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타임즈 토요일자엔 The Saturday Profile이라는 지면이 설정되어있다. 어제, 오늘 발생한 시사성(時事性)있는 내용이 아니라, 흥미있는 인물 또는 내용, 역사를 그 주제로 삼는 경우가 많다. 5월 8일자에는 60년대 중반 브라질로 이민가 대도시에 적응하지 못한 Shigeru Nakayama(中山 茂 66)씨의 기행(奇行!!!)을 취재, 게재하였기에 마침 그의 활동 무대가 필자가 작년 6~7월 브라질 월드컵경기가 한창일 때, 예선 4경기만을 위하여 수 억불 예산을 들여 축구경기장을 건설한 오지(奧地)중의 오지 아마존강 상류 Manaus시에서 지척(只尺)에 위치한 Airao Velho이기도 하여 中山씨를 따라가 보기로 한다.

종전(終戰)이 된지 20년이 지났지만 당시만 하더라도 삶이 척박(瘠薄)하여 매년 200~300가구가 ‘꿈의 대륙’ 남미 브라질로 떠났던 시절이었다. Nakayama씨와 3형제도 1960년대 중반 부모를 따라 일본 九州를 떠나 브라질로 이민을 떠났다.
도시에 적응하지 못한 Nakayama씨는 현재 아무도 살지 않는 아마존강 상류에 위치한 쇠락(衰落)한 Airao Velho라는 곳에서 드물게 찾아오는 관광객들이나 학술조사단 단원들에게 일인(一人) 박물관장 겸 직원자격으로 19세기후반부터 20세기초반까지 고무즙 채취산업으로 영화(榮華)를 누렸던 지역과 그 유적들을 안내하면서 유적들이 하늘이 보이지 않는 산림속에서 더 이상 파손, 손상되지 않도록 관찰하는 일을 수행하고 있다.
이 지역은 수 천년동안 아마존 인디안들이 거주하였던 곳으로 1694년 뽀르뚜갈인들에 위하여 발견되었고, 그 후 신부들이 들어와 원주민들에게 카토릭교를 포교하였던 곳이다. 1822년 브리질이 독립하기 이전, 대서양 건너 종주국 뽀르또갈 리스본당국은 이 지역을 점하나로 표시, Airao라고 명명했다.
이 지역을 수백년 소유하였던 Bizerra가문의 후예들은 2001년 Nakayama씨에게 이 지역을 관리하여달라는 요청을 받고 아무도 살지 않는 이곳, 단신(單身)으로 들어와 ‘박물관’을 개설하였다.
이 지역 전체는 을씨년스럽기 짝이 없는 묘지같은 분위기이다. 게다가 벌이 날아다니고 불개미같은 독충이 득실거린다. 100년이란 세월이 흘러 묘비에 음각된 글씨는 마모(磨耗)되어 읽을 수 없을 정도다.
그러나 Nakayama씨는 묘지마다 다니며 묘비를 닦아넣는다. 다음은 그가 하는 말이다. “이곳에 묻힌 사람들은 진정한 개척자들이다. 우리는 이 지역을 보전하기 위해 그들의 넋을 기려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존경의 표시가 아니겠는가?”

이상 사진 www.globitv.com 캡처
이 지역의 이해를 돕기 위하여 작년 6월 썼던 칼럼을 첨부하기로 한다.
航路밖에 없는 內陸都市 -Manaus-
온 세상의 시선(視線)이 남미 Brasil에 쏠려 있다. ‘무명(無名)’선수가 쏘아 올린 한 방의 골이 몇 달동안 머릿기사를 장식했던 “악마(惡魔)” 구원파(救援派) 교주 유병언의 존재조차 잊게 만들었다! 물론 골을 ‘만든’ 이근호 앞에서는 필자의 학교, 군대후배들이기도 한 문창극(文昌克) 국무총리내정자도, 새누리당 출신 박상은(朴商銀) 국회의원도 ‘보이지’ 않는다.
공(球)처럼 둥근 지구촌(地球村)이 온통 Football에, Fussball에, Futbol에, Soccer에, 축구(蹴球)에 열광(熱狂)하고 있다.
그 열광은 자국(自國) 또는 응원팀 열 한명의 선수들이 ‘조각(彫刻)’하여 내는 승부(勝負)에 따라 어느 때는 환호(歡呼)와 환성(歡聲)가 되기도 하고 어느 때는 탄식(嘆息)과 탄성(嘆聲)이 되어 나오기도 한다. 심장(心臟) 약한 이는 혈액순환에 악영향이 올 정도로…..
