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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촌의 사랑방이야기
등촌 이계선목사(6285959@hanmail.net). 광야신인문학상 단편소설로 등단. 은퇴후 뉴욕 Far Rockaway에서 ‘돌섬통신’을 쓰며 소일. 저서 ‘멀고먼 알라바마’외 다수. ‘등촌의 사랑방이야기’는 고담준론(高談浚論)이 아닙니다. 칠십 노인이 된 등촌이 젊은이들에게 들려주는 로변잡담(爐邊雜談)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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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섬의 나비축제

글쓴이 : 이계선 날짜 : 2011-10-21 (금) 19:57:36

돌섬에서 나비축제를 구경한 건 굉장한 행운이었다. 10월 초에는 아내가 맨손으로 월척 10여 마리를 잡아 올려 용맹을 과시했다. 이번에는 내가 공짜로 호랑나비축제를 감상하는 행운을 얻은 것이다.

10월 10일 쯤이었다. 보드워크를 거닐면서 돌섬의 가을을 감상하고 있었다. 모두가 돌섬을 떠나고 있었다. 기러기들이 멀리 떠나가고 있었다. 여름내 해변에 피어있던 형형색색의 들꽃들도 자취를 감춰버렸다. 넓은 해변들판에 억새풀들만이 남아 있었다. 그것도 죽어서 누렇게 남아있었다.

얼마나 억세기에 죽어서도 남아있을까? 파랗게 살아 있을 때보다 더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죽어서 부드러워진 억새풀들이 바람 부는 대로 몸을 흔들고 있었다. 파란 가을 하늘위로 억새풀 씨앗이 하얗게 날라 다니고 있었다. 백조의 호수를 춤추는 군무(群舞)처럼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모르게 유행가를 흥얼거렸다.

“아, 으악새 슬피 우는 가을인가요!”

고복수가 노래하던 으악새가 바로 억새풀이기 때문이다. 가을바람에 흩날리는 억새풀들을 보고 있으면 누구나 로맨스 그레이의 추억에 잠기게 된다. 고복수의 노래가 아니더라도.

억새풀사이로 노란 꽃들이 떼로 보였다. 수십만 평의 모래들판을 노랗게 덮고 있었다. 제주도 한라산의 유채꽃을 보는 듯했다. 억새풀과 어울려 절묘한 조화를 만들어 내고 있는 저 꽃 이름은 무얼까? 미국인에게 물어봤더니.

“Sunflower라고 합니다. 한국에서는 가을에 피는 꽃이 국화이지만 미국에서는 저 꽃이 제일 마지막에 피어서 가는 가을을 장식해 주지요”

미국에도 해바라기(Sunflower)가 있구나! 가난했던 고향의 어린 시절 우리는 얼마나 맛있게 해바라기씨를 까먹었던가. 반가워서 다가가 봤더니 웬걸? 색깔도 모양도 천박스러웠다. 냄새를 맡아보니 맙소사! 향기는 커녕 악취(惡臭)가 났다. 미국인들은 쓸쓸한 가을 해변에 피어 주는 게 고마워 예쁘게 불러주는 모양이다.

신기하게도 못생긴 이 꽃으로 나비가 날아들고 있었다. 그렇게 기승을 부리던 모기도 벌도 사라진 이 가을에 아직도 나비가 있다니?

 

노란바탕에 검은 줄이 쳐있는 호랑나비였다. 나비 중 왕 나비 호랑나비. 그것도 한두 마리가 아니었다. 수천마리가 떼를 지어 파란하늘을 선회(旋回)하면서 나비춤을 추다가 노란 꽃물결위로 사뿐히 내려오는 것이었다. 나는 이렇게 많은 호랑나비를 본적이 없다.

함평의 나비축제가 이만할까? 지난 5월 고국 가는 길에 함평이씨 시조산(始祖山)을 찾아 함평에 간적이 있었다. 내가 함평이씨 이기 때문이다. 마침 함평나비축제가 열리고 있었다. 나비들이 몰려오게 하려고 거대한 꽃 단지를 만들어 놓고 있었다. 세계의 명품 꽃들이 모두 모여 자태(姿態)를 뽐내고 있었다. 기기묘묘한 분재와 한국의 야생화들도 모두 와 있었다. 뉴저지에 있는 꽃 공원 “롱 우드가든”보다도 더 화려했다.

 

http://www.hampyeong.jeonnam.kr

막상 나비들은 그렇게 몰려오지 안했다. 꿀을 발라놓고 기다려도 그랬다. 나비들을 잡아다가 비닐 꽃밭에 넣어 여왕 모시듯 했다. 그래도 나비들은 별로 날라 오지 않았다. 대신 사람들이 몰려왔다. 전국에서 몰려온 관광객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관광객들은 흥에 겨워 덩실덩실 나비춤을 추었다.

