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얄 수없이 부르며 잠들다..”
***사랑하는 당신에게
애타게 기다리다 힘찬 당신의 필체를 대하니 살 것 같습니다. 추운 날씨에 동
상에 걸리지 않았는지 빨리 추위가 지나가기만을 빌고 있습니다. 저는 신천동
에 한번 다녀 온 것 밖엔 아무도 만나지 않고 있어요.
오빠 가게일로 너무 신경을 써서 그런지 뼈마디가 아파요. (상사병도 겹치어)
2월 중순 경 운운은 정말인가요? 그 말을 들으니 생기가 납니다. 걷어 부치고 소제도 하러 내일 거창으로 갈 준비를 해야 되겠어요.
아무리 힘이 들더라도 몇 자라도 끄적여서 보내 줘요. 제 숨통을 확 튀우는 유
일한 생약이예요. 제가 또 달려갈까봐 걱정하셨던데 염려 마세요. 안 간게 아
니라 돈이 떨어져 갈 수가 없었어요.
이 글을 쓰고 있는데 영순 진미 수남이 우리의 금쪽같은 동생들이 놀러 왔어요. 신천동 당신 부모님께 세배 드리러 갔는데 두분이 안 계셔서 헛걸음 하고 왔군요. 참 기특하고 심지가 깊은 게 보물 같습니다.
저는 오늘로 편한 날은 다 갔습니다. 빨리 내 자리를 찾아 가 충실하고 책임을 깔끔이 마쳐야겠지요. 촌에 가서 맑은 공기 마시고 내 손으로 밥해먹고 다시 씩씩해질거예요.
1976년 2월 3일 노야.
2월 7일 토, 1976년
어제 돌아와 버린 건으로 찜빠먹고 내 고참은 터졌다. 우리도 기압을 받아
팔이 뻑쩍지근하다. 아마 근육이 오르는가 보다. 팔이 더 굵어지겠지. 오늘
부터는 칸트와의 수업을 계속해야지. 9시 30분 부터 새벽 1시까지 거의 매
일 책을 읽으니까 낮엔 노상 존다. 그리고 힘도 없다. 날씨가 따셔서 다행이
다.
그의 정리되고 완벽한 서술은 나를 경탄케 한다. 지금까지의 모든 哲人들이
빛을 잃는다. 노얄 빨리 보고싶다. 이상하게 낮엔 종일 졸고 힘이 없다가
책을 펴드는 밤이 되면 정신이 맑아진다. 그러나 낮에 다시 읽으면 무슨 말
인지 기억이 없다. 천천히 읽으리라. 그래서 이 글만은 내것으로 하리라.
왜냐하면, 칸트의 글은 다른 모든 철학과 형이상학이 가능타당한 범위와 理性
의 한계를 설정하는 철학의 진수를 취급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확실히 정리되고 개념으로 나의 머리에 자리 잡을 때 다른 모든 현란한 사상의 오류 비오류의 구별을 가할 수 있는 능력이 부여되기 때문이다.
사실 세상을 살아가는 데는 이런 높은 사유가 없더라도 별 불편을 느끼지 않
는다. 그러나 나는 노야가 없으면 이 세상을 살아갈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
로 이러한 노력과 고투가 나에게서 박탈된다면 나는 그냥 부랄만 달린 사내
에 불과한 비존재가 되어버릴 게 아닌가. 아! 빨리 그들과 같은 정신적 경지
에 도달하고 싶다. 나에게 맑은 정신과 파란 공기를 다오. 머리가 혼미해진다.
2월 8일 일, 1976년
이상한 악몽에 밤새도록 쫒기다 새벽 3시경에 깨어났다. 그토록 기분이 나
쁠 수가 없어 일어나도 현실인지 머리를 꽉 내리누르는 암울한 기분이어서
한참 담배를 피웠다.
