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시면 시작되는 작은 공연장에 40분이나 늦게 도착해버려 친구 녀석 공연을 행여나 놓칠까 오는 길 내내 마음이 조급했다.
막상 도착해보니 갓길에 자리한 건물 안 공연장으로 들어가는데 문 하나 덩그러니 있는 모습이 그렇게 썰렁할 수 없었다.
간판 하나 걸려있지 않은 건물 밖으로 연주 소리가 조금도 새어나오질 않고 사람들도 하나 없어서 잠시 헷갈렸지만 문 앞에 세워진 라인 디바이더를 확인하고 안으로 들어갔다.
내가 뉴욕에 오자마자 찾은 동네의 한 공원 농구장에서 만난 친구는 지금 생각해보니 이민와서 처음으로 만난 아이였다.
영어는 어눌했지만 농구라는 같은 관심사를 통해 어려움 없이 친해질 수 있었고 그 날 이후로 각자 대학으로 흩어지기까지 우리는 날이면 날마다 그 곳에서 만나 같이 농구를 했다.
지금은 힙합을 하는 랩퍼로서 많은 관객들 앞에서 공연을 하는 모습을 보니 서로 같이 농구에 빠져 10대 시절을 보냈던 때가 문득 기억이 났다.
음악에 대한 열정이 넘쳐나는 아마추어들의 무대가 되어주는 이 곳엔 간판은 따로 없지만 ‘Shapeshifter Lab’ 이라고 한다.
Shapeshifter(모습을 멋대로 바꾸는 것)이란 단어에서부터 알 수 있듯이 주최측에선 장르를 불문하고 이곳을 찾아오는 음악인들의 취향에 맞춰 그에 따른 다양한 분위기를 연출 해준다.
왜 Lab(연구소)란 명칭을 썼을까 하는 궁금증을 자아내는 그 어울리지 않는 어색함에선 나름의 위트가 느껴진다.
이날 공연은 7-80년대를 주제로 다양한 장르에서 활동하는 음악인들로 꾸며졌다. 분위기가무르익을수록 가수와 관객 따로 할 것 없이 미국인 특유의 흥에 겨워 몸을 흔들어대는 신나는 분위기가 조성되었다.
가수들은 그 어떤 프로들보다도 멋진 공연을 선보였다. 한 중년의 흑인 여가수는 진정 ‘디바’라는 호칭을 붙여도 아깝지 않을 음색을 들려주었다.
실력은 프로와 견주어도 전혀 손색없으면서 풍기는 분위기는 프로에게서 찾아 보기 힘든 초심의 열정에서 나오는 그들만의 진정성이 느껴졌다. 이런 소규모의 공연장이야말로 가수와 관객의 밀접한 소통(疏通)을 가능케 해 좀 더 안정적인 분위기에서 음악을 즐길 수 있다는 장점 또한 두드러졌다.
중년가수들이 내뿜는 기에 전혀 눌리지 않고 무대 위에서 젊은 열정을 대담하게 드러내는 줄리안이 꽤나 멋있어 보였다. 힘있는 목소리와 절도있는 몸짓, 어느 순간 힙합에 진지하게 빠져 들어있는 그였다.
작은 체구 때문에 뭘 해도 항상 작아보였던 그가 무대 위에서 공연하는 모습을 보니 내가 알던 것보다 훨씬 큰 사람이었다는 것을 느낀 계기도 되었다.
친구의 새로운 모습을 찾아 볼 수 있었던 음악 공연은 모처럼만에 피로(疲勞)에 찌든 수요일 밤을 불굴의 밤으로 착각하게 하는 활력소가 되어주었다.