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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泰格의 架橋세상
독일 프랑크푸르트 은행주재원 생활 4 년, New York 에서 20年 동안 生活하면서 뉴욕 최대일간지인 ‘New York Daily News’와 美 최대은행 ‘Bank of America’ 에서 근무했습니다. 'Bridge Enterprises'라는 사업체를 통해 韓國과 美國의 架橋를 자임한 이민1世입니다. 유럽과 美洲 양 대륙에 살아 본 사람으로써, 100개 이상의 종족이 어울려 살고 있는 美國과 뉴욕, 이민가정 子女들이 겪는 이야기를 전해 드리겠습니다. 逢南 韓 泰格(www.TedH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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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선(寶物船)발견-童話보다 더 童話같은 이야기

그러나, 뒤안길에는 아주 아픈 歷史가 숨어있었다! 
글쓴이 : 韓 泰格 날짜 : 2015-12-11 (금) 07:39:30

 

지난 5() Flushing 대동연회장에서 필자가 졸업한 대학의 송년파티가 거행되었다. 같은 테이블에 앉은 66학번 교우가 한선배 요즈음 비즈니스 잘 되십니까?” 물론 의례적(儀禮的)인 인사인 것으로 이해는 하였지만 ()교우는 내가 판촉물비즈니스를 하고 있는지 알면서 어찌 그렇게 묻씁니까? 비즈니스를 한, 두해 해 본 사람이 아니면서망년회(忘年會)에 참석하느라 어젯 밤 하얗게 새웠지요. 판촉물비즈니스하는 사람이 이 시즌 바쁘지 않으면 명년 춘삼월(春三月) 보릿고개를 어떻게 넘길려구요?”하며 너스레를 떨었다.

 

메뚜기도 한 철이라고 정말 바쁘다. 그러나 아무리 바쁘다고 하더라도 세상사(世上事)를 써달라고 신문사에서 거창하게스리풍향계(風向計)를 맡겼는데 역할은 제대로 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동안 풍향계를 담당하면서 관련지역에 대한 칼럼을 여러번 써왔기에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고 있을 때 우리 독자 여러분들께 지체없이 전달하여야겠다는 의무감(義務感)이 발동(發動)하여 생업은 잠시 뒷전이다!

 

우리에게 있어 케리비안(Caribbean)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몇가지 있다. 해적(海賊 Pirate), 보물(寶物), -보물섬, 보물선- 또는 휴가를 떠나는 상하(常夏) 지역같은 일반적으로 동화속 주제들이다!

 

그 케리비안 해안에서 정말 동화(童話)같은 스토리가 실제로 나타났다. 상상할 수도 없는 량의 보물을 실은 보물선(寶物船)이 발견되었다.

 

MB시절인20119월 중순 한국을 방문한 적이 있는 꼴롬비아 Juan Manuel Santos 대통령은 124일 그의 Tweet에서 케리비안연안에 있는 Cartagena(까르따헤나)항 인근 해저(海底)에서 에메랄드 보석(寶石)과 금화(金貨), 은화(銀貨)를 선적한 스페인 범선(帆船, Galleon) San Jose의 잔해(殘骸, Wreck)를 발견하였다고 발표하였다.

 

 

Spanish Fleet 1 2015 12 6.jpg

 

스페인의 필립 5세의 함대소속이었던 San Jose()307년 전인 1708(朝鮮朝 肅宗 34에 해당) 대영함대(大英艦隊)와의 교전(交戰)끝에 지금의꼴롬비아Cartagena항 인근에서 침몰(沈沒)되었다.

 

Santos 대통령은 희소식(Great News)이 있다. 우리는 San Jose함을 발견하였다. 금은보화의 현 싯가는 적게는 20억불에서 많게는 170억불에 달할 것이다. 후속 발표가 곧 있을 것이다하고 발표하였다.

 

탐사(探査)프로젝트 착수 시 미국의 해양(海洋) 탐사회사인 SSA(Sea Search Armada)와 꼴롬비아 당국는 서로 파트너가 되어 발견시에는 서로 50:50로 배분하기로 합의하였으나, 침몰된 San Jose함의 실체가 1981년 밝혀지면서 꼴롬비아 당국은 미법정에 이의(異議)를 제기, 2011년 법정은 이 범선의 소유권 전체는 꼴롬비아에 귀속(歸屬)된다고 판시하였다.