천연색으로 꾼 너무도 생생한 꿈 아마도 나의 무의식의 발현이겠지. 나는 어
느 의사들의 목적을 알 수 없는 의학실험의 대상물이 된다. 이상한 약물들이
계속 나에게 투여되고 나의 몸은 이상한 고통에 빠지게 된다. 나는 맑은 의
식으로 그들의 목적에 대해 항의한다. 그러나 여자 간호원은 붉은 낯으로 대
답을 회피하며 그대로 내가 대상물이 되어 주기를 음흉한 눈빛으로 종용한다.
나의 몸이 좋은 목적에 이용되는가 아니면 악한 목적에 이용되는가를 알지
못했다. 그래서 탈출했다. 너무도 생생한 기억. 탈출경로에 붉은 빛깔이 수
많은 시체들, 복도의 전기불 속을 빠져 나와서 학교로 갔다. 교정은 초록빛으
로 (선글라스를 끼고 보는 것 같은) 물들어 있는데 주선생님의 차가 있고 학장 선생님의 방에는 불이 켜져 있었다.
안도환도 있었고 수남이 영순이도 있었다. 영순이는 빼문 표정으로 가
만히 앉아 있었다. 수남인 사람좋은 웃음으로 “자주 오시네예” 하며 나를 앉
은 채 맞고 안도환 채종민도 서먹한 표정으로 “형님 잘 나오시네예”하며 맞
았다.
주선생님은 멀리서 날 보시고는 피해버리시고. 그러나, 그중에서도 영순이가
가장 인간미 넘쳤으나 너무나 차가왔고 오히려 내가 걸어오는 말을 기다리고
있는 모습으로 한귀퉁이에서 앉아있을 뿐.
비록 꿈이었으나 탈출한 기억, 그 소외감, 그 쓰라림은 도저히 씻겨지지 않
았다. 나는 순간 노야를 생각했다. 그렇다. 나의 노야다. 노야를 찾자며 학
교를 뛰쳐 나오다(수많은 학생이 교문까지 도열해 있는 사이로 나는 달렸다) 꿈에서 깨었다. 꿈이었지만 너무 섬찟해서 오랫동안 몸을 떨었다. 깨어나서 몸서리쳤다. 꿈 속에서 노야를 찾았다.
찜찜하고 끈적거리는 피, 사체 냉장고 속에 끊어놓은 팔들, 그 긴 복도를
잊을 수 없다. 나는 그 꿈의 의미를 곰곰히 생각해 본다. 어쩌면 나의 무의
식이 결정된 꿈이 아닐까? 야릇한 감에 빠지다. 노얄 수없이 부르며 잠들다.
안녕, 나의 모든 것.
****사랑하는 내님께
내일이면 긴 방학이 끝나고 교정에는 팔딱팔딱 뛰는 소년들로 가득하겠지요. 인제부터는 정말 애정을 가지고 아이들을 대해야 겠다고 다짐하니 설레어 집니다.
당신이 닥친 시련을 수련할 기회로 생각하고 우리의 명예에다 걸고 이겨나
가시듯 저도 충실하고 책임질 줄 아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이런 생각들은
당신의 글을 읽을 때마다 깊이 느낍니다.
소중한 말들은 감동으로 저의 전신을 휩싸며 떨게 하고 눈물에 젖게 하고
끓어 오르는 열정과 용기를 줍니다. 앞날에 주신다는 영광과 명예는 이미 다
받아 먹고 지금도 먹고 있습니다.
애기 업고 밀어 닥치는 손님들에게 새언니 혼자 부대끼는게 안되어 보여 요
새는 주로 가게에 나가 있습니다. 찾아 온 손님 한사람 한사람에게 마치 당
신의 얼굴을 대하듯 부드럽게 합니다. 그러면 짜증도 안나고 귀찮지도 않고 마음이 지극히 편안해 집니다.