오늘 필자는 공의 움직임이 만들어 내는 선(線)에 따라 일희일비(一喜一悲)하는 그런 관전(觀戰)자세에서 잠시 벗어나, 도시빈민(都市貧民)들의 결사(決死) 반대시위(反對示威)에도 불구하고 천문학적인 예산을 투자(投資)하여 지구인들에게 만남과 축제의 장(場)를 마련하여 준 Land of Diamonds인 브라질 12개 개최도시중 가장 ‘브라질다운’ Manaus라는 도시로 떠나 보기로 한다.
이 아마존강 최상류에 위치한 이 도시의 스타디움 Arena Amazonia에서는 내일(22일) 저녁 6시 ‘G’ Group에 소속한 미국팀과 브라질의 옛 상전(上典 1531~1821) 뽀르뚜갈(Portugal)과 16강을 향한 대혈전 (大血戰)이 벌어질 곳이기도 하다.
우선 Manaus시의 젖줄인 Amazon강의 길이는 거의 New York에서 LA 거리의 두 배 가까운4,345 Miles (6,992 Km)로 지구상 가장 긴 강이며 아마존강의 다우림(多雨林, Rainforest)에서 뿜어 내는 산소(酸, Oxygen)는 지구가 필요로 하는 산소의 20%를 생산해 내고 있어 Lung of the Planet-지구의 허파-라는 별명을 지니고 있고 , 대양 Atlantic Ocean으로 내려 보내는 물의 양(量)은 초(秒)당 209,000 입방메터(Cubic Meter)로 2위이하 일곱개 강이 내려 보내는 물의 양보다 많다.
Atlantic Ocean 즉 대서양에서 부터 2,277 Mile 상류에 위치한 Manaus로 들어서는 길은 항로(航路) 밖에는 없다. 그 항로가 강(江)이건 하늘이건….내륙(內陸)에 위치하고 있으면서도, 육지를 통해서는 접근(接近)할 수 없는 매우 아이러니한 곳이다.
이러한 오지(奧地)가 어떻게 인구 이백만에 육박한 도시로 성장할 수 있었을까? 필자가 유럽생활 몇 년 동안에도 보기 힘들었던, 그 아름다움과 화려함이 정점(頂點)에 달한 듯한 Opera House, Teatro Amazonas가 건설될 수 있었을까?
유럽인들이 남미대륙을 정복한 후, 첫 400년동안은 주로 대서양 해안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하였으나, 유럽에서 18세기 후반 산업혁명이 일어났고 공업화, 산업화가 가속화되는 과정에서 아메리칸 인디안들이 기원(紀元) 16세기 전(前)부터 사용하여 왔던 Latex 원료와 용도가 탐험가들에 의하여 유럽으로 알려지면서, 산업용 원자재로 활용되게 되었다. Latex는 Hevea Brasiliensis과(科)에 속하는 고무나무(Rubber Tree)에서 뽑은 “즙”으로 1855년에는 아마존 유역에서 생산된 Latex 2,100 톤이 유럽으로 수출되었고, 1879년에는 10,000톤으로 급증하였다. 수요(需要)가 증가하면서 1879년부터 1912까지 제 1차 Rubber Boom을 맞게 되었고, 세계 제 2차 대전 중인 1942년부터 1945년까지는 제 2 차 Rubber Boom시대를 맞게 된다.
길조차 없었던 아마존 정글(Jungle)속에는 타운이 생겨났고, 그 타운은 시(市)로 발전하였다. 세상의 부(富)는 쏟아져 들어 왔고, 유럽의 기업인들과 몽상가들이 몰려 들기 시작하였다.
Rubber산업과 뗄래야 뗄 수 없는 브라질. 브라질의 저변(低邊)에는 Rubber가 있었고, 그 한 가운데Manaus가 있었다. Manaus시는 브라질의 수도(首都)로도 거론되었다.
일요일 저녁 6시 미국과 뽀르뜨갈 축구경기는 바로 이런 역사가 담긴 아마존강 유역 한 가운데서 치루어진다.
역사를 알고 보면, 더욱 흥미롭지 않을까?
P.S. 당시 상황에 관심이 있으신 분은 YouTube에서 Fitzcarraldo(2:53 독일1982년작)를 감상하시기 바랍니다.
逢 南 韓 泰格(www.TedH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