 

필자는 그 보물의 소유권이 꼴롬비아에만 있는 것인지 반론(反論)을 제기한다. 1708년은 꼴롬비아라는 나라는 실제하지 않았다. 그 나라는 불란서 나폴레옹이 1807년 스페인을 점령한 뒤, 스페인이 중남미 에 대한 식민지통치가 이완(弛緩)되면서 Simon Bolivar장군에 의해 1810720일 건국된 나라다. ‘동화의 무대(舞臺)가 된 시점은 1708. 당시는 남미를 스페인왕국이 남미를 지배하고 있었던 시절이었다. 남미대륙에서 출토, 생산된 모든 금은보화는 모두 Cartagena항을 통하여 Espana로 실어 날랐던 시대였다. 운송함이 지금의꼴롬비아 영해에 침몰, 300년이 지났지만 그 금,,보화의 원산지(原産地)는 꼴롬비아만은 아니다. 지금의 꼴롬비아는 화물의 경유지(經由地)일 뿐이다. 필자는 금은보화의 소유권(所有權)은 콜럼버스이후 스페인제국으로부터 300년동안 노동력을 강요(强要)받았던 남미(南美)전지역의 진짜 땅 주인들에게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해를 돕기위해 2012827일에 쓴 Potosi(Bolivia)라는 제목의 백인국가의 식민지 착취사(搾取史)에 대하여 쓴 칼럼을 첨부하기로 한다.

 

-Potosi-

 

지난 500년간 (500 Years Later)”이라는 어구(語句)는 근대(近代) 백인들에겐 아킬레스 건(Achilles Tendon)처럼 매우 치명적 약점을 암시(暗示)하는 말이다. 왜냐하면, 1492년 이태리인 크리스토퍼 컬럼버스가 스페인 왕실의 지원으로 신대륙을 발견한 이후 그들이 신대륙을 식민지로 통치, 경영하면서 원주민들과 흑인들에게 자행한 노동착취(搾取) 그리고 역사와 인권말살(人權抹殺)을 감행한 기간이 지난 500년간이기 때문이다.

 

물론 그 이전에도 정복(征服)과 피()정복의 관계에서 피정복자들 중 노예(奴隸)계층이 존재하였지만, 로마시대는 전쟁에서 전공(戰功)을 세우면 노예가 시민(市民)으로 신분 상승할 수 있는 기회가 주워졌고, 세계를 제패한 징기스칸의 몽고제국도 고려(高麗)역사에서 보듯, 내정(內政)자치(自治)”하도록 허용하였고, 중동지역을 지배하였던 오스만 터키도 그리스 등 유럽지역을 통치하면서 피정복지의 언어와 문화는 존중하여 주었다.

 

그러나, 지난 500년간 아메리카 대륙을 정복한 백인들은 달랐다!

 

Aztec, Maya 그리고 Inca 문명을 말살시켰을 뿐 아니라, 언어와 종교를 강요하였다. 한마디로 혼()과 정신(精神)을 빼 버리려 하였던 일제(日帝)의 한국어 말살과 창씨개명정책과 같은 강압정책을 실시하였던 것이다. 그런 면에서는 북미주(北美洲)도 자유스러울 수 없다.

 

지난 한달 동안 필자는 3회에 걸쳐 남미 5개국 Paraguay, Brazil, Uruguay, Bolivia, Peru 그리고 Chile가 당사국이 된, 세 차례의 전쟁사(戰爭史)를 일별(一瞥)하여 보았다. 오늘은 Bolivia 남서부에 위치한 Potosi라는 신대륙의 중세(中世)”도시를 둘러보기로 한다. 왜냐하면 이 도시야말로 위 남미국가들의 종주국이었던 Spain이나 Portugal이 주축(추후, 대영제국과 불란서, 독일, 미국이 합류)Conquistador(정복자)들의 식민지배정책을 한 눈으로 볼 수 있는 Showcase이기 때문에 1987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다.

 

백인에 의한 원주민/흑인에 대한 지능적이고 체계적인 노동력 착취와 제국주의에 의한 피식민지에 대한 철저한 인권탄압의 역사를 이 한 도시에서 체험할 수 있다.

 

Potosi는 해발 15,000피트 (4,500 Km, 백두산 2,750 Km)에 있는 지구상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도시다. Cerro Rico(자원이 풍부한 산)이라고 명명된 Potosi산 기슭 고지에 1546년도에 형성된 도시로, 은광 발견 후 한 세기 동안은 광산덕분에 유럽의 중요도시 런던, 파리보다 더 부유하였고 인구도 이십만 명을 능가하였다.