당신이 절 얼마나 사랑하는지 요즘에야 확연히 깨달아 지는 듯 합니다. 세상 남자들의 것과는 아니 제가 당신을 사랑하는 것과는 도저히 비교할 수 없는
그 참됨을. 저의 사랑이란 얼마나 얄삭한지!
그리고 저녁 먹고는 이선생과 영화보러 갔어요. 난방도 안된 썰렁한 촌극장 안, 아래층 이층 다 해서 한 열명이 될까? 재미도 디기도 없는 영화인갑다. 저 사람들도 엔간이도 할일없어 이 추운날 영화보러 왔구나, 보다가 재미없으면 나가지 뭐 앉아 있어보는데 …..
제목이 ‘삼포 가는 길’
시작이 되고 화면 속으로 점점 빠져드는데 엄마야 얼마나 좋은 영화인지! 포스터를 다시 눈여겨 보니 황석영 원작 이만희 감독이라. 김진규 백일섭이 나오고 그리고 여자 주인공은 신인인데 문숙이라 합니다
산업근대화라나 건설 붐이 전국에 일어 나 일을 따라 떠돌아 다니는 날품팔이 남자들 그런 남자들이 있는 곳에는 어김없이 작부들이 있고. 얼마 전에만 해도 고생하는 부모를 가슴아파하는 착한 딸이 작부가 되어 “내 배 위로 남자들 한 사단은 지나갔을거라” 하는데 날이 갈수록 빚만 늘어 고향 길은 점점 멀어 지는 데,
갈 곳 없고 오라고 하는 사람 없는 밑바닥 인생들이 정처없이 고향을 찾아 가 본다는 참 쓸쓸하고 보는 내내 가슴이 아려오는 영화입니다. 눈발에 빠지면서 하염없이 걸어가는 모습이 너무 슬픈데 화면은 미치도록 아름답고……
당신의 하루가 피와 땀으로 이루어지는 댓가로 저는 행복한 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 다음에 다시 만날 때는 철이 난 소년을 보시게 되리라.
1976년 2월 8일 노야.

---노야 보십시요(군사편지)
너무나 오랫만에 소식드립니다. 어제 3통의 글을 한꺼번에 받았습니다. 무척 궁금하고 야속하게 생각하셨으리라 믿습니다만 사정이 있었습니다.
나는 몸 성히 잘 있고 일이 잘되면 빠른 시일 안에 만날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사람의 일이란 모든 것이 마음 먹기에 달렸으니 항상 여유와 아름다운 꿈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요즈음 와서 자주 느끼는 일입니다만
고통과 번거러움 귀찮음 다 순간적인 것이고 그때그때 성의와 이건 아무 것
도 아니다 라는 가벼운 마음으로 힘을 내서 해버리면 뒤에 오는 안락한 시
간은 연장되는 것이고 마음도 가벼워지니 그렇게 하십시오.
항상 내곁에는 노야가 있다는 생각이 나로 하여금 새로운 힘과 인내를 주고
또 이 세상을 더 아름답게 하고 있습니다. 객지에서 지나온 여러가지 상
념에 전전반측하고 고달픈 몸을 쉴 틈도 없이 생활에 쫒길 노야를 생각하면 미안하고 죄스럽기 한이 없으나 다 우리의 사랑을 위한 시험이라 생각하시
고 힘을 내어 씩씩하게 지내시기 바랍니다.
세월은 유수같이 흐르는 것 곧 대지에 봄이 출렁일 것이고 백화가 만발하지 않겠소. 시간이 아까워 애석한 것 말고는 모든 것이 매우 좋소. 머리에도
엣날엔 미처 깨닫지 못한던 충일감이 조금씩 채워가고 있소.
오빠의 가게 장사가 잘 된다니 정말 다행이고 노야가 장하고 훌륭한 일을
하셨소. 조금은 말을 잘 듣지 않는 노야지만 마음만 먹으면 누구보다도 잘
해내는 노얀 줄 잘 알고 있소.