그런데 내가 사는 돌섬나비축제는 달랐다. 관람객은 나 혼자 뿐인데 수천마리의 호랑나비가 날라들고 있었다. 악취 나는 Sunflower도 꽃이라고 호랑나비들이 정신없이 날아들고 있는 것이다.


“이 쓸쓸한 가을 바다에 호랑나비가 날아 와 주다니. 호랑나비야 날아라. 아싸 호랑나비”

나는 김흥국의 호랑나비를 흉내내다 말고 똑똑한 둘째딸을 전화로 불렀다.

“은범아, 돌섬은 지금 나비축제란다. 나비철이 지난 가을인데 호랑나비들이 몰려와 난리를 치고 있으니 웬일이냐?”

“아빠, 그놈들은 캐나다에 사는 호랑나비들인데 겨울은 멕시코에서 지내요. 멕시코를 향하여 멀리 남쪽으로 날라가다 배가 고파서 돌섬에 들린 거예요”

미국사람들은 이 호랑나비를 Monarch라 부른다. 모나크는 군주 황제라는 뜻이다. 황제의 곤룡포(衮龍袍)처럼 호화로운 날개에 두꺼운 힘을 갖고 있는 모나크 호랑나비는 캐나다 국적이다. 캐나다에 가을이 오면 호랑나비들은 따듯한 나라 멕시코로 민족 대이동을 한다. 캐나다 전역에서 사단(수천) 혹은 군단(수만)병력을 이끌고 한곳에 모이려고 날라 간다.

2개월 동안 3천 마일을 나는 동안 중간 중간에서 쉬기도 하면서 꿀을 먹어야한다. 가을이라 꽃을 구경하기가 힘들다. 그래서 돌섬 바닷가에 무더기로 피어있는 선플라워를 찾은 것이다. 비록 향기가 없는 꿀이지만.

두 달을 날다보니 길이 멀고 오래 걸려 30%는 죽는다. 따듯한 나라 멕시코에 도착한 호랑나비들은 모두 오야멜 숲으로 모인다. 18에이커 숲속 분지다. 신기하게도 이놈들은 해마다 오야멜을 찾는다. 수백만 마리의 호랑나비가 18에이커로 몰려든다. 100만 명이 몰려온 여의도 광장처럼 오야멜 숲속은 호랑나비떼로 인산인해(?)다.

호랑나비들은 겨울내내 나비축제를 벌인다. 황태자의 결혼파티는 저리가라다. 수백만 마리의 호랑나비가 하늘을 날면서 춤을 춘다. 짝짓기 춤이니 얼마나 황홀할까? 그러다가 일제히 숲으로 내려온다. 쉬려는 게 아니다. 폭신한 나무숲에서 섹스를 하는 것이다. 섹스가 끝나면 다시 하늘로 날라 올라 쌍쌍 춤을 춘다. 하루 종일 반복이다. 내년 봄에 건강한 새끼를 낳으려면 격렬한 사랑을 나눠야 하기 때문이다. 오야멜 숲은 하늘도 땅도 호랑나비로 가득하다.

와!

전 세계에서 몰려온 호랑나비애호가들은 벌린 입을 다물지 못하고 감탄 또 감탄이다. 겨우내 사랑의 축제를 즐긴 호랑나비들은 봄이 되면 알을 낳고 죽는다. 알을 깨고 나온 새끼호랑나비들은 어머니의 고향을 찾아 캐나다로 날아 올라간다. 수백만 마리가 날아가는 대이동이다.

내려올 때는 바람을 타기 때문에 2달이면 된다. 올라갈 때는 바람을 뚫고 날아야 하기에 6개월이 걸린다. 신기하게도 내려오는 놈은 8개월을 사는데 올라가는 놈은 6주밖에 못산다. 내려 올 때는 당대에 오지만 올라갈 때는 3-4대가 걸려야 한다.

올라가는 호랑나비는 중간에서 알을 낳고 죽으면서 자식들에게 바톤을 넘긴다. 그렇게 해서 캐나다에 도착한 3대가 자식을 낳는다. 그러면 캐나다에서 태어난 4대가 가을이 되면 다시 멕시코로 날아간다.

“그렇구나. 일지군마(一枝軍馬)를 이끌고 멕시코의 오야멜 숲속으로 날라가 나비축제에 합류하려던 일파가 배가 고파서 돌섬에 내렸구나”

은범의 설명을 듣고나니 돌섬의 가을나비축제가 멋져 보인다. 둘째딸이 말했다.

“아빠, 내년 봄이면 이놈들의 손주 뻘 되는 호랑나비들이 캐나다로 올라가다가 반드시 돌섬에 들려 봄철 호랑나비축제를 벌릴 거예요. 그때는 꼭 저에게 연락 주셔야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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