 

이 도시는 중세를 대표하는 스페인의 대 문호 Miguel de Cervantes가 쓴 돈 끼호떼(Don Quixote 1605년과 1615년 두 차례에 걸쳐 발행) 2 71장에도 재물이 가득한 미지의 땅으로 묘사되었을 정도다. 일설에 의하면 US Dollars 표시인 $가 이 도시의 화폐주물표시인 PTSI에서 연유되었을 것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Potosi() 순은(純銀)은 야마(Llama)나 노새(Mule)에 실려 Spanish Main이라고 불리웠던 카리비안 연안지방으로 운반되어 스페인 보물선(Spanish Treasure Fleet)에 선적, 지금의 꼴롬비아 Cartagena항을 통하여 종주국 스페인으로 운송되었다.

 

공식집계에 의하면, 1556년부터 1783년까지 230년간 채굴된 은의 양은 41,000 톤이나 되었고 그 중 8,200톤이 스페인 왕실로 헌납되었다.

 

은 채광은 수많은 원주민의 생명을 앗아갔는데, 사인(死因)은 가혹한 노동 때문뿐만 아니라, 수은 중독에 기인하였다. 은 원석을 정련(精練)할 때는 우선 수력기계로 원석을 가루로 빻아 높은 온도에서 수은과 섞고, 원주민들이 맨발로 아말감(Amalgam)을 밟게 하였다. 그 다음 수은은 가열을 통해 분리시키는데 이때 치명적인 증기가 발생하였다.

 

점차, 원주민의 노동력이 줄어들자 이를 벌충하기 위하여 1608년 식민지지배자들은 스페인왕가에 해마다 1,500~2,000명의 아프리카 노예들을 수입할 수 있도록 청원서를 올렸다. 식민시대를

 

통틀어 Potosi에 총 3만 명 이상의 흑인노예가 유입되었다. 이들도 인간 노새(Acemilas Humanas)로서 감옥같이 설계된 Casa de la Moneda(주조창-鑄造廠)에서 혹사(酷使) 당해야 했다. 노새는 기계를 돌리다가 몇 달이 지나면 죽기 때문에, 지배자들은 네 마리 노새 대신 스무 명의 노예를 이용하였다.

 

1800년 이후 은광이 고갈(枯渴)되면서 주석(朱錫)이 주요 생산품이 되었다. 주석 생산도 결국은 서서히 사양길에 접어들었다. 아직도 이 산에서는 은 채굴이 계속되고 있다. 수백 년 은광을 파왔기 때문에 Cerro Rico산의 고도(高度)300~400 Meter가 낮아졌다고 한다. 현재도 은광을 찾아 지상에서 1,000 Meter가 넘는 지하로 파 내려가는 Digging Deeper 작업을 감행하고 있다. 1,000 Meter이하의 지하작업이기 때문에 12일 밤새워 작업한다. 갱도(坑道)의 높이가 1 meter도 되지 않는 곳에서 마취제인 Coca잎을 씹어가며 작업하는 10대 가장(家長)들의 모습은 가슴을 찢어 놓는다.

 

열악한 노동 여건 때문에(먼지 흡입에 대한 안전 장치가 부족하여) 이곳 광부들의 기대 수명은 매우 낮아 상당수가 규폐증(珪肺症)에 걸리며, 40세 미만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다. 지난 450년여 년간 탄광에서 생을 마감한 원주민, 흑인노예, 그리고 노동자가 8백만에 이른다고 한다. 그들의 두개골(頭蓋骨)을 연결하면, Potosi광산에서 스페인 마드리드 왕실까지 다리를 놓을 수 있다고 했다!

 

재물이 풍부한 미지의 땅-Cerro Rico-이 정복자가 들어 오면서 토착원주민을 잡아 먹는 악마의 산이 되어 버린 것이다.

 

아직도, 삶의 현장을 떠나지 못하는 원주민 광부들의 모습이 처절(悽絶)하기까지 하다.

 

한국에서 노동, 민권운동을 하는 소위 좌파의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 꼭 권하고 싶은 여행길이다.

 

참고: (1) Documentaries-Ruben Martinez“When Worlds collide”Owen Alik Shahadah“500 Years Later”

 

(2) www.Tiwy,com을 방문하여 Potosi를 검색하면, Potosi시의 찬란했던 영화(榮華)를 볼 수 있고, YouTube에서 Potosi를 검색하면, 많은 이미지를 생동감 있게 볼 수 있다.

 

(3) Bolivia에는 케리비안 연안 국가와 달리 흑인인구가 없다. 삼만 명 이상의 아프리카 흑인노예를 수입하였음에도 불구하고, 흑인의 피가 섞인 인구가 없는 것을 보면, 흑인노예는 노동만 착취하고 버린 폐기물로 취급하였던 것으로 사료된다.

逢 南 韓 泰格(www.TedH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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