈칼리지에 악기 배우러 다니게 하고 정성을 다 쏟았는데 판사 앞에서 눈물을 똑똑 흘리며 지 아부지가 때린 이야기만 해서 야는 놀래나자빠지고 배신감에 혼이 다 나간 것 같았다
그러면서도 그룹홈에 같이 있는 아이들이 약도 하는 것 같다면서 아이 걱정을 하는 것을 보고 내가 우리집에 델꼬 온나 하니 니도 아픈데(목디스크) 그럴 수 있겠나 하며 반색을 하길래 오늘 당장 데려 오라 하였다.
그렇게 해서 아이가 우리집에 한 석달 있으면서 마눌도 두 번 우리 집에 오고부터는 광덕이 만나는거 아무 거리낌이 없어졌는데 그후 뉴저지 Long Branch로 이사가버려 만나지 못하고 일년에 한 번 쯤 잊아뿔라 카면 볼일 있어 뉴욕에 왔다 카면서 전화하면 탱구보고 "여보야, 내 잠깐 연애 좀 걸고 오께" 쪼르르 나간다
우리는 정치사회문제 책 얘기, 영화 얘기도 하고, 신학교 다닌다면서 목사들 교회 욕은 지가 불교도인 내보다 더 빡세게 하였다.,
얼마 전에 사무실로 전화가 왔길래 톡 튀어 나가서
"꽝덕이 웬일이여?"
"우리 마눌이 점 빼고 오라해서 점 빼고 온다"
"잘했군, 언제 점 빼고 오라 카던데?"
"엊저녁에"
"뭐시라? 엊저녁에 카는 걸 오늘 빼고 온다꼬? 아하하하!"
나는 지금 몇 년째 탱구가
여보 밥 먹자 하면
점 빼고 오면
여보 우리 영화 한편 땡기까? 하면
점 빼고 오면
여보 우리 언제 섹스해? 하면
점 빼고 오면
점서방 새똥겉은 거 싹 빼고 오면 뽀뽀 더 마이 해주지 해도 다음에 다음에 그래서 몇 년째 기를 빼고 있는데 이 무시마는 엊저녁에 지 마눌이 그칸다고 고 다음날 당장 쪼르르 가서 뺐다카네
"여보 광덕이는 마눌이 엊저녁에 점 빼라 캤다꼬 오늘 가서 빼고 왔대, 아하하하!" 탱구도 아하하 막 웃었다.
그라던 광덕이가 요새는 전화도 안한다. 잘 묵고 잘 살아라 짜식아야!
평양토백이 야 아부지는 김일성대학을 나온 인테리인데 체제가 싫어 부모님과 여동생, 자기 세식구가 서울로 내려왔다. 가지고 온 재산은 삐끗하면 조사한다고 붙들어간 헌병대 경찰 비열한 자들 주머니로 다 들어가고 신원문제로 시달림을 안 받으실려고 군에 자원입대하셔서 6.25 전쟁 때 동료 대신 수색작전 나가셨다가 행불이 되셨다 한다. 한 사람만 건느면 빽없는 약자들 등처먹고 불안하게 만드는 폭력의 암울한 현대사의 짙은 그늘이 야 집에도 있었다.
통일을 왜 해야 하나, 분단으로 인한 이런 비극, 억울하게 당하게 사는 폭력이 끝이 안 날것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광덕이는 맑은 눈으로 사물을 보고, 지 감정을 다 솔직하게 말하고 생활도 성실하게 해나가고 사람의 마음을 공감하는데 참 예민하였다.
어릴 때 본 고우영의 일지매 만화에 나오는 대사도 다 기억을 하는데 일지매의 엄마가 종이었고 양반주인에게 겁탈을 당해 일지매를 낳고 열흘 만에 얼라를 뺏기면서 읊었다는 시조를 아직까지 기억을 하고 읊어주는데 핏덩어리를 뺏기는 어미의 한이 전해져 와 가슴이 저리고 중 1학년 때 사육신을 읽으면서 성삼문 박팽년이 세조에게 주리를 틀리는 참혹한 고문을 당하는 것을 보면서 "아, 사람이 한평생 살아가는 일이 이리도 어려운 것이로구나!" 탄식을 했다고 그럴 때도 마음이 찌리리 아파오며 중딩 1학년짜리가 우째 그런 생각을 다 했노 기가 막혔다.
예수도 디기 열심히 믿는데 교회 다니게 된 동기를 이야기 할 때도 찡해왔다. 국민학교 6학년 때 여름, 공부하다가 너무 더워서 골목에 바람 씌러 나왔다가 전봇대에 영화를 공짜로 보여준다 해서 화살표를 따라 갔더니 허름한 교회였다 했다. 영화도 아니고 환등기로 뭘 시시한 걸 보여줘서 너무 실망했는데도, 얼굴이 쪼글쪼글하고 초라한 행색의 목사님이 연방 웃으시는데 그 얼굴이 너무 행복해 보여 "나도 예수를 믿으면 저렇게 행복해질까? 하고 예수를 믿게 되었다 하는 말에도 가슴이 찡해 왔다.
부중에서 공부 잘했는지 서울고를 갔고 대학 때는 빈민운동가이던 제정구씨와 청계천 천변에서 김진홍 목사가 하던 빈민교회에서 야학도 하면서 쪽방사람들과 함께 살았는데 그들은 상상을 못 할 정도로 너무 가난하여 밥 한 숟가락 갈라먹기는 커녕 한 숟가락이라도 이 자원봉사 대학생들에게 뺏길까봐 경계를 하더라 해서 가슴이 답답해져 왔다. 이런 일 한다고 정권에 찍혀서 취직도 제대로 못해 한때 노가다를 하면서 공치는 날도 많아 배도 무지무지 마이 곯았단다.
일자리도 없고 찾아 갈 친구도 없고, 너무 너무 배가 고파서 어릴 때 한 동네에서 놀던 친구집에 가서 눌러 있는데 인테리 대학생 친구가 국민학교만 나온 노가다인 지한테 언제까지 빈대 붙을려나 싶어 얄미워 죽을라 하는 친구가 한 번은 돌아앉아 지를 흘끔흘끔 보며 혼자 밥을 묵는데 죽이고 싶은 생각을 누르느라 너무 힘들었다 했다.
"아, 내가 양심범이 아니라 배가 고파 사람을 죽일 수도 있는 파렴치범이 될 수도 있겠구나 싶어 절망이 되더라" 그카면서 눈물을 주르르 흘리는 게 아닌가! 생전 처음 남자가, 48살 어른이 주르르 눈물을 흘리는 모습에 너무 놀라 머리가 하얗게 되는 것 같았다.
2009년 6월에 우리 유록이 결혼식 할 때 메인주에 3박 4일 같이 가서 놀고는 연락을 뚝 끊었다. 어디 사는지도 모른다,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모른다.

2009년도 작은 딸 결혼식 Bar Habor. 앞줄 왼쪽이 내친구 광덕이
글로벌웹진 NEWSROH 칼럼 ‘노천희, 내님 불멸의 남자 현승효’
http://www.newsroh.com/bbs/board.php?bo_table=nbnh&wr_id=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