겨울은 게을러지기 쉬운 계절이니 용기를 내어 보건체조도 하고 뛰기도 하
십시오. 1976년 2월 10일 승효.
2월 15일 일, 1976년
오직 독서에만 심취하다 보니 일기는 영 도외시 된다. 읽은 걸 거듭 읽고 또
읽고 하여 칸트의 의미도 조금 밝게 선명하게 부각된다. 이 즐거움, 이 환희! 어쩌면 그토록 고귀한 인간이 있을까?
며칠 후면 집엘 간다. 아마 가게 되겠지. 요새는 잘 먹는다. 잠이 좀 모자라
지만. 어제 밤부터 계속 눈 비가 섞여 내린다. 오늘 새벽엔 눈으로 변해 제
법 많이 쌓였다. 신나게 눈을 쳤다. 왠지 하루하루의 일이 신이 난다.
인간의 즐거움, 행복이란 어떠한 사유에 의해 자신이 지배되는가에 달려 있다. 칸트는 인간의 이상과 몽상에 마구 달리는 야성까지 처음으로 재갈을 물린 인간이다. 그의 사상은 모든 사상이 가능하기 위한 기초로서 토대로서 필독의 책이다. 어제는 서대규 선생님과 노야에게 쓴 편지를 부쳤다.
이렇게 날씨가 흐리고 찌뿌둥한 날은 시간이 지루하다. 이런 때는 노야가
더욱 그리워 진다. 노야의 모습은 언제나 새롭다. 나에겐 千의 얼굴을 가진 존재다. 어떤 때는 천사로 악마로, 어떤 때는 악바리로 그리고 심통장이로 지성인으로 도덕군자로 그래서 난 아마 죽을 때까지 노얄 다 사랑하지 못할거다. 한 사람이 그토록 좋을 수 있을까. 내가 생각해도 그것은 경이다.
2월 16일 월, 1976년
오늘 정말 좋은 경험을 했다. 구경만 해오던 포경수술을 거의 내 손으로 처
음 집도했다. 수술은 1시간 가까이 걸렸다. 그리고 처음한 거지만 누가 봐
도 가장 잘된 작품이다. 그 수술을 하던 고참이 휴가를 가서 그 다음 고참
과 내가 하게 됐는데 그는 떨려서 못 하겠다기에 내가 했다. 수술이 끝났을
때는 야릇한 흥분을 느끼다. 땀도 흘렸다. 아마 내 군대생활 3년이 나에게
주는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리라.
나에게는 지금 하나의 희망이 있다. 이것은 많은 독서와 인생 경험을 토대로
내 나이 30이 되기 전에 하나의 이치를 발견하고 그것을 책으로 묶고 싶다는 것.
나는 수많은 독서로 영원성 속에서 사는 인간의 모습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노야와 나는 영원히 살아야 한다. 그것은 인간정신의 재발견 속에서만 가능
한 것이다. 나는 이 일만은 꼭 성취시키고 싶다. 그것도 20대에 소박하나
꺼지지 않는 정신의 불멸을 남기고 싶다
아직은 캄캄하다. 오리무중 속에서 나에게 발견될 실체를 찾아 허우적거리지
만 언젠가는 번개불처럼 그것은 나의 손에 만져질거다. 그때까지 끊임없는
노력과 용기와 성실함을 가지고 손을 내젖는거다. 어쩌면 그것은 영원히 내
손에 쥐어지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언젠가는’ 이라는 가능성 속엔 포기
할 수 없는 희망이 있다. 그것은 모든 인간을 용감하게 만든다. 나는 결코 포기하지 않으리라. 그리고 조심조심 마음속으로 눈을 부릅뜨고 한발씩 내디디리라.
안녕 잘 자, 노야.
글로벌웹진 NEWSROH 칼럼 ‘노천희, 내님 불멸의 남자 현승효’
http://www.newsroh.com/bbs/board.php?bo_table=nbnh&wr_